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스시 혼밥 도전
아침약을 먹다가 남은 혈압약을 세어보니 네 알이다.
일, 월, 화, 수요일 몫만 남은거다.
목요일 오전 시내에 약속이 있어서 그때 병원에 가서 약을 받을까했는데
하루를 남기고 똑 떨어지다니.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구나 싶다.
(이사 이슈로 우울 모드 발동 중이다.)
콜레스테롤약이라면 하루쯤 안먹어도 될터인데 혈압약은 그럴 수가 없다.
내 주위에서 수술을 앞두고 하루 혈압약을 끊었다가 뇌혈관이 터진 나쁜 예를 보았었다.
할 수 없다. 남편 아침을 차려주고 병원을 향해 길을 나선다.
힘든 화요일보다는 오늘이 낫겠다 싶어서이다.
오랜만에 나간 을지로 시내는 정겹고 친숙하다.
병원도 익숙하고 나의 이전 학교도 한바퀴 돌았고 그곳의 식물들에게 안녕 인사도 했다.
여전히 잘 들 있더라.
내가 없어서 봐주는 사람도 없었을텐데도.
그곳에 가면 먹는 단골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으려했는데
(남편 아침만 차려주고 나는 방을 토마토 2개만 먹었었더니 배가 고파왔다.)
아직 오픈전이라 한다.
2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깨끗이 포기하고 길을 나선다.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열리는 전시를 하나 보고 귀가할까 했었는데
SNS에 값진 정보가 하나 올라온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레고로 여러 가지 체험활동을 하는 회사 대표님이
새로 출시한 모델을 이용한 과학실험하기 워크숍을 연다는 것이었다.
마침 새 학교에서 비교과프로그램으로 그 내용을 시도하기로 미리 약속한 것이었기에
내가 먼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급 그쪽으로 움직여본다.
배는 여전히 고프다.
그쪽은 맛집이 많은 곳이다.
조금 기다려서 맛난 것을 먹어보자 다짐한다.
내가 좋아라하는 백화점 지하 푸드 코트에 들어가서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를 고민한다.
나는 거기서 먹고 남편 점심은 포장해갈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재빨리 스캔을 한다.
솥밥은 혼자 먹기 너무 헤비하고
마라탕은 매워서 약간 기피하게 되고
라면은 얼마전 한강공원에서 먹었으니 패스하고
이리저리 선택하지 못한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마지막 구석에 스시집이 보인다.
평소 스시는 자주 먹지 않는 메뉴인데(해산물을 좋아라 하지 않는다.)
요며칠 끌리는 것을 보니 운명이다 싶었다.
남편은 항암중이라 그 좋아하는 스시를 먹지 못하니 나도 같이 안 먹기도 했는데 오늘은 참을 수 없다.
스시 브런치에 도전한다. 물론 11시즈음이다만...
호기롭게 이것 저것을 먹었다만 세 접시를 먹으니
배가 불러와서
결국 먹지 못한 낫토를 올린 초밥과
남편 몫으로는 장어덮밥을 포장한다.
내 스스로 스시집을 선택해서 혼자 먹으러 온 것은 아마도 오늘이 처음이지 싶다.
스시는 항상 친정 아버지때문이거나
아들 녀석때문이거나
아니면 좋아라 하는 친구 때문에 방문하는 식당이었다.
소량을 혼밥하기에는 딱인 메뉴임을 오늘에서야 확인했다.
두둑하게 먹고는
워크숍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교양과학책을 찾아보는 멋진 도서관에도 들렸고
(핫플이라 사진찍는 외국인들로 가득찼다.)
레고 워크숍에서 재미있는 체험도 하고
대표님과 향후 일정도 논의하고(내용은 11월 특강 후 공개하겠다.)
의미 있는 주말 오전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휴식 100%인 날을 보내리라
어젯밤 그리 굳게 다짐했건만
모두 혈압약에서 기인된 많은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다.
일, 일, 일이 기다리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사를 결정하는 무지무지 큰 일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먹어야 일도 한다.
저녁은 애호박, 감자, 소고기, 양파 넣은 고추장 찌개와
버섯, 양파 굽고 콩나물 삶아서 양념간장 얹어 먹을 콩나물버섯밥이다.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고 소리를 낸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는 이 나이가 되어도
아직도 도통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