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너에게는 너무도 가혹하다.
사과를 사러 나선 길에 막내 동생에게 톡이 들어왔다.
많이 아픈 셋째 동생이 폐렴으로 다시 병원에 들어갔고
병실이 없어서 응급실 복도에서 대기 중이라고.
안 봐도 그 상황이 어떨지 상상이 된다.
벌써 여러 번 그 과정을 보호자로서 해봤고
이미 외삼촌과 부모님의 경우에 적지않게 봤던 순간들이다.
지난 추석 연휴때 들렀을때는 그냥 저냥 상태에 변동이 없었던 듯 보였는데
그 사이 비가 계속오고 기온이 떨어져서 그런지
이제는 무엇이 나빠진 원인이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인 그런 상태이다.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지,
언니라는 소리를 듣지 못한지 벌써 4년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동생의 병세가 급작스럽게 나빠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뒤로 쾅하고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공식 병명은 파킨슨 증후군이다.
그해 1월에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3월에 나의 마지막 학교로 이동하고 며칠 되지 않아
동생이 코로나19에 걸렸고 그 후유증으로 급성 폐렴이 되었다가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그리고 그곳에서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 3월. 나와 막내는 엄청 눈물을 흘렸었다.
중환자실 간호사와 괜찮은지 여부를 확인하다가 지하철역에 주저앉아서 울고
막내는 매일 살려달라고 A4 용지 한 장씩을 꽉 채우기도 했다한다.
물론 동생의 두 아들과 남편의 마음이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거의 두 달 이상을 병원 생활을 하고 나온 동생은
목은 뚫었고 엉덩이는 괴사가 일어나서 옷감 기워놓은 것과 같이 수술을 했고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그래도 인지 능력은 그대로여서
그 병상에서도 남편의 생일을 기억하고
두 아들 얼굴 보는 것을 낙으로 버티는 것으로 보여졌다.
그 후에도 여러번 폐렴이나 기타 합병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이미 체중은 30Kg 대이고
지금은 어머니 돌아가실 때 쯤의 모습과 엄청 닮았다.
평소에는 엄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결코 없었는데 말이다.
오늘 점심에 들렀던 노들섬공원이 동생과 마지막 산책을 같이 했던 곳이고
동생은 그곳에서 자신의 사진을 찍어달라했었고
오랫동안 그 사진이 카톡 대문 사진에 걸려있었다.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던 그 시간에
동생은 아마도 대학병원에 들어갔나보다.
나와 막내는 이제는 <살려달라>고 기도하거나 울지는 않는다.
너무 고생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이제는 그만 평안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과
부모님께서 옆으로 데려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살짝 든다.
물론 많이 섭섭하고 엄청 헛헛하겠고
다시 얼마간은 눈물 흘리는 날을 보내겠지만
그리고 막상 부모님이 아닌 형제를 먼저 보낸다는 것이 어떤 마음이 들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이제는 간호하는 가족들도 너무 힘들고 지쳐보이고
환자 자신의 마음도 너무 아플대로 아파 썩어문드려진지 이미 오래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동생아. 오래 버텼다. 이제 마음 편하게 가도 된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오래토록 기억해주겠다.
내 동생이었지만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다.
너의 빛난 미모를 시기 질투했던 못난 큰 언니를 용서해주기 바란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버텨내기를 사실은 더 기도하고 있단다.
면회가 된다면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은 밤이다.
운명이 너에게는 너무도 가혹하다.
그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