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 친구들과의 추억

어제 저녁 노을은 역대급이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들 녀석도 남편 못지않게 친구들이 많다.

인싸는 분명히 아닌데(SNS를 활발하게 하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지난 번 <불꽃야구> 직관때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는 것을 보니 외향성도 아닌 듯 한데

(나랑 함께라서 안했을 수도 있겠다만)

어디를 가든 친구는 많다.

어려서부터 그랬고

미국에 2년간 있었을때도 그랬고(외국 친구도 포함된다.)

따라서 웬 약속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나도 지인들이 적지는 않은 편이나

나는 회식이나 만남을 그리 즐겨하는 편도 아니고

술도 먹지 않고 체력도 그리 좋지 않으니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는 일은 거의 없어서

두 임씨의 행태를 십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어제 오후 아들 녀석이 내가 알고 있는 아들 녀석의 친구(몇 명 되지 않는다.) 한 명과 함께

집에 잠깐 들렀었다.

고양이 설이는 속상해서 난리다.

자기랑 딱 십분 놀아주고 떠났다고.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었고

그러면서 자신의 자전거를 아들 녀석에게 맡겼었고

한국에 다니러 온 김에 그 자전거를 찾아가려 온

친구의 방문이다.


그리고는 인사치레였겠지만 내 덕분에 자신들의 추억을 많이 만들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하는거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아들 녀석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5명인가로 구성된 아들 녀석의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녀석들 모임이다.

함께 놀고 공차고 이야기하고 했던 시절이 아마 인생의 절반쯤이었을 녀석들이다.

내가 특별히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그들이 대학생때 부터였던 것 같다.

아들 녀석은 절대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서 얼굴들을 알 수는 없었다.

다 자기보다 잘사는 녀석들이여서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쯤 남편이 IMF 로 아파트를 날려먹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내가 특별한 아르바이트를 부탁하지않았었다만

그들의 얼굴을 볼 기회는 영영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첫 번째 아르바이트는 모 여대 강의를 나갔을 때 이루어졌던 것 같다.

모 여대 강의에서 <과학글쓰기와 토론하기>를 중심으로 한 강의를 맡았던 때였다.

나는 참신한 동기부여 방법을 주고 싶었다.

조별로 주제를 정하고 <과학글쓰기와 토론하기> 연습을 시킨 후 진짜 토론의 장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평가에 반영한다고 미리 공지하였다.

토론을 함께 할 사람들이 바로 아들 녀석 친구들이었다.

여대에 남학생들을 초청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아들 녀석 친구들은 모두 자연과학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과학 내용에 대해 그리 깊은 관심과 역량이 없었고

과학교육자의 입장에서는 문외한인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글쓰기와 토론 역량이 필요했다.

아무튼 5명 정도의 아들 녀석 친구들을 패널로

각 주제별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고

열심히 듣고 질의 응답까지 멋지게 소화하면서

그 강의의 파이널을 마쳤다.

지금 생각해도 멋진 아이디어였다.


과천과학관 오픈 기념 탐방 행사때도 스탭으로

아들 녀석 친구들이 함께 했고

(전시실 앞에서 퀴즈를 내고 맞춘 학생들에게는 스티커를 배부하는 동기 부여 역할 및 출석 점검을 담당했다.)

관악산 지질 생태 답사 때도 가드와 산 오르기를 힘들어 하는 학생들을 도와주었으며

(이때를 계기로 친구 중 한 녀석이 여자친구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었는데)

1호 미래학교에서는 그 많은 태블릿의 업그레이드 작업을 도와주었고

(추석 연휴 기간이라 정동지역에도 문을 연 식당이 없어서 결국 피자를 시켜 먹었더랬다.)

모 중학교 부산 과학 캠프때는 야간 불침번 및 해변가에서 안전 요원으로 수고해주기도 했었다.

(물론 내가 하루 더 남아서 놀고 올 수 있게 경비 지원을 해주긴했다만)

어제 그 아들 녀석 친구는 그 부산 캠프를 자신들의 소중한 추억이었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더 고마웠던 일들이었다.

물론 내돈 내산으로 소정의 수고료를 아르바이트 비용으로 지불했었지만

그들이 해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행사 진행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큰 힘이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아들 녀석 미국에 간지 6개월만에 만나러 가보았더니

마침 이 친구 녀석들이 미국에 모여있어서

LA 어느 일식 스시집에서 엄청 먹어서 많은 돈을 지불했던 추억도 생각난다.

비싼 가격에 놀라기도 했었다만 맛난 집이기는 했었다.(새우 머리 튀김을 그때 처음 먹어보았었다.)

내가 시킨 아르바이트가 그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었다니(그렇게 이야기해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아마 내가 죽으면 내 관을 들어줄 녀석들이라 생각한다.

미리 수고비를 지불했다 생각하련다.


친구가 많은 아들 녀석과 남편의 삶이

나보다는 윤택하기를 희망한다.

친구들로 인해서 많은 위로와 위안을 받기를 희망한다.

바쁜 날 아침인데 일찍 일어나서 글을 올리고

출근 준비를 할 수 있겠다 싶다.

주방 한쪽에 남편을 위한 달걀과 고구마가 삶아지고 있다.

오늘은 퇴근이 저녁이다.

동아리 형태의 비교과 프로그램 첫날이라

제일 늦은 셔틀버스 티켓을 끊어두었다.

아마도 어제 서울에서 본 노을을(대문 사진이다. 엄청났다.) 오늘은 학교에서 보게 될 예정이다.


(나는 ISFJ 아들은 ENFJ 이다.

오늘에서야 물어봤다.

MBTI 가 뭐가 중한디 할 수 있다만

뒤에 두 개는 일치하기는 한다. 다행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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