서울 골목 투어 세 번째

by 태생적 오지라퍼

서울 시내 한 복판의 학교에 근무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서교동과 동교동 중간쯤(아니 홍대앞이라고도 하셨었다.)에서 살았다고 이야기는 들었으나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그 때 사진이 한 장 있을 뿐.

엄마를 통해 들은 바로는 둘째 외삼촌이 서울로 대학에 와서 우리 집에 같이 있었고

나를 이뻐해서 쭉 데리고 다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뿐이다.

“우리 집에는 삼촌있다”라고 TV를 자랑하던 옆집 남자애 기를 죽였다고도 늘상 이야기하셨다.

그 당시에 자랑할게 영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 살이는 당시에는 계획적인 신도시였던 화곡동에서 부터이다.

유치원을 다니고(첫째만 유치원에 보내주었다고 동생들은 늘상 불만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우리는 쭈욱 그 상가주택에서 살았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처음으로 이층집을 지어 이사를 했으나 멀지않은 동네였다.

교사가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도 그 주변을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

누군가는 이 동네 터줏대감으로 정치해도 되겠다고 농을 할 정도였다.


서울 시내 한 복판의 학교로 옮긴 것은 자의반, 타의반이었다는 것이 맞겠다.

교감 승진을 위한 점수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점수도 받고 승진도 하는 시스템이어야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것인데

그 시절의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지금은 모르겠다.)

그 정치적인 그룹에 들어서서 투쟁을 시작하기에 나는 용감하지도 건강하지도 않았다.

승진을 포기하고 내가 좋아라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고향과도 같은 지역을 떠나왔다.

주위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섬 같은 서울시내 중심.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버지의 옛 회사가 있었던 광화문이 근처였고

1년에 몇 번 책을 핑계로 마실 나왔던 교보문고가 근처였고

3년간 졸면서 지나다니던 고등학교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주변 곳곳에 볼거리들이 많아서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중에 가장 멋진 곳을 꼽아보라면 첫번째는 미래학교와 이화여고를 지나 덕수궁까지 이어지는 돌담길이다.

화강암을 주로해서 만들어진 적당히 때가 타고 깊은 멋을 간직한 그 돌담길은

언제나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서 서울 시내 중심을 지켜주고 있고

계절별로 그 느낌이 달라지는 묘하고도 신성한 기운이 있다.

왜 화강암으로 돌담을 만들었을까?

운반도 어렵고 암석을 자르는 것도 어려웠을 그 옛날,

가까운 산에 가장 많이 있던 암석을 가지고 오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서울 시내 중심의 북한산, 인왕산, 남산 등에는 화강암이 가장 많다.

그리고 그 화강암의 격조와 잘 어울리는 돌담길 주변에는 맛집으로, 꽃들로, 청춘들로 항상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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