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개가 이 안개일 듯 하다.
어제 몇 십년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은 말싸움을 대판하고는
기력이 쇠진했지만 잠에서도 분한 마음은 사라지지를 않아서 깨다 자다를 반복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더라. 지금보니)
옆에서 고양이 설이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는 주위를 뱅뱅 돈다.
설이식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남편은 왜 그렇게 수준 떨어지는 사람과 말을 섞냐 하고
아들과 막내동생은 잘 싸웠다 위로해 주었지만
찜찜하고 기분 나쁘고 후회되고 아무 일도 없었던듯 하루가 시작될리는 만무이다.
이번 주와 다음 주 실험 기구를 하나 빌려서 활동을 하려하니
생각보다 미니전기오븐의 크기가 커서 차를 가지고 출근했다.
9월 첫 주 이후 처음이다.
이제 제법 길이 눈에 익어서 노래도 들으면서 운전이 가능한 것을 보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것은 맞다.
그런데 서울을 빠져나오는 그 부분을 경계로 묘하게 안개가 드리운다.
마치 내 앞길의 힘듬과 모호함을 대변해주는 듯
가시거리 100M가 안되어 보이는 안개가 계속된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터널이 오늘은 이리 반가울 수가 없다.
사람 참 상황에 따라 마음이 요리조리 왔다갔다리 한다.
안개 길을 드라이브하는 것이 멋있다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마도 옆자리에 탄 운전을 못하는 사람일게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큼
큰 장애물은 없다.
어제 점심 약속에는 차를 가지고 갔었다.
익숙한 이전학교 옆 대형 빌딩의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웠었다. 물론 주차는 처음이다.
그곳에 입점한 모 카페에서 무언가를 먹으면 3시간 무료주차라는 정보를 보았었다.
일부러 약속 장소를 그곳으로 정하고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샐러드와
감자와 계란이 들어간 샌드위치 빵도 사고
태극당과 콜라보한다는 안내를 보고 혹해서
모나카 아이스크림까지 가득 샀는데
무료 주차는 한 시간만 가능하다한다.
주말에는 세시간을 주는데 평일은 무료라니
내가 찾은 정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차라리 주차료를 내는 것이 훨씬 더경제적일뻔했으나 오늘 도시락으로 먹는다 생각하기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런데 그 대기업 건물의 지하 주차장 진입로가 엄청 좁다.
간신히 간신히 미로를 따라 가야하고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은 앞이 잘 안보여서 가늠해지지가 않는다.
양쪽으로 각각 50cm만 폭을 넓혀주었으면
누구나 쾌적한 지하주차장 진입이 되었을텐데
아쉽다.
물론 예산 문제가 크게 작용했을것이다만.
어제는 지하주차장에서, 오늘은 안개 때문에
운전에 다소의 어려움이 발생했다만
무사히 미니오븐을 실어서 학교에 도착했고
오늘부터 일주일간 학생들은 <나만의 원소기호 키링>을 만들어서 좋아라할 것이고
그것을 볼 때마다 나와 함께 한 수업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아직은 어젯밤 말싸움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회복 되지는 않았고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는 않지만.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잠시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해주던 언니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매번 열심히 따라 부르던
<안개 낀 장충단공원>은 못 가봤는데
왜 그런 노래를 만들었을지 약간은 이해가 되는
안개 가득한 아침이다.
신나는 강의에 전념하는 것이 어제의 기분나쁨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