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 맞다.

몸소 실험을 수행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by 태생적 오지라퍼

조치원역에서의 일은 어떻게 보면 순탄하게

어떻게 보면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친 채로 진행되었고(깔끔함 일처리가 이제는 쉽지 않다.)

이제는 돌이키기가 쉽지 않고

인생은 될 때로 되라이고(엄청 준비하고 계획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1/100밖에 없는 듯도 하고)

머리가 아프고 기운은 소진한채로

엄청 멋진 ITX-새마을 기차편으로 용산역으로 돌아왔다.

깨끗하고 넓고 충전할 수 있는 코드도 있고 다 멋졌으나 8분 연착이었고

냉방의 강도가 세서(나에게만 그랬을까나. 긴 팔, 긴 바지 그것도 얇지 않은 청바지 천이었는데도)

목이 잠겨오고 조금만 더 길게 탔으면 감기에 꼼짝없이 걸릴뻔했다.

아니, 걸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운 좋게 지하철 귀가 중 동작역을 지나면서 여의도 불꽃놀이 맛도 조금은 보았는데

(직접 가서 볼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100만명이라니. 신용산살때는 집에서 본 적이 있고 이제는 여의도 사는 후배가 보내주는 사진만 본다.)

집에 들어 오는 순간 정신이 혼미하다.

분명 저녁 친구 약속이 있다던 남편이(그래서 걱정을 덜하고 나갔었는데)

8시반이 넘은 그 시간에서야 저녁을 먹으려고 반찬을 주섬주섬 꺼내고 있다.

항암약 먹을 시간도 넘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남편에 대한 화가 몰려온다.

저렇게 대충 먹어서 어떻게 암이 좋아지겠냐부터 시작해서

자기 맘대로 살다가(물론 나름 처절한 노력은 했겠다만. 안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나와 아들 녀석에게 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평생 마음 고생의 근원을 제공해놓고

아프고 늙고 병들고서야 나의 수발을 받겠다는 것인지 괘씸하고

내 인생이 너무도 처량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 누었으나 힘은 드는데

잠이 쉽사리 들지는 않는다.


간신히 조금 잠들었을까 싶었는데 갑자기

위장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위경련이다. 몇 번 증세를 겪어봐서 안다.

위에 커다란 돌을 얹어놓은 것처럼 무겁고 딱딱해지고 배가 뒤틀린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조금 나아질텐데 그것도 쉽지 않고

온 몸은 땀으로 젖어 화장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내 옆에는 늘 그렇듯 고양이 설이만 근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다행히 더 심해지지는 않아서

설사 한번 하고는 참을만한 상태가 되었지만

이미 온몸에 힘은 하나도 없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 맞다.

어려운 일을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대판 말싸움도 하고

그러면서 남편이 엄청 미워지고

모든 일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니

위가 탈이 안 날 수 없다.

먹은 것은 딱히 저녁 대신으로 기차 안에서 허겁지겁 먹은 과자와 보리 음료수밖에 없으니

그것 때문에 나타난 현상은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스트레스이다.

그리고 모든 스트레스의 근원은 돈이다.

아마 남편을 위암으로 몰고 간 스트레스도 그것일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급속도로 공장의 경영 상태가 나빠졌고

은행의 이자율은 다락같이 높아졌으니

소상공인들의 몰락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IMF로 주저앉고 코로나19로 무너졌으니 시대 탓인가?

나는 사업하는 사람이 제일 싫었었는데(친정 아버지가 사업을 했다. 늘상 돈때문에 고생하는 엄마를 보았다.)

대기업 다니는 건실한 사람이라서 결혼한 것인데(이상한 반골기질이 있다.)

내 인생은 왜 이리도 꼬인 것일까?

굳이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임을 스스로 실험까지

할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그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결과라서

굳이 실험이 필요없다만.


오늘 아침 아직 배는 묵직하고(며칠 갈것이다.)

나는 먹고 싶은게 1도 없지만(며칠 전부터 그랬다.)

남편을 위한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것이 또 슬몃 화가 나려 한다.

안된다.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지어야 월, 수 강의를 할 수 있고

그 이후 추석 연휴에 쉬면 된다.

나를 다스려본다.

내 옆에는 아직도 나만 바라보는 고양이 설이가 있다.

내가 걱정되는 것인지

자기 아침을 달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만

고양이에게 받는 위로가 대단하다.

그 누구의 위로보다도 더 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수원역이 주는 생동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