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은 업, 매뉴얼은 심플
흡입용 로봇 청소기가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차라리 새로 사는게 나을 듯 하다는 A/S 기사 방문이
지난 주 화요일이었고
(4년쯤 사용하였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과로사가 분명하다. 매일 매일 고양이 설이의 털을 그렇게 받아들였으니)
비상용으로 있던 8년쯤 된 내가 밀고 다녀야하는 청소기가 목요일 오후 청소 중에 나의 부주의로
남편 침대 다리에 부딪히더니 급 사망을 하였다.
청소기 아래 하단 부분이 부딪혔는데 그 뒤로 전원도 들어오지 않고 아무 반응이 없는 기작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원래 마지막 조짐을 보이다가 안되는 법인데... 그냥 단칼에 안된다.)
그 이전부터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던 터였으므로 할 수 없이 사망 신고를 받아들인다.
일이 안되려면 이렇다.
어째 두 개가 모두 사망 신고를 받는단 말인가?
덕분에 어제는 하나 남은 물걸레용 로봇 청소기를 돌리며
내가 밀대로 빡빡밀고 다니는 청소를 하는 수고를 보탰다.
할 수 없이 청소기를 보러 아들 녀석과 어제 오후 백화점으로 갔다.
전자 제품을 왜 백화점에서 사느냐고?
할인쿠폰도 있고 포인트 적립도 되고 배송이 정확하고 여하튼 나는 백화점파이다.
가구를 매장에서 샀다가 내가 집에 없는 시간에 던져두고 갔던 아픔을 겪고 나서는(미친거 아니냐 소파를 내가 어떻게 옮기냐) 백화점을 주로 애용한다.
가구도 백화점이다.
매장에서 눈여겨본 후 구입은 백화점이다.
체감상 가격도 비슷하다.
쿠폰, 마일리지, 포인트, 할인율, 할부 이딴 것을 매우 정교하게 비교하지는 못한다. 내 스타일상...
아마 최고로 싸게 구입하는 방법은 물론 아니겠지만 일단 편리성과 안심성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그 4년 사이에 기술은 엄청 발달해서
흡입과 물걸레가 따로 있던 청소기에서 이제는
한번에 다 되는 청소기로 바뀌었다.
물걸레는 매번 손으로 내가 빨았었는데 이제는
심지어 물걸레도 로봇이 알아서 빤다고 한다.
세탁기도 4년전에 세탁과 건조기가 붙어있는 최신형을 구입했었는데
이제는 한 통에서 세탁과 건조가 다 되고
사이즈는 반만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전자기구도 그럴 것이다.
새로운 버전의 다기능 기구를 보면 옛날 버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사람이 그리 간사하다.)
물어보면 물품이 전시되어 있지도 않다.
(물론 마케팅 전략의 일환일 것이다만)
이제 선택은 구입이냐 구독이냐의 문제일 뿐.
구독은 렌탈의 개념이다.
매월 소정의 구독료를 내는데 6년 약정이다.
청소기를 6년 쓰면 오래 쓰는 것인데다가 나는
자주 케어를 해주는 것을 선호한다.
고양이 설이 털 때문이다.
아마 우리 집은 요주의가 될 확률이 높으므로
구독을 선택하여 자주 그리고 편하게 A/S를 받는 것이 낫겠다 생각했다.
결정장애 방지를 위하여 전자 제품에 능통한 아들이 백화점에 함께 가주었고
로봇청소기에 수동으로 밀고 다니는 청소기를 함께 구독하는 패키지를 선택했으나
로봇청소기는 화요일에 그리고 밀고 다니는 청소기는 다음 달 초에 배송될 예정이다.
아직은 밀고 다니는 예전 형태의 청소기를 더 많이 구매하는 모양이다만(물량이 딸리는 것을 보면)
나는 집에 없는 시간이 많고
나의 체력과 고양이 털의 양을 고려해서
로봇 청소기를 선택한다.
내가 어얼리 어답터이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는 주변을 돌아보는데 오늘 대문 사진인
저 고양이 청정기가 눈에 뛰였다.
마치 실제 고양이인 듯 잘 만든 인형이 누워있는데
우리집 고양이 설이는 과연 저것을 가져다 놓으면 저기서 저렇게 평화롭게 잘 것인가가 궁금하다.
지금은 여기 저기를 이동하면서 자는데 말이다.
낮에는 아들 녀석 옷이 걸린 드레스룸 한켠에서 고정적으로 자는데(아마도 숨어있고 싶은 본능발동인가보다.)
밤에는 내 화장대 아래서 자기도 했다가
내 침대 아래 요가 매트에서 자기도 했다가
새벽에 내 침대 머리 위 좁은 공간에 올라와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기도 했다가
그래도 내가 자고 있으면 내 옆으로 와서
꼬랑지를 흔들어대거나 자기 몸을 부비부비하기도 한다.
애정결핍 증상이긴 한 것 같다만(아들 녀석이 독립하고 나서 부쩍 나를 쫓아다닌다.)
그런 고양이 설이가 청정기 위의 공간에서
사진처럼 우아하게 잘 것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만
가격이 무려 100만원대이다.
아쉽지만 저 곳에서 자는 설이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이를 무지무지 사랑하지만
100퍼센트 활용 가능성도 점칠 수 없는 저것을 살만큼 풍요롭지는 않다.
청소기를 예약하고나니 아들 녀석은
자율주행 전기자동차 시승을 하러 간단다.
그 녀석은 어얼리 어답터를 표방한다.
나에게 시승하러 같이 가겠냐 했지만
늙은이가 따라가서 뭐하겠나
아들 녀석 마마보이라는 느낌만 줄 것 같아 사양했다.
사실 아직 자율주행 자동차를 탈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서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운전할때 운전대를 꼭 잡고 있는 스타일인데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무섭다.
그렇지만 세월을 되돌릴 수는 없다.
복고나 레트로가 인기를 끌 수도 매니아층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거대한 대세의 흐름은 막을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변화를 보면 그렇더라.
새 물건을 대하는 자세.
나는 일단 조심스러움에 위치한다.
그리고 새로운 청소기의 매뉴얼이 단순하기를 바래본다.
기능은 다양한데 매뉴얼이 복잡한 것은 힘들다.
<기능은 업, 매뉴얼은 심플> 이것이 최고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의 절반도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청소기는 청소만 잘해주면 된다.
특히 강한 흡입력을 원한다.
내 좋지 않은 시력에 고양이 털과 먼지가 안보이면 최고이다.
고유의 기능에 집중하는 물품이 나는 좋다.
그렇지만 고양이 털 지옥으로 들어올 새 청소기에게 위로의 눈길을 미리 보낸다.
청소기 없는 며칠의 삶은 피곤하고도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