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고양이의 세계
이번 가을방학동안 가장 마음이 편해보이는 것은 우리집 서열 1위 고양이 설이이다.
내가 일단 아침 일찍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듯 하다.
월, 수, 금 출근 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었다.
언제 나갈지 몰라서 세수하는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와서는 옆을 지키고 있다가
빠이빠이하고 손을 흔들면 따라서 흔들리는 눈동자가 확연하게 보였었다.
그런데 요며칠 그렇게 일찍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는 듯
아침에 나를 사알짝 건드려보고는 내 주위에서 편하게 다시 잠을 청한다.
그리고는 코를 크게 골면서 자곤한다.
저녁에 잘때는 그 콧소리가 안나는 듯 하는데
아침잠에서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책상 겸 식탁위
내 반경 30cm 위치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물론 내가 글을 다쓰고 일어나면 안자고 있었다는 듯이 자기도 벌떡 깰 것임에 틀림없으니
글을 다 써도 강의 준비를 하면서 당분간 자리를 지켜줄 것이다.
고양이 설이의 아침잠을 위해서 말이다.
더운 여름 한 때 설이가 츄르먹기를 거부하는 듯 했었는데
더위 때문인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오빠를 애절하게 기다려서인지는 모르겠다.
며칠 전 오빠가 다니러 왔을 때 화장실 문 앞에서
두 손과 두 발을 공손하게 모으고
오빠가 나오기만을 학수고대 기다리던
그 애절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주 로맨스 영화의 절절한 사연있는
여자 주인공 모습이었다.
설이가 그리 좋아하는데
고양이 보러라도 집에 자주 들릴 법하나
아들 녀석은 자기가 데려다 놓은 고양이인데
쌩까는 중이다.
강하게 키우는거라나. 나쁘다.
고양이 설이는 배가 고픈 것보다
애정이 더 고픈 녀석인 것을 잘 알고 있을텐데 말이다.
요즈음 새로 생긴 설이의 휴식 장소는
새로 구입한 로봇청소기 충전대이다.
그 자리가 높고 거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전략적으로 좋은 위치임에는 틀림없다만
설이의 체중이 그 충전대에게 무게감으로 작용하여 고장날까봐 노심초사중이고
자기 장난감이 아니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주었는데도 도통 못알아 듣는 표정이다.
내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고양이 설이는 인생 2회차 사는 것임에 틀림없고
(가끔 친정아버지의 레이저 쏘면서 혼내실때의
그 눈빛이 나온다. 놀랍게도.)
머리도 비상하여 이쯤하면 그 곳이 자기를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데 말이다.
내가 놀라서 부르르 떠는 것이 귀여워서는 아닐테고
그곳이 마음에 든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을방학 내내 우기라도 된 듯 비가 내리고 있는 아침이다.
이제 6시가 넘어도 밖이 깜깜한 계절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무슨 창밖으로 파리가 한 마리 날라다니는지
갑자기 내 옆에 누워서 코를 골던 설이가
거실 창문 앞으로 급출동을 했다.
3층이라서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이제 18층으로 이사가면 절대 파리 같은 것은 관찰하기 어려울테니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기 바란다.
공간형 동물이라는 고양이 설이에게 다시
이사라는 새로운 공간을 맞이하게 해서
조금 많이 미안하기도 하다.
아마 하악질 꽤나 하고 다닐 듯 하다.
설이가 새 공간에 익숙해질만큼의 시간은 나에게도 필요할 것이다만
우리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 공간과 시간이 소중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이사가기전 설이가 파헤져놓은 일부 벽지도 다시 도배해야 하고
설이 털이 엄청 뭉쳐져 있을 창틀 등의 청소를 위한 전문청소업체도 불러야 하지만
설이가 주는 마음의 평화가 그 돈보다 더 값진 것임을 이제는 잘안다.
반려 로봇보다는 반려 동물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알아듣고 이해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래도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백배는 더 많은
그리고 알다가도 모를 고양이 관찰 초보자 수준이다.
부족한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맙기만 한 설이와
함께하는 추석날 아침이다.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계셨더라면 분명
설이를 엄청 이뻐해주셨을 것이다.
<동물의 왕국> 애청자셨다.
주말에 늘상 켜놓고 소파에 누워 계셨었다.
분명 주무시는듯 했었는데 티비를 끄면 안잤다고 보고있노라고 늘상 이야기 하셨었다.
엄마는 털 때문에 싫어하셨을게 틀림없고.
이제 두 분께 간단한 상 차려서
절 두번 할 시간이다.
잘 계실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