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 보고서

평일 이른 아침 잠실역 주변

by 태생적 오지라퍼

세번째 출근용 셔틀 버스를 타러 나선길이다.

수요일 악몽이 아직 진하게 뇌리에 남아있지만

(이전 글을 참고하시라)

사후 조처가 잘 되었으리라 믿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바로 집 앞에 서는 버스는 단 3종류.

다행히 2종류는 잠실역에 서고 다른 하나도 지하철역에 내려주니

어찌저찌 잠실역까지는 빠르면 15분 내에 도착이 가능하다.

이런 환경이라서 겁없이 조금은 먼 대학교 출강을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시간과 마음이 월, 수요일 보다는 여유로우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난번 나와 비슷한 연배분들이 줄을 서 있던 곳

곰배령, 화천, 여수 등 전국 일대의 당일 치기나

1박 2일 단체 여행의 출발 장소였다.

화려한 색의 옷을 입고

즐거운 수다와 함께 삼삼오오 서 있는 분들이 제법 있다.

단체 여행이 주는 편리함도 있지만 불편함도 분명한데

저 패키지를 선택했다는것 만으로도 건강하다는 것이다.

번 되지않는 패키지 여행에 대해 써볼 기회는 다음으로 미룬다.

긴 글이 될 터인데 셔틀버스가 흔들린다.

곰배령이라는 지명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한번 다녀온 기억이 있긴한데(아마도 학교 연수였던듯) 뚜렷하지는 않다.


주변 탐색을 더 해본다.

비상시 들어갈 가장 가까운 공용 화장실도 파악해두고

비가 오거나 추울때 대비 피난 장소도 알아두었는데

딱히 근처 편의점이나 일찍 문을 여는 카페는 아직 못찾았다.

석촌호수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많은 분들은

러너이거나 걷는 사람이지만(모두 멋지다.)

나처럼 출근복 차림으로 가방을 매고(종이가방까지 들고)

천천이 꽃과 나무와 호수의 물과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 나는 신기한 이방인일 뿐이다.


셔틀버스 탑승시

수요일 문제의 그 기사님인지 확인하려고

눈을 크게 떴으나 잘 모르겠다.

그 날은 선글라스를 썼었는데

오늘은 아니지만 얼굴형이 비슷한것 같기도 하다.

안면 인식 장애가 점점 심해진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작아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눈에 힘을 주고 정신 차리라고 기사님에게 무언의 압박을 면서 승차했다.

다행히 기사님이 통화를 하진 않는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 기사님인지 확정할 수 있는데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 분이어도 할 수는 없다.

인상보다 더 정확한 것이 음성이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은 가급적 자제하는것이 맞다.

오늘은 이 버스의 이동 노선이 어떤지 파악하려고

눈을 감지 않고 밖을 내다보는 중이다.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정신줄을 놓아서 나를 안성까지 데리고 갔는지를 알아봐야겠다.


아직까지 기사님의 통화 내역은 없고

따라서 목소리도 못들었고

버스는 중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고

이제 어느 톨게이트로 빠져나가느냐의 문제만 남은 듯 하다.

내비를 틀어놓고 이동 경로 파악중인데

오랫만에 탐정 역할 놀이 중이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다만.

마지막 톨게이트로 제대로 빠져나왔고

오분 정도 일찍 도착하겠다.

나는 일찍 도착하는것도 희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안전하게 목적지에 예정시간의

오차범위 내 도착을 희망할 뿐이다.

오늘의 관찰 보고서 작성과 탐정 놀이 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