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로드뮤직 방송 하나 찍었다.
오늘도 다양한 짐과 함께 출근 드라이빙을 시작했다.
집에 너무 많은 편의점발 우산이 있다.
아마도 갑작스럽게 비를 만났으니 샀을 테지만 신발장 한 켠을 너무 잠식하고 있다.
학교 우산함에 넣어두면 가끔 오시는 강사님이나 학생들에게 난감함을 피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오늘 기꺼이 학교로 데리고 온다.
덕분에 신발장 정리도 하고 말이다.
아침 도시락이자 남편 아침인 볶음밥을 조금 담고(남편 것에는 계란 후라이도 얹고 배추 된장국도 끓여두었다.) 검정콩 두유도 하나 넣고 사과와 토마토 그리고 오랜만에 산 포도 한 송이도 넣는다.
포도는 중앙 테이블에 놓으면 가고 오는 사람들이 알아서 먹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중요한 PPT 포인터를 다시 한번 챙겨보고(오늘은 꼭 써야지)
고양이 설이에게는 아침 특식으로 츄르를 하나 통크게 쏘고는 집을 나섰다.
월요일 출근과는 다른 익숙함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여유가 생겼는지 카카오뮤직의
내 플레이리스트를 통으로 돌린다.
음악이 나오면 네비언니 목소리가 작아지기는 하지만 이제 그쯤은 알아들을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
한때 나는 음악방송 대본을 쓰고 노래를 선택하는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 초반때까지의 일이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더더욱 그 꿈이 강렬해지곤 했다.
중학교 1학년때까지는 야구장 아나운서를 꿈꾸다가 엄마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었으니(지금도 그 톤으로 안내가 가능하다. 1번 타자~~유격수 김재박~~)
그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좋게 이야기해주면 창의적이고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또라이 기질이
나에게도 분명 한 숟가락쯤 존재한다.
드라이빙 출근길에는 안개가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내가 좋아라하는 음악이 흐르니
힘든 출근길이 아니라 즐거운 휴가길이 되는 안정감이 생긴다.
아마도 월요일에 수업을 한번씩 해서 오는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 더 클 것이다.
같은 내용의 수업을 여러번하게 될 때 항상 첫 수업이 가장 힘들고 고민되고 어려운 법이고
세 번쯤 하면 이제 도사 수준이 된다.
그래도 같은 내용을 다섯 번까지 하는 것은 식상하는데 다행이도 나는 한 과목은 두 번, 한 과목은 네 번이다.
두 번은 조금은 아쉬울 수 있고 네 번은 최대치이다.
오늘 안개의 양은 꽤 된다.
안개는 구름과 같은 생성과정을 거친다.
공기중의 수증기 덩어리가 상승 운동을 하면서 포화상태를 넘어서면 수증기에서 물방울로 상태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과학적 현상이다.
내가 출근하는 지역은 아무래도 서울보다는 산이 많으니 상승 운동이 일어날 확률이 높고 따라서 구름이나 안개가 발생할 경우의 수도 많아진다.
구름과 안개의 차이점은 어느 위치에
만들어지는가이다.
순전히 내 시야 기준으로 내 발과 손이 닿는 위치(조금은 높아도 된다. 농구 선수 키도 있으니 말이다.)에 만들어지면 안개,
그보다 아주 높은 상공에 만들어지면 구름이다.
따라서 오늘 내가 운전하면서 앞에 보고 온 것들은 안개가 틀림없다.
아주 심한 안개는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만
오늘 정도는 멜랑꼬리하면서 음악감상과 딱 어울릴 정도였다.
그리고 안개는 기온이 올라가면서 포화수증기량이 커져서 머지않아 걷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회복 탄력성>을 갖는 삶을 살아보자고.
나는 나에게 너무 가혹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잘못했던 것은 주로 회피하는 방법으로
억지로 잊었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선택했었는데
(그런데 돌이켜보면 절대 잊었을리는 없다.)
잘못했던 그 때의 나도 나라고
따뜻하게 생각해봐주는 노력을 해보자고
이 아침 안개와 음악 사이에서 깨달음이 들었다.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순간 빙의되었나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진 스포츠 경기도 못보고
남편이 날려먹은 목동 아파트 401동도 피해서 돌아다니고
남편이 분양을 놓친 구의동 한강뷰 아파트도 가급적 보지 않으려하는
이런 나약함 말고 그 실패를 바탕으로 다시 일어서는 그런 멋진 모습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번쯤은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왜 이 아침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나?
아, 그 한강뷰 아파트를 지나서 출근하기는 했다.
아직 교양교육원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다.
나는 이런 시간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