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만 정상작동해도 감사하다.
우여곡절끝에 9시 13분에 학교 정문에 내렸으나
수업하는 강의실까지는 내걸음으로는 최소 10분이 걸리고
교양교육원 사무실 내 책상까지는 18분은 족히 걸리고(게다가 오르막길이다. 완만하기는 하다만.)
나는 소변도 마렵고 배도 무지 고팠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났고 긴장이 풀어지니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강의실 건물 2층의 강사휴게실로 간다.
그곳의 사물함에 강의 준비물을 옮겨 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후둘거리는 다리와 손으로 준비물을 주섬 주섬 챙기고
아이스커피를 하나 사서 혹시 몰라서 비상으로
가지고 간 샌드위치 남은 것 반의 반개를(이틀전 것이다만 괜찮았다.)
천천이 체하지 않게 조심스레 입에 (쑤셔) 넣는다.
이 행위는 먹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연강 두 시간을 위한 에너지 흡입 차원에서의 행위이다.
물론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 맛은 느낄 수도 없다.
커피도 한번에 흡입하면 가슴이 너무 뛸까 싶어서 천천이 한 모금씩 목을 축이는 형태로 마신다.
그리고는 화장실에 다녀왔다가
나의 강의실로 올라갔다.
나는 모든 수업을 그 강의실에서만 한다.
그 강의실을 같이 사용하는 교수는 단 두 명이다.
그런데 두 번째 사고가 발생했다.
컴퓨터 자판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심지어 종료도 되지 않는다.
먹통이다. 진땀이 흐른다.
물론 PPT가 없어도 오늘 강의를 진행할 수는 있다.
나는 기계를 믿지 않고 가장 최악의 상태까지도 대비하는 스타일이라
오늘 강의를 컴퓨터가 되지 않더라도 할 수는 있으나 학생들의 이해 정도에는 불리함이 있을 수 있다.
온라인 강의가 오프라인 강의보다 효과가 높지 않고 보이는 자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효과도 차이가 분명하다.
일단 컴퓨터 등의 물품 관리 담당 행정실 직원에게
이 사태를 알린다.
보고는 했으니 이제 내 책임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고는 있는 힘껏 다시 한번 파워를 눌러본다.
과거 정보부장 경험을 백분 활용해서 말이다.
꾸욱 꾸욱 절대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컴퓨터가 제 정신을 찾았다. 다행이다.
알고 보니 동아리 활동을 한 후 컴퓨터를 그냥 끄지 않고 간 모양이고 최소 12시간 이상 켜놓았나보다.
오늘은 어찌저찌 살아났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당연히 컴퓨터는 큰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여러 명이 함께 쓰는 컴퓨터의 고장 확률이
개인용보다 훨씬 잦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또 설정까지 바꿔 놓아서 기본 세팅까지
다시 하고 났더니 어느새 강의 시작 시간이다.
진땀과 안도가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두번째 사고도 간신히 어찌저찌 해결은 한 셈이다.
기계는 잘못이 없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잘못했을 뿐이다.
정보부장 때 늘상 하던 이야기이다.
난리가 난 여러 상황들과는 다르게 강의는 스무스하게 잘 진행되었다.
다행이다. 강의마저 엉망진창이었다면 기운이 쏙 빠질뻔 했다.
그러나 오늘 하루가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방심은 금물이다.
마지막 비교과프로그램과 새로운 학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의 사고는 없을 것이라 기도해본다만
(액땜을 두 번이나 크게 한 것 아닌가?)
처음 쓰는 강의실이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직 모른다.
아직도 인생은 힘들고 쓰고 하루가 무지 길다.
컴퓨터만 정상 작동해도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