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시점이었다.
연휴 끝에 출장을 가는 아들 녀석을 회사까지 배웅하고
(안되었다. 아무리 일이지만 남들 다 쉬는 날 못 쉰다는 것은 엄마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플 뿐이다.)
차를 받아서 목동 동생네로 출발했다.
아들 녀석이 받아온 명절 선물을 나누기 위함이다.
고추장, 된장, 막장 세트와(이전에 받은 것도 아직 다 먹지 못했다.)
참기름, 들기름, 김자반 세트(시어머님댁 정리하면서 가져온 들기름이 아직 두 병이나 있다.)
어디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받아온 숟가락 젓가락 세트 그리고 감과 귤을 조금씩 넣었다.
다들 어디 좋은 곳에 갔는지 길이 뻥 뚫려서
강동구 길동에서 양천구 목동까지 30여분에 주파한 것은 난생 처음이다.
먼저 아픈 동생을 살펴보고(이제 30kg 대에 진입한 듯 뼈만 남았다.)
돌봐주시는 여사님께 감사함을 표하고
막내 동생 부부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제 그 <꼬들 라면>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이 내 브런치 글을 읽은 모양이다.
동생은 마른 비만이라하고(내가 보기에는 비만이 될 리가 없는데)
당뇨 위험군이라고 한다.(그것도 믿을 수가 없다. 먹는 양이 엄청 작은데 말이다.)
남편과 비슷한 당뇨 위험군이라 남편의 입장을 충분히 백번 이해한다고 말한다.
오늘 내가 가져간 감도 무지 좋아하지만 혈당때문에 못먹는다 한다.
지독한 빵순이이지만 혈당 걱정에 빵을 제대로 먹은지 오래라 한다.
형부도 야채 듬뿍 넣은 라면을 희망했다는 것은
참고 참고 참았다가 혈당을 걱정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다 참다 버틸 수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했을거라고
<꼬들 라면>은 라면 봉지 뒤에 끓이라는 시간만 맞추면 되는건데 뭐가 어렵냐고
당뇨를 걱정하는 사람의 심정을 너무 모른다고.
정신이 번쩍 나는 채찍이다.
그렇다. 아프고 걱정하는 사람의 심정을 어떻게 내가 10분 이해하겠는가.
반성하며 동생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염색을 위해 미용실로 향했는데
막 주차를 하려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온다.
11시 반으로 예약한 줄 알았는데 11시였다고.
다행이다. 주차를 걱정하며 일찍 와서 막 11시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나 뿐만 아니라 친구도 이제 깜빡증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고 일상이 되어간다. 슬프다.
머리를 다듬고 염색을 하면서 나의 사정을 그래도
잘 아는 친구에게 하소연을 한다.
물론 <꼬들 라면> 사건도 포함해서 말이다.
착한 친구는 내 편을 슬쩍 슬쩍 들어주면서
나를 격려해준다.
자기 남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면서 맞장구도 쳐준다.
착하나 고지식하기가 이를데없고 과거의 생각에 얽매여 있는
그리고 과학적 사고라고는 1도 없는
그 어처구니없는 많은 에피소드들을
함께 나누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맛난 당근이다.
지인 한 명이 급 번개로 합류하고
맛난 것을 먹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워크숍 장소도 답사하고
또 맛난 디저트를 먹고 공식적인 명절 휴가를 마감한다.
그리고 그 만남의 끝에 친구와 지인이 이야기한다.
잘하고 있는데 아픈 사람이니 10번만 더 봐주라고.
그렇다.
지금까지도 많이 봐주었지만 10번은 더 봐줘야겠다.
오늘은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당근과 채찍을 만났다.
시간도 함께 해주고 당근과 채찍도 선사한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다시 힘을 내서
남편이 걷기 운동을 나간 동안
그의 방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내가 최선을 다해야 나중에 나중에 내가 덜 힘들 것이라는 그 말이 뇌리에 박힌다.
친정 아버지를 얼마 전 보낸 지인의 어머님이 하신 이야기이다.
멋진 한강뷰를 보유한 그 공간에서는
세상 아무 걱정도 없어보이는 많은 젊은 커플들이 명절을 즐기고 있었다.
홀로 쓸쓸이 출장간 아들 녀석의 뒷 모습과 겹쳐진다.
마냥 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