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이든 갑질은 존재한다.

꽃길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는 출근길도 퇴근길도 강의도 무난하고

머리 쭈뼛한 일은 없는 날이었다.

퇴근길 셔틀버스에서 브런치를 쓰고는 곯아떨어졌다 눈을 뜨니 잠실역이었고

이번 하차장은 마침 집으로 가는 버스가 서는 정류장이어서

집에 생각보다 15분은 일찍 도착하였고

그때까지는 기분좋은 하루였었다.

좀 강한 톤의 이야기로

뭐든지 쳐맞기전에는 모르는 법이다.

야구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집에 가니 항암주사를 맞으러 아침 일찍 나간 남편이 집에 와있다.

방금 들어온 모습이 아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무슨 일이 있나 결과가 나빠서 항암 주사를 못맞았나 별별 생각이 다 스쳐가는 순간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니는 대학병원 암센터의 항암주사 맞는 시스템이가 딱 어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한다.

이전까지는 아침 일찍 빈 속으로 가서 채혈을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0시에 담당 주치의를 만나고

항암 주사 종류 및 양 등을 결정한 후

12시경부터 항암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오면 6시반에서 7시 사이가 되곤했다.

물론 그 날의 컨디션은 육체적인 힘듬과 마음의 심난함이 혼합된 최고의 어려운 날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아무런 사전 고지나 안내없이

어제부터 하루는 채혈 검사와 주치의 만나기와

각종 수납과 약받기등을 하고

다음 날 10시부터 항암주사를 맞는 시스템이 되었단다.

물론 당일 짧은 시간안에 복잡한 항암약을 선택하고 내보내고 하는 의료적인 과정이 복잡하고 쉽지 않고 힘들 것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만(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사람이 느끼는 생각수준이다만.)

그리고 병원에 계시는 분들의 노고에는 늘상 감사하고 있는 사람이다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미리 안내도 하지 않고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차피 환자는 영원한 을일 수 밖에 없는데 이런 형태의 갑질은 아니다.

미리 안내했더라면 그 이후의 일정도 다음날의 일정도 미리 조정이 가능했을 것이고

마음 자세도 조금은 편하게 먹었을 것이고

환자에게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스템의 변화를 받아들일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아니면 1박 2일 입원형 시스템을 만들어주거나 하면 선택할텐데 말이다.


먼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어떨까?

당일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다음 날 다시 와야한다는 것을 갑자기 통보받으면

내려가는 버스나 기차 티켓도 바꿔야하고

아니면 오늘 하루 어디서 숙박 할 곳도 찾아야하고

당황스럽고 힘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텐데 말이다.

물론 대학병원도 다각도로 고민 끝에 시스템을 바꾼 것이겠지만

사전 안내가 없었던 점은 누가 봐도 갑질이다.

문자 안내라도 있었어야 마땅하다.

환자 우선의 경영을 표방하는 대학병원에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갑질이란 의도적인 경우에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이지만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갑질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디에서든 어느 일이든 갑질은 존재한다.

인생 꽃길만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갑질을 만나게 되면 빈정상함이 오래가기 마련이다.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이 다른 경우는 비일비재이다만(같을 경우는 거의 없다.)

나와 상대방 사이에 위계나 권력의 차이가 현저할 때는

대부분 상위에 있는 사람이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것이 모양새가 좋은 법이다.

그것이 갑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조금 더 우위의 자리에 있다하면

상대방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해봐주는 그런 구조적인 아름다움은 불가능한 것일까?


어제 남편은 항암 주사를 맞지 않아도 맞은 날과 같은 정도로 컨디션 최하의 날이었다 한다.

주사 효과를 몸에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을지도

바뀐 시스템이 주는 마음의 불편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괜찮다하니 다행이다.

따뜻한 눌은밥에 야채구이를 먹고 주사를 맞으러 출발한다.

내가 할 일은 집에서

배송오는 청소기를 받고 사용법을 숙지하고

남편 침대 시트를 빨고 맛난 남편이 사용하는 화장실 물청소를 하고 맛난 저녁을 준비하는 일과

누구에게인지 그 대상을 알 수는 없는 기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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