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아들 녀석 생일도 잊어버리다니

반성합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전 일찍 아픈 동생도 볼 겸

막내 동생과 중요한 의견을 나눌 겸 옛동네 목동을 향한다.

목동을 떠날 때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는 못할 것을 예감하기는 했었는데

그래도 부모님이 계셨었고 아픈 동생과 막내가 있으니

가끔은 그곳에 들리게 된다만

나에게는 기쁨과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아픔이 공존하는 곳이다.

그곳이 자기 세계의 전부였던 것은 아들 녀석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친구들도 대부분 그곳에서 같이 뛰놀던 친구들이다.

아들 녀석과 함께 목동에 들어선다.

부모님 이장하는 날 이후 처음이다.

시간으로는 얼마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어서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느껴진다.


동생들을 보는 일을 마치고서는

아들과 내가 함께 다니던 주된 산책 코스 중 하나인 단골 백화점에 들어간다.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서인데

무엇을 먹겠냐고 물으니 미역국이라한다.

그때까지도 나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오늘이 하나뿐인 아들 녀석의 생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신기한 메뉴 선정이네 하고는 백화점에서 미역국을 파는 곳을 찾아보라했다.

지하 푸드코너에서 봤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리뉴얼을 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 눈감고도 찾을만큼 많이 다니던 그곳이 낯설기만 한데

아들 녀석은 재차 미역국을 먹겠다고 한다.

그제서야 나는 흠찟하는 마음이 들어서

오늘이 며칠인가를 찾아보았고

아이코야 아들 녀석 생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아들 녀석은 예정일보다 한달쯤 먼저

태반이 조기박리되는 위험한 상황에 응급 수술을 하여 태어났다.

그래도 다행히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었으니 천만다행이었고

2.8Kg으로 태어났으나 우유는 원샷으로 잘만 먹었주었고

귓불과 귓밥이 잘 안만들어졌었으나

친정 어머니가 열심히 빚어주었고

우리 집안의 첫 번째 아들 손주라 사랑을 흠뻑 받았으며

이렇게 험난한 일생이 자기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몰랐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때는 나도 어려서 세상살이가 이리 어려운지 몰랐고

그래서 너를 이 세상에 겁 없이 내어 놓았다.

지금이라면 나는 당연히 혼자 살아서 인생의 힘듬을 오롯이 내 몫으로만 감당했을 것이다만.

그래놓고는 생일 기억도 못하고 미역국을 끓여주지도 않았다니 정말 미안하다.

아침부터 땍땍거리는 소리만 해댔으니

뚱뚱하다고 타박이나 거렸으니 미안하고 미안하다.

처음 있는 일이다. 아들 녀석의 생일을 놓친 것은.


백화점에서 맛있는 식당에서 전문가가 끓여준 미역국과 내가 해주기 힘든 생선구이 세트도 함께 먹었으며(생선 냄새를 싫어라한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돈을 뽑아 현금 봉투를 쥐어주었다.

내 실수를 현금으로 퉁치려는 셈이다.

지금 아들 녀석은 방에 있는 가을 옷을 꺼내고 자신의 물건을 정리중이다.

그 방문을 아들 녀석을 애타게 기다리는 고양이 설이가 지키고 있다.

고양이 설이보다 아들 녀석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하나뿐인 아들 녀석 생일도 잊어버린 나는

무한 아들 사랑 고양이 설이를 보고 반성 중이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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