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게 핑계를 대본다.
얼음 냉장고 A/S를 마치고 여사님이 <세달 후에 뵐께요.> 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답을 하지 못했다.
이사간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고양이 설이를 아주 이뻐라해주셨고
A/S 동안에 설이는 그 주위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었다.
청소기 배송 기사님은 유쾌하기 짝이 없었고
강아지를 키워서 강아지와의 소통은 도사 수준인데
고양이는 도통 속을 알 수 없다고 고양이 이야기도 나누었다.
별일 없었던 오전이다.
점심을 먹고 남편과 근처 산책을 나섰고
어제 행사까지 치러서 파김치가 된 나는
단골 반찬집에서 반찬을 사기로 한다.
물론 소량의 송편도 함께 말이다.
룰루랄라 갔는데 송편이 없다.
평소에도 그 반찬집에는 술떡부터 각종 떡이 놓여있었는데 다른 떡은 다 있는데 송편만 없다.
언제 나오냐고 물어도 잘 모른단다.
약간은 삐지는 마음이 들어서 남편이 먹고 싶다는 고등어무조림만 사서 나온다.
바로 앞 노점에서 꽈리고추와 오이를 사고는
5,000원이 당첨된 로또 복권을 한 장 교환하고
남은 잔돈으로는 1,000원짜리 긁는 복권 2장을 샀다.
보름달님의 영험함에 기대보겠다는 작은 심보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바지 주머니에서 로또가 떨어지는 것 같아 엄청 놀라면서 주웠는데
아뿔싸 그때 긁는 복권이 함께 떨어졌었나보다.
그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집에 와보니 없다.
이런 허망한 일이 다있나.
그래서인지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과 말다툼도 했다.
토요일에 아들 녀석도 함께 어머님 요양원에 인사를 가기로 했는데
그 전날 도련님 아들이 인사를 온다는 이야기를 한다.
일본에서 들어오자마자 할머니를 보러 온다면서...
그 이야기가 왜 내 아들 녀석의 무심함을 흉보는 말로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지나치게 다정하고 명랑한 도련님 아들 녀석과
무뚝뚝하기 이를데 없는 내 아들을 비교하는 말로 들리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었다만
나는 너무 지나친 다정함을 좋아하지 않기에
그리고 내 아들녀석이기에 편을 들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조카들 이야기를 서로 하지 않는 것으로 유치한 말싸움은 끝이 났다.
송편만 있었다면 나는 송편을 오물조물 먹고 오느라 말싸움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송편만 있었다면 나는 휴대폰을 옮기지도 않았고 그러면 긁는 복권을 떨어트리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편이 먹고 싶은 나는 기어이 재래시장 나들이에 나선다.
그리고는 긁는 복권 두장을 다시 샀고
(떨어트린 복권이 당첨 복권이라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만
복많은 누군가가 주어갔을 것이고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불우이웃이라면 좋겠다만)
드디어 송편을 사려는데 아뿔싸 현금이 없다.
내가 만원을 더 넣어왔나 아닌가 기억조차 명료하지 않다.
계좌이체를 해주고 송편 한 팩을 드디어 손에 넣었고
재빨리 하나를 먹었는데 아이고야 내가 기대한 그 맛이 아니다.
색색깔별로 하나씩 먹어봤는데 그 맛이 아니다.
깨가 문제이다.
깨가 알알이 살아서 날뛰는 본연의 달달함이 있어야하는데 그것이 없다.
오늘 일어난 모든 불행한 일은 모두 다 송편 때문이다.
송편 생각이 왜 났던 것이냐.
명절 음식 안한다고 굳게 다짐 했는데 송편은 왜 사먹냐 말이다.
(다행히 긁는 복권 두 장 중 하나는 1,000원 당첨이다. 오늘 나의 저녁은 빈 공간만큼의 송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