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풍요로운 수요일의 마감 직전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나간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초저녁 잠이 많은 스타일이니 나의 지금 시각은

은행 마감 직전 혹은 회사의 퇴근 직전이나 다름없다.

무사히 2타임의 강의를 마치고

(같은 수요일 같은 강좌 강의인데 수강생에 따라 수업 분위기는 차이가 엄청 난다.

오전 타임이 더 얌전하다. 다들 졸려서 그런 것인가?)

중간 한 시간 쉬는 시간에 스테이크 샐러드를 하나 사서 스테이크만 소스 찍어서 먹고

나머지 야채는 남편 저녁용으로 쟁여두었다.

그리고는 밖에서 나는 노랫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이 그리로 향해서 잠시 가을 작은 음악회를 구경하기도 하고

(무릎 상태가 안 좋은데도 저절로 그리로 가게 되더라. 그게 음악의 힘이다.

밴드부 녀석들이 기억이 난다.

그들이 연주했던 <한페이지가 될수 있게>가 기억나는 시간이었다.)

그 사이 사이에 오랜만에 파란색이 보이는 하늘을

족히 열 번은 올려다 본 것 같다.

물론 사진도 10장은 찍었다.

아직 학교의 단풍은 시작하려는 마음만 먹은 듯 했다.

그래도 아마 그들의 시간은 그리 멀지는 않았을 것이다.


10월은 대학생들에게는 중간 평가의 시간이다.

따라서 많게는 3개 정도의 시험 혹은 과제가 줄지어 있는 시기라서

학업에 열중하라는 의미로(나의 깊은 뜻을 알려나 모르겠다만)

저녁 늦게 운영하는 비교과 프로그램 시간을 모두 뺐더니

이른 퇴근 시간이 되었고

태양 빛이 내리쬐는 시간에 퇴근 드라이빙을 하니 에너지도 뿜뿜이다.

고속도로에 차도 적당하고

내 플레이리스트는 오늘도 열일중이고

올려다보는 하늘은 파랗고(일부 구름이 몰려오고는 있었다만)

상쾌하기가 그지없다.

이런 가을날을 모두가 바라고 희망했었기에

오늘 SNS 에는 하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나도 한 장 보탰다만)


빠른 퇴근 후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는게 국룰이다.

거실창을 열어 환기도 하고(고양이 배변 냄새가 난다.)

막 배송 받은 탈취제를 남편방과 남편용 화장실에 가져다 두고

(환자와 늙은 아저씨 냄새가 섞여서 특이한 냄새가 난다.)

고양이 엉덩이도 두드려주고 간식도 주고

내일 영재교사 대상의 특강을 한 준비물과 강의안도 확인하고

실비보험 청구서류도 챙기고

그리고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자니

열 다섯번째 항암 주사를 맞은 피곤하고 어지러운 얼굴의 남편이 귀가한다.

이만하면 되었다.

풍요로운 수요일 저녁이다.

남편이 두 발로 걸어서 돌아왔고

내 무릎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채 약도 다 먹었고

설이는 간식을 먹고 초저녁잠을 자고 있고(나를 닮은게 틀림없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마쳤으니 이만하면 되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내일하는 것으로 미룬다.)

내일은 또 내일의 나에게 파이팅을 부탁하면 된다.


그런데 남편은 항암약 때문에 저녁을 8시에 먹는다.

나는 지금부터 8시까지가 가장 졸리고 힘든 시간인데 말이다.

라이프 스타일이 안 맞는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거 딱 하나가 오늘 저녁 마무리 중에 마음에 안드는 것인데

그 정도는 졸다 깨다하면서 기다릴 수 있다.

내일은 강의도 없는 날이니 말이다.

특강은 있다만.


(오늘 대문 사진은 아침 사진을 보내준 후배 작품이다. 며칠전 해질 무렵이라고 한다.

오늘 하루의 아침과 저녁을 기쁘게 만들어주었다.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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