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자.
세상에나.
아침 잠실의 멋진 보름달을 보고
너무 오랜만이고(이른 출근 시간에만 볼 수 있다.)
외국인가 싶게 감탄하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석촌 호수 아침 조깅을 하는 많은 부지런한 사람들을 보고
가을이구나를 실감하는 온도를 체감하고(조금 늦게 가을이 올 수는 없을까 잠시 생각했다가)
기분 좋게 셔틀버스에 탑승하고
눈까지 감고(잠이 깊게 들지는 않았었다. 방금 일어난 관계로.)
그때까지는 오늘 학식으로 조식을 먹을까 중식을 먹을까를 고민했을 뿐
평화로운 하루의 출발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학교에 도착할때쯤 오늘의 첫번째 사고가 인지되었다.
학교 입구인가 하고 밖을 내다봤더니 안성문화원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아니 안성이라니? 머리가 주뼛 섰지만 나는 학교 뒤편 다른 길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유턴을 하더니 중얼 중얼 버스기사의 혼잣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앞에서 두 번째 좌석에 앉았다.(친정 엄마가 꼭 가운데보다 앞 부분에 앉으라고 당부하셨었다.)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분명하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밖을 내다보니 안성 IC 표지판이 보인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핸드폰의 내비를 가동한다.
안성이다. 무려 학교까지는 한 시간 거리라고 나온다.
나는 버스기사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나름 정중하게 이야기를 했으나 묵묵부답이다.
(내 나름 아주 참고 정중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들었을때는 따지는 것으로 들렸을 수 있다.)
그 사이에 정체나 교통사고가 있어서 우회한 것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눈을 감고 있었어도 차량 정체나 대형 사고를 못느낄만큼 둔한 편이 아니다.
뒤를 돌아다보니 탑승 학생들의 반은 정신없이 자고 있고
나머지 반은 일어나서 사태 파악을 위해 눈을 깜빡거리고 있다.
일단 학교에서 그래도 제일 대화를 많이 한 젊고 스마트한 교수님께 연락을 취한다.
아무래도 9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제 시간이 들어가지 못할 것 같고
나의 10시 수업 가능 여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도 어떻게 알려야 학생들 출결에 불이익이 없을지도 여쭤본다.
말도 안되는 이런 사고는 학생들의 학습권도 침해일뿐만 아니라
탑승객의 불안한 마음과 사라진 시간에 따른 여유 없음 및 공포심 등의 정신적인 피해는 어찌할 것인가?
화가 부글 부글 끓어오르는데 다른 학생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운전자를 자극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만 이 사고는 100% 운전자 과실이다.
시작부터 계속 핸드폰 통화를 해댔고 이번에 이 경로를 처음 운전하는 사람도 아닌 듯 했다.
그냥 넘어가면 이 사람은 비슷한 실수를 또 할 수 있다. 이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실수를 했으면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하는 것이 맞다.
지금껏 많은 재난재해와 인재 사고에서 분격한 포인트가 바로 그 부분 아니었는가 말이다.
다행히 9시 13분쯤(다행인지는 모르겠다. 1교시 수업이 있는 학생들은 전력 달리기를 해야했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천천이 걸었다만...) 학교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내가 빡친 것은 그 다음이다.
이런 사태의 주범인 기사는 정작 아무런 말이 없다.
서둘러 하차하는 사람들에게 <안녕히 가세요.> 라고 한다.
나는 더 이상은 참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안녕히 가세요.>라고 이야기하면 안되는 거라고
<죄송합니다.> 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번에는 정중한 톤이 절대 아니다. 절대 욕은 하지 않았다.
내 강의가 모두 끝난 후 학생처 셔틀버스 업무 담당자에게 이 사고의 전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했다.
녹음이라도 할 걸 그랬다만 그 버스에는 블랙박스가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피해 보상이 아니라 재발 방지일 뿐이다.
오늘은 비교과 프로그램 진행까지 있어서 저녁 9시 마지막 셔틀을 탄다.
깜깜한 밤중에 나를 잠실역에 무사히 내려다 줄지 이제는 무섭기만 하다.
도대체 그 기사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 해도 할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손이 떨려오고 머리가 쭈뼛하고 정신이 없다.
피할 수 없는 사고를 만나는 것은 정말 할 수 없지만 이것은 분명 그 사람의 잘못이다. 정신차리고 살자. 모두.
우리는 이미 사소한 부주의때문에 생긴 가슴아픈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