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단계가 있다.

여름 옷 정리의 날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빗속의 고터 옷 구경은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지만

(구입 의사나 욕구가 샘솟지 않았다. 드물지만 이런 날도 있다.)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는 옷 구경임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점점 더 빈도수와 좋아하는 강도는 낮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쁜 옷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에게 어울릴만한 옷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구경하다가 하나 적절한 가격에 딱 필요한 옷을 샀을 때 얻게 되는 반짝 희열감이 분명 있다.

물론 그렇게 사가지고 와서 집에 있는 옷과 코디해보았을 때 전혀 느낌이 안사는 실패의 경험도 많다.

나는 이 과정들을 좋아라하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옷을 구매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동생들이 여러 개 묶음으로 옷을 사서 치수가 안맞거나 기타 이유등으로 나에게 준 경우는 있을지언정.

내가 수업에서는 AI를 자주 활용하곤 하지만

옷구경에는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을 좋아라하는 이유 중 한가지이다.


그런데 이렇게 옷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실내복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옷이다.

철저하게 출퇴근용으로 가능한 옷을 구입하는 나에게는

그 옷이 오래되고 낡고 이런저런 이유로 출퇴근이 안될 경우

자동적으로 실내복으로 등급이 하락하게 되고

실내복으로 뽕을 뺄만큼 입고 나면 그 옷은 드디어 수명을 다하게 되고

작년부터는 옷을 기부하는 어플을 통해서 처리하곤 한다.

물론 그 사이에 전혀 나와 어울리지 않거나

이상하게 마음이 안가서 못입는 옷들은

나와는 궁합이 안맞는다 생각해서 기꺼이

새로운 쓰임새를 위하여 플리마켓으로 내놓기도 한다.

그게 그 옷을 존중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나에게 집에서 입는 실내복이라는 카테고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용도로 옷을 사본 적은 없다.


일평생 이렇게 살아왔던 내가 당황했던 일은

결혼을 해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그 시기였다.

직장과 먼 곳이어서 퇴근하고 나면 파김치가 되곤 했는데

집에서는 하늘하늘하고 우아한 실내복(긴 드레스용 실내복이 티비에 나올때였다.)을 입고

저녁 준비를 하기를 희망하셨나보다.

(그건 티비 막장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일 아니냐?)

아니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정신없는데 긴 드레스가 웬말이냐.

치마 끝을 밟으면 넘어지는데

평소에 치마도 안 입는데 말이다.

친정부모님은 당시 월남치마라고 불리는 그 긴 치마가 집안 먼지를 다 쓸고다닌다고 질색하셨다.

이렇게 집안별 생각의 차이가 큰 법이다.

그러면서 며칠 지나고 나니 내가 입기를 원하시는 실내복을 두어개 사다주셨는데

(그리고는 이런 것도 준비 안해서 보냈다고 우리 엄마 흉을 살짝 보셨었다.)

나는 그 옷을 어디다 쳐박아두었는지 몇 번 입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기분도 엄청 나빴고 절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시어머니에 대한 첫번째 소심한 반항이었다.


옷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인드를 나타내는 수단 중 한가지이다.

내가 이런 이런 성향이라는 것을 옷차림으로 일단 파악하게 해주는 나를 알리는 수단 중 한가지이다.

그러니 옷을 선물한다는 것은 매우 친밀한 관계이거나 아니면 잘못된 선택이다.

이번 여름.

평소에는 외출복으로 입던 옷들을

내 스스로 실내복으로 단위를 낮추고 열심히 입어댔다.

날이 더워서 실내복도 하루 이상을 입기 힘들었던 이유도 분명 있고

이제 입을만큼 입어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장렬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떠날 시간이 되어간다.

아직 미련이 남아서 내년 여름을 기약할까말까를 고민하게 하는 옷들도 있긴 하다만

미련 없이 오늘 여름 옷 정리에 들어갈까 한다.

이제 집에서도 긴팔, 긴바지를 입어야 하는 시기이고

다행히 오늘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기운차게 여름 옷 정리에 들어가기 딱 좋은 날씨이다.


모든 것에는 단계가 있다.

한 단계씩 하락하는 일은 무엇이든 매우 슬픈 일이다.

그래도 아직 쓰임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기만 하나(내 처지와 비슷하다.)

언젠가는 제일 아래 단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각오해야한다.

옷이든 그것이 사람이든 영원한 상위 단계는 없다.

그 단계 하락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것이 어쩌면 일생의 마감으로 가는 일 중 한가지일지도 모른다.

열렬히 일한 나의 오래된 여름옷들이여.

고맙다. 이제 은퇴의 시기가 왔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다시 태어나는 기쁨이 있을수도 있다.

그때는 부디 최상위 단계가 되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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