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경험치가 제일 중요하다.
과학자들도 자신의 책상과 컴퓨터 앞에서
이론만 주구장창 연구하는 사람이 있고
복잡한 실험과정을 통해 증명을 해야 하는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둘 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는
실험하는 과학자의 어려움에 한표를 던지는 쪽이다.
머릿속으로는 다 될 것 같고 다 아는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난관이 생기고
어려움에 봉착하기 일쑤이다.
물론 그 과정을 럭키하고 나이스하게 지나가면
새로운 연구 결과도 탄생하고
자신의 업적이 되는 일도 가끔은 생기겠지만
아마도 로또 당첨 수준의 확률일지도 모른다.
직접 해보기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부지기수로 튀어나온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두 배는 많다.
오늘 나는 25년만에 막내 동생이 대학 교수로 있는 조치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대학교수가 되고 곧바로 결혼을 하여 조치원에 살았던 신혼초 25년전에 딱 한번 방문하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물론 동생이 서울에서 왕복을 하면서 지냈던 시간이
더 많았었지만
내가 너무 무심하기도 했었고
몹시 현생에 바쁘기도 했었다는 것은 핑계이다.
막내 동생 부부는 대학교수부부인데(남들이 보기에는 편하고 좋다할 수도 있겠다만)
한 명은 조치원에 있는 대학교이고
한 명은 창원에 있는 대학교이니
결혼 생활 내내 주말 부부였던 셈이다.
아니다. 1년 미국에 연구년 나갔을 때는 늘상 함께 있었겠구나.
나는 지리적인 부분이 젬병이라서
조치원과 창원이 얼마나 먼 거리인지
그리고 막내 동생이 계속 왔다갔다한
서울과 조치원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를 체감하지 못했었다.
조치원까지의 기차표를 사면서야 그동안
동생 부부의 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가를 비로소 실감한다.
주말이라서인지 갑작스럽게 표를 찾아서인지 기차표는 거의 대 매진이다.
할 수 없이 수원까지는 입석 혹은 지하철을 이용하고
수원에서부터 조치원까지는 기차를 타고
일을 마치고 나면 용산역까지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기차표를
코레일 우수 고객인 막내 동생이 간신히 구해주었다.
일단 티켓팅에서부터 전쟁인 셈이었는데
이런 일을 그들은 무려 25년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막내 동생은 자기 할 일을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편이었다.
막내로 작게 태어나고 우유도 잘 안 먹고 자주 울어서 내가 업어준 적도 몇 번 있다만
그 뒤로 혼자서 씩씩하게 공부도 잘하고 일처리도 잘 하고
그 어려운 중국 유학길에도
미국 포닥 동안에도
지방 대학교수 임용 후에도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스타일이다.
알아서 척척 잘 해낸다는 그 뒤에는 얼마나 많은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하는지도 잘 안다.
남들 보기에는 나도 그렇게 보일테니 말이다.
물론 묵묵히 착하게 동생을 늘상 지지해주는 남편이 있었음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고맙다.
이제야 아직 조치원에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그 두 부부가 지방대학 교수를 하면서 서울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교육시키면서
그리고 그 아들을 미국 유학을 보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아무것도 보태주지 못했던 그동안의 내 행동이 너무도 미안해지면서 말이다.
내 앞길이 평탄치 못해서 동생의 앞길을 걱정해 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은 반은 맞지만
그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조금 더 동생의 어려움에 공감해주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하루 내려가는데도 이리 힘든데
이 길을 매일 왕복하기도 했었던 힘들고 오랜 날들이 있었고(그러니 삐쩍 말랐던 것인데)
따라서 하나뿐인 아들 녀석 밥 채려주는 일도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기차에서 자고 오면 피로가 회복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출퇴근 셔틀버스에서의 내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눈은 감고 있지만 결코 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 25년만의 조치원 방문은 그런 의미에서 막내 동생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그 전에 남편 식사 거리를 챙겨야하고 로봇 청소기도 돌려야하고 고양이 설이랑 눈맞춤도 해주어야 하고
하루만 안 버리면 다락같이 쌓이는 분리수거도 해야 하고
명절이라고 아들 녀석 회사에서 보내준 참기름과 들기름, 김 세트와 고추장, 된장, 막장 세트
그리고 고마운 후배가 보내준 갈비찜 세트도 정리해야 한다.
추석이 다가오기는 하나보다.
담장 위에 익은 감이 올려져 있다.
친정 아버지가 홍시를 좋아라하셨고
추석 다음날이 아버지 생신날이다.
이천호국원 높은 탑층에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