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르다.

의심과 낭만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네 시반 퇴근 셔틀버스는 나를 잠실역 근처의

또 다른 곳에 내려준다.

세상에나 시간대별로 잠실역 주변이기는 하나

이리 각각 다른 곳에 내려다주다니.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다.

어째 이동 경로가 다르다 생각했다.

금요일 오후 퇴근 시간대라 아마도 상습 정체 지역을 지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받아들였다만

승차하는 위치는 일정하나

하차 위치가 시간대 별로 다른 이런 시스템에

언제 익숙해질지는 모르겠다.

다음 주도 비교과프로그램을 하는 날 빼고는

이번주와 다른 시간의 셔틀버스를 예약했는데

약간은 또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월, 금 강의 종료 시간은 15시 50분이다.

연강이라 중간에 한번 쉬지 않고 해서 15시 40분에 종료하는 것을 더 좋아하더라.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떠들거나 화장실 다녀오는 것을 하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다음 주부터 회의가 없고 뚜렷한 일이 없는

월, 금은 16시 퇴근 셔틀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그 시간대가 가장 일찍 예약이 완료되더라.)

칼퇴가 나의 스타일이다.


무거운 몸으로 집에 오니 배달이 하나 와 있다.

남편이 무염 버터를 시켰다고 해서 그것인가 생각하고 들었더니 아니다.

제법 무겁다.

간신히 들고 옮겨서 포장을 풀었더니 두유이다.

아니 먹고 있는 두유가 12개나 남아있는데

두유 50개를 또 배달시키다니. 벌써 화가나려 한다.

지금 것은 <뼈에 좋은 칼슘 두유> 였는데

이번 것은 <고소한 무가당 두유> 이다.

혈당 위험군에 속한 남편이 왜 선택했는지는 알 것 같다만

지금 것을 다 먹고 구입해도 늦지 않는데 슬며시 화가 난다.

냉장고에 넣어둘 칸도 없는데 말이다.


남편은 이야기한다.

이것은 상온 보관이라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아도 된다고.

뭐든 다 상온보관이란다.

마늘도 양파도 먹고 있어서 입구 주위꿀이 묻어있는 병까지도...

우리 집 안에 날벌레가 수십마리 돌아다닐 판이다. 남편말대로 했다가는.

상온이라함은 15~20℃의(누군가는 25℃정도까지도 포함한다만) 보통의 온도인데

현재는 상온의 정의도 변화시킬만큼 지구가 더워지는 중이다.

요즈음 날씨는 실내 보관이라도 25℃를 훌쩍 넘는다. 매일 종일 에어컨을 틀어놓지 않는다면 말이다.


환자가 먹을 것이니 더더욱 냉장고에 보관해야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남편이 차가운 것을 못먹으니 먹을 때 미리 꺼내서 차갑지 않게 먹으면 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상온에서도 화학반응은 꾸준히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제 남편은 무거운 것을 전혀 들지 못하고

나도 안 좋은 허리와 손의 악력으로

50개 두유가 든 박스를 나르는 일은 쉽지 않다.

적은 양을 사면 안되겠냐 물었더니 그럼 더 비싸단다.

싼 것 찾다가 내 허리가 나가면 더더욱 큰 일이라고 쏘아붙여줄라다가 간신히 참았다.


남편은 또 이야기한다.

이런 것들을 모두 많이 사서 베란다나 다용도실에 두었다가 먹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게 더 경제적인게 아니냐고.

경영학과 출신 티를 낸다.

우리 엄마는 그랬었는데 라고 꼭 마지막에 덧붙이면서 말이다.

안다. 어머님은 냉장고 2개에 김치 냉장고 2개를 사용하셨던 손이 무지막지하게 큰 스타일이시다.

이 집은 베란다도 없고 식당 옆에 다용도실도 없다.

다용도실이라고는 세탁실 옆에 딱 하나가 있는데 그곳에 먹거리를 두었다가는

온갖 옷에 각종 먹거리 냄새가 나게 되어 있다.

마늘 냄새가 풍기는 새 옷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절레절레 고개가 흔들어진다.

게다가 새로 구입한 두유의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고소한데 무가당이라니 과대 광고가 틀림없다.


조금씩 조금씩 먹을만큼만 가장 맛있을 제철 시기에 구입하는 것이 지구와 환경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유식하게 탄소 마일리지나 푸드 마일리지를 들먹이며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직 과학이 교양이나 상식이 되기에는 멀었나보다.)

바로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통념과 과거 살아온 방식으로 점철된 벽에 부딪히게 된다.

아직도 교양 수준의 과학 강의를 하는 내가

헤쳐나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하다.

그리고 다시금 깨닫는데 남편과 나는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물론 비슷한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그리고 그점 때문에 서로를 선택한 것은 맞다만

비슷한 것이 먼저 보였던 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더 많은 다른 점이 먼저 보였으면 운명이 달라져도 100번은 달라졌을텐데 말이다.


참, 지난번 광고에 혹해서 산 중국산 흑미 과자는 수업용 관찰 교재로 모두 사용했다.

중국산인 것을 알고 나더니 자기도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나 하면서

며칠 지나서야 과자를 모두 나에게 밀어두었다.

이런 식이다. 이게 돈을 아끼는 것이냐? 정녕...

물론 중국산인지 모르고 속아서 산 것이다만.

앞으로도 몇 번을 더 과대광고에 혹할지 모른다.

과학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에서 출발하기는 한다.

누군가는 낭만이 없다고 할 것이다만.


(오늘 대문 사진은 친환경을 표방하는 농부와

소량의 먹거리를 직거래하는 오픈 마켓 사진이다.

같은 밭에서 같은 농부가 키운 농산물도 다 저리 다르게 생겼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일것이다.

그리고 혼자 농사를 지었으니 농산물의 양이 많을 수 없다. 소량씩 판매한다.

내가 저 마켓을 이용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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