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도 쉬지 못한 오전

마음이 편한 것이 몸이 편한 것 보다 낫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여하튼 오늘 항암 주사를 맞으러 남편은 나가고 나는 강의가 없는 날의 일상을 시작한다.

상상 속으로는 월, 수, 금 강의하는 날은 멋진 커리어 우먼의 삶을 살고

화, 목은 효율적으로 살림에 힘쓰고

주말은 여유있는 문화생활과 푹 쉬는 삶을 꿈꾸었다만

실상은 매일 매일이 이리저리 쫓기고 치이는 일상이다.

그리고 남편이 얼마나 힘들지 가늠도 되지 않는

항암 주사를 맞는 동안

나는 퍼질러 잠을 자거나 멍때리고 있다는 것은 양심에 조금 걸린다.

누가 그러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다만...


9시에는 새 로봇 청소기가 배송되어 오기로 했었다.

역시 대기업은 시간도 잘 지키고 척척 일을 처리해준다.

로봇 청소기와 배송 기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사용하는 내가 아직 로봇 청소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고

기기 사용에 그리 익숙하거나 친숙한 편이 못되고

고양이 설이와 함께 새 로봇 청소기에 낯을 가리고 있는 중이다.

청소 시 소리가 생각보다 크고 충전 중에도 소음이 나며

걸레를 빠는 중에는 더더욱 소리가 커지고

흡입 능력이 그다지 센보이지도 않고

아마도 청소기 주변에는 전기력과 자기력이 엄청 발생되고 있을 듯 하다.

설이는 무서움 반 호기심 반으로 그 주변을 배회중이다.

아직 한 번의 대청소를 마무리하지는 못하고

새 로봇 청소기는 침대 밑에 한번 처박히는 위기를 극복하고 충전중이다.

익숙해지려면 내 가구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은 필요할 듯 하다.

다행히 심각한 수리가 필요한 이전 흡입용 청소기는 기사님이 수거해주셨다.

요즈음은 잘 버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로봇 청소기 기사님이 일을 하시는 동안 나는 팔근육 유지를 위한 콩나물 꼬리 따기에 돌입한다.

꼬리에 영양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지만

나는 미관상 도저히 꼬리가 붙은 콩나물을 먹고 싶지는 않다.

생각보다 콩나물 꼬리 따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고 팔에 힘도 많이 들어간다.

콩나물 따기를 옆에서 꼼꼼이 쳐다보는 설이 눈길이 느껴지는 것도 좋다.

그런데 오늘은 설이 눈동자가 흔들린다.

청소기를 세팅하는 곳에 가볼 것이냐

콩나물 따는 것을 지켜볼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 선 흔들리는 눈빛이다.


콩나물국을 끓이고 남편용 자연산 상황버섯물도 끓여두고

남은 콩나물 반은 콩나물 + 버섯밥을 하려고

잘 넣어두고

남편이 없는 틈을 타서 침대 시트와 숨겨둔 옷들을 세탁하고

이제는 못입을 여름용 남편 니트 반팔을 세탁소에 맡기고

망가진 세탁기는 관리사무소 신고 후 분리수거장에 내다놓고

음식물 쓰레기도 가져다 버리고

한시도 쉼없는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아마도 나보다 항암주사를 맞는 남편이 백배는 더 힘들 것이다.

힘든 가족을 두고 나만 쉬고 있을 수는 없다.

아들 녀석이 수능을 보는 날도 나는 나 스스로를 이렇게 다그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은 편하고 고통 분담의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제 새로 산 로봇 청소기가 막 풀충전을 마쳤나보다.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오늘만큼은 그의 동선과 동작을 유심히 지켜봐야겠다.

마음이 편한 것이 몸이 편한 것 보다 낫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느 일이든 갑질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