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나위없이 좋은 날씨이다.
드디어 빨간우산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아침이다.
야호.
그간의 무모한 도전도 했었는데
오늘은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천연 비타민 D 합성도 꼭 필요하다.
재빨리 여름옷들을 치워놓고 길을 나선다.
지난번 가려다 잘못가서 엉뚱한 전시를 보고 온 것을
오늘 만회하려는 속셈이다.
<서울시립미술> 까지만 보고 덕수궁 옆 익숙한 그곳을 찾아갔다 낭패를 본것이다.
<서울시립미술 아카이브>를 찾아갔어야 한다.
아니 왜 이름을 이리 비슷하게 하는거냐.
나같은 사람이 몇명은 더 있을게다.
평창동이고 기후변화 관련 전시라
나의 연구 TF에도 강의에도 쓸모가 있으리라 미루어 짐작된다.
광화문에서 간단하게
대파 크림치즈 베이글에 커피 반잔을 마시고
(한때 그 동네 주민이었던 그 시절처럼 자연스럽게
차도녀인양 우아하게 테토녀인양 무덤덤하게)
경복궁 그리고 세검정을 거쳐 평창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제법 이른 아침인데 경복궁 앞에는 인산인해이고
광화문도 서촌도 벌써 북적인다.
지금 나가볼까하시는 분들은 각오하고 나오시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가는 연휴가 아깝고
오랫만에 반짝하는 햇빛이 그리워서 나왔을거다.
나처럼 말이다.
평창동은 늘 그렇듯 고즈넉했고
전시장은 건물도 전시물도 멋졌고
연구보고서에 담을 사진과 아이디어 몇개를 건졌으니
오늘 교통비 값은 한 셈이다.
두 정거장쯤 걸어서 평창동을 느껴보았는데
후암동, 해방촌, 평창동의 공통점은
언덕길의 경사가 꽤 있다는 점이다.
며칠전 우중 남산 산책에서 계단을 내려오면서 다리에
엄청 힘을 주었는지 종아리에 알이 배겨서
어제는 아들 녀석이 꺼내준 마사지기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나
아직 계단 내려갈때는 아직도 뻐쩡다리가 된다.
눈오는 날의 언덕길은 생각만으로도 힘들다.
개인 주택에서의 삶에 선뜻 동화되지 않는
101가지 이유 중 한가지이기도 하다.
평창동 우아한 산책을 마칠때쯤
생전 먼저 연락이 없는 남편에게 문자가 들어온다.
무슨 일 났나 싶어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데
< 야채 듬뿍 넣고 삼양라면 끓여먹을까? >
이렇게 써있다.
삼양라면은 집에 없는데
콕 집어 그 라면이라니 사가지고 들어가야겠다.
라면에 넣을 야채는 없고
감자, 고구마, 애호박, 가지, 양파만 있고
하필 대파도 똑 떨어졌는데
사가지고 들어가야겠다.
그런데 나도 약간 라면에 끌리기는 한다.
묵은지랑 먹음 딱이겠다.
계란은 한개밖에 없다만 남편 주면 된다.
항암에 필요한 단백질은 오로지 계란으로만 해결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래서 살이 찔리 없다.
(놀랍다. 집 앞 편의점에 삼양라면이 없다. 안나가서 안들여 놓는단다. 언제적 시대에 사는걸까? 남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