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은 중요하다.

앞 글과 맥락이 안맞는 것 같지만...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침에 돈이 최고가 되는 삶을 지향하지 않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많이 있다는 요지의 브런치글을 쓰고

반나절이 되지 않아 정반대의 글을 쓰려니 뻘쭘하기는 하다만

사람의 생각이 이리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그래서 불변의 마음이란 있을 수 없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주시기를 바란다.

과학의 법칙에도 불변이나 절대성은 없는 법인데

하물며 내 마음이 그럴 리가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휴가가 되어버린 이번 일주일을 어떻게 멋지게 보낼 것인가 생각하다가

동생이 출강 기념으로 옷을 사라고 보내준 돈 생각이 났다.

지금도 옷의 개수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만

새 기분을 내기에는 옷을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동안 잠자고 있었던 내 패션 욕구가 다시 불타오르는 중이다.

지하철 한번으로 멀지않게 갈 수 있는 고속터미널 옷가게를 순방해보기로 한다.

지난 주 이런 저런 일로 백화점을 갔었는데 그곳은 이미 가을 겨울옷이 걸려있었고

옷들의 가격은 사악하기가 그지 없었다.

마음에 드는 스누피와 미키마우스 프린팅 티셔츠가 25만원 선이었다.

이 나이에 다시 스누피와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옷이 눈에 들어올 줄은 정말 몰랐었다.

퀄리티는 물론 최고였다만.

아무리 내가 돈을 번다고는 하지만 티셔츠 하나에

그 가격을 주고 옷을 산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예쁜 옷들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다.

퇴직 1년전부터는 옷이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는데 이 무슨 조화인지 알 수는 없다.

마침 남편도 윗옷을 하나 사다달라한다.

손이 잘 안 움직이니 단추가 없이 입고 벗기 쉬운 옷을 부탁한다.

아들 녀석이 하나를 사주었는데 하나쯤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나보다.

남편이 옷을 사달라고 한 것은 수십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놀랄 노자이다.


평일 아침 일찍이니 고속터미널 주변도 한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옆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 사람이 넘쳐난다.

방송용 카메라도 있고 멋쟁이들이 줄을 지어 들어간다.

무슨 일일까 했더니 오늘 그 푸드코트가 리뉴얼오픈을 하는 날이란다.

더 다양한 먹거리 종류가 생겼고 양은 내가 좋아할 정도로 작은 사이즈이다.

옷 구경 못지않게 좋아라하는 먹거리 구경이다.

신중하게 한 바퀴를 돌아서 남편 점심으로 구운 장어를 올린 초밥과(여섯 피스이다.)

일본식 계란말이 두 조각 그리고 내 몫으로는 소고기 반미샌드위치를 샀다.

가격은 착하다고 할 수 없었으나 집에 와서 먹어보니 맛에서는 자본주의의 냄새가 물씬 났다.


그 많은 고속터미널 옷집들 중에서 남자 옷을 파는 곳은 손꼽을 정도이고

특히 나이든 세련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남편이 주문한 형태의 옷은 더더욱 찾을 수가 없었고

간신히 가장 비슷한 옷 하나를 샀다.

그리고 내것으로는 이것 저것을 고민하다가 매번 있는 듯한 스타일의 그렇지만

지금 있는 옷과는 무언가는 차별화가 되어 보이는 상의와 그 안에 받쳐 입을 흰 티셔츠를 하나 골랐다.

아이보리와 베이지색 바지에 매칭해서 입으면 너무 늙어보이지도 튀어보이지도

그렇다고 격식을 갖추지 않은 것도 아닌 내 스타일의 옷이 될 것이라 기대된다.

흰 티셔츠는 모든 옷과의 매치가 되는 효율성 갑인 품목인데

그 흰 티셔츠기 촉감으로나 옷의 질로나 고급이라는 느낌을 주기가 쉽지 않다만

이 옷가게의 옷들은 그 퀄리티를 확보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집들보다 가격이 비싸다.

이 집 옷이 나의 시선을 불러세운 이유를 분명히 알았다. 주인장의 안목과 돈의 힘이다.

주인장의 패션 감각과 내가 지향하는 패션의

어느 지점인가가 맞닿아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꼭 필요하다.


오전에 쓴 글에다가 한 줄 첨가를 넣어야 할 것 같다.

모든 어쩌구 저쩌구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는데 돈은 매우 중요하다고.

갑자기 새로 산 옷을 입고 출근을 빨리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러하다.

옷을 잘 걸어두고 동생에게는 사진을 찍어보내 고맙다고 하고 지하 커뮤니티센터에서 브런치글을 쓴다.

이것을 올리고 나면 가열차게 강의 준비에 들어가야겠다.

오늘은 5주차 강의 자료 만들기 순서이다.

5주의 강의를 진행하고나면 추석 연휴가 될 것이다.

그때쯤 나는 고속터미널 옷가게를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른다.

(저 대문 사진은 내가 오늘 산 옷의 신비함과 멋집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착장하고 사진을 찍을 그럴 주제는 못된다. 옷은 잘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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