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한 수요일의 시작

모두에게 순탄한 하루이길.

by 태생적 오지라퍼

저녁에 산책을 한 효과인지

잠에 드는 것도 그리고 잠도 푹 잤다.

중간에 딱 한번 깨서 친구들과의 모임을 갔다 온다는 남편이 들어왔는지 확인한 것 빼고는.

일찍 온다했었는데 내가 잠든 9시반 정도까지는 귀가를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일찍일까?

약속은 6시였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만.

나와 남편 그리고 아들의 <일찍>이라는 단어는 일평생 영 비슷한 수준이 되지 않는다.


기뿐하게 일어나서 내 도시락과 남편 아침을 챙긴다.

나는 잔반처리용으로 준비했고

남편은 좋아라하는 달걀, 감자, 고구마 삶은 것이다.

운전하다 목마를까 물도 챙겼는데 출발하고서야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꼭 그런다. 뭐 하나를 빼놓고 온다.

그나마 중요한 것은 아니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오늘 항암주사를 맞아야하는 아직 비몽사몽중인 남편에게 잘 다녀오라 이야기를 하고 집을 나선다.

지하 2층에 주차해놓은 것을 깜빡하고는 지하 1층에서 자동차를 찾는다.

그리 오랜 시간 헤맨 것은 아니니 넘어가자.

1분 정도 시간 낭비가 있었겠다.

그만하면 이 나이에 양호하다.

어제는 차를 사용 안했으니 기억이 한번에 안 나는 것쯤은 넘어가준다.

쿨하기도 하다.

다행히 비가 안 오고 파란 하늘이 군데군데 보인다.(물론 아직 회색 구름도 많다만)

잠실을 넘어오는데 보이는 하늘은 회색 구름 속에 조금씩 해가 내는 오렌지 빛이 겹겹이 쌓여 보이는

멋진 장면인데 운전 중이라 눈에만 담는다.

눈에라도 담았으니 어디인가? 오늘 하루 가장 기분 좋은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샘솟는다.

나는 광합성을 하는 식물인가?

아니면 태양광 생성 발전판인가?

아주 합리적인 추론을 해본다.

분명 해를 봐야 에너지가 발현되니 말이다.


오늘 출근길은 뻥 뚫려서 최단 시간에 학교에 도착했다.

사무실 문을 처음으로 열고 들어서는 느낌을 좋아라한다. 늘상 그랬었으니까.

메일을 열어 프린트할 것들을 프린트하고

(집에 프린트기가 없는게 제일 불편하다.

아직은 아날로그 형태로 꼭 프린트물을 봐야 마지막 작업 완료가 되는 버릇이 있다.)

도시락을 후딱 먹고 설거지도 하고

마지막 남은 무릎약도 먹고

여유롭게 차한잔까지 내려두었다.


그런데 양치질을 하다가 아이코 오늘 아침 최대 실수를 알게 된다.

머리에 핀을 안 꼽고 온 것이다.

딱 가라앉은 볼품없는 머리숱을 가리기 위해서 가운데 약간 볼록하게 머리핀을 꼽곤 하는데

오늘은 머리핀이 없다.

그러고보니 머리빗질도 안하고 나온게 틀림없다.

빗질은 안해도 손으로 그냥 저냥 표시가 안나게는 만들 수 있는데 머리핀은 어쩐다?

갑자기 양치질의 강도가 세진다.

그리고 치카치카 물을 뿜는데 화장실 첫 번째 세면대 물이 잘 안빠진다.

지난번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얼른 두 번째 세면대를 써보니 거기는 정상작동이다.

다행이다. 그리고 그 순간 생각이 났다.

지갑 안에 비상용 머리핀이 하나 있다는 것이.

물론 내가 산 것도 아니고 어디서 얻은 것이라

오늘의 내 패션과는 그닥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그게 어디냐? 댕큐이다.

아무쪼록 순탄한 수요일 아침이다.

비만 안온다면 모든 것을 다 참을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오늘 흰 바지를 입고 왔단 말이다.


(대문 사진은 후배가 보내준 오늘 아침 하늘 사진이다. 멋지다. 아까 내가 봤던 그 모습보다는 조금은 못하지만... 하늘을 올라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Happy Wednesday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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