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골목 산책이 주는 아련함

당분간은 못느낄 감정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정말 오랜만에 저녁 골목 산책에 나섰다.

강의 나가는 월, 수, 금에는 퇴근하기에 급급해서

강의 안나가는 화, 목, 토에는 대부분 저녁 준비에 전념하느라(나름 남편을 위한 영양식 준비에 열심이다.)

골목 산책을 나설만한 여유가 없었는데

오늘은 내 시간을 쓰는 스타일을 한번 바꿔보는 모험을 택했었다.

오전에 쉬고 오후와 저녁 시간을 길게 쓰는 색다른 방법이었다.

내일로 항암주사일이 결정된 남편은

오늘 친구들과의 저녁 시간을 보낸다면 멋진 와인바로 나갔고

(물론 술은 안먹을 것이다만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정신 건강에 긍정적일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 시간을 활용하여 나는 골목 산책에 나선 것이다.

무릎 상태를 점검해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가을장마가 계속 내려서

(나는 감히 지구과학 전공자로서 가을장마라고 생각한다. 여름 장마처럼 정체전선이 생기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래 비가 오락가락 할 수는 없다. 정체전선이란 세력이 비슷한 두 공기덩어리가 우리나라 상공에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서로 밀고 밀리면서 조금씩 위치만 바뀔 뿐 이렇게 계속적인 비를 내린다.)

그동안 이쁘고 즐거움을 선사했던 꽃들이 많이 떨어져버리고 쪼그라 들었다.

안타깝기만 하다.

햇빛 쨍쨍이라면 열흘은 더 빛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리고는 골목 한 구석에 위치한 도배가게에 가서

이사 가기 전 부분 도배 예약을 하고

개인 주택 집집마다 각각 다른 느낌과 종류의 식물 구경을 하고

갑자기 먹고 싶어진 떡볶이 밀키트를 하나 사고

식물 사진 20여장을 찍고 돌아왔다.

평소 걷는 시간보다 무릎 이슈로 조심조심하느라

평소보다는 두 배의 시간이 걸렸고

18시를 넘으니 제법 어둑어둑해지는 날들이 되었다는 것을 체감했고

바람의 냄새가 완전하게 달라졌다는 것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집에 오니 고양이 설이가 놀란 눈을 한다.

어두워지면 집을 나서지 않는 나의 습성을 알고 있는거다.

왜 나갔다 왔지? 싶은 표정이다.

역시 나의 고양이 설이는 2번째 생을 사는 듯 하다.

떡볶이를 맛나게 많이 먹고(신당동 떡볶이보다 훨씬 맛났다.)

습관적으로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전을 틀어놓았는데

이제는 제법 나이든 익숙한 투수가 나왔다.

노련함은 있는데 3회가 지나니 체력이 급속하게 떨어지는게 보인다.

체력이 떨어지면 몸에 힘이 더 들어가게 되어 있고

그러면 제구가 안되게 되어 있다.

나이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들어가는 것이고(그나마 다행이다.)

운동선수들은 그 폭이 극명하게 보이는 직업인 셈이고

그것이 보이는 것은 그 선수보다 더 나이든 사람에게만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 잘하던 선수가 늙고 힘이 빠져서 쪼그라드는 것을 보는 일은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나이든 사람은 연민과 동지 의식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젊은이들 눈에는 안 보이는 것들이 많이 있다.

나도 그때는 정말 몰랐었다.

그것은 아마도 저녁 좁은 골목 산책에서 느끼는 아련함과 비슷한 느낌이다.

천천이 걸어가야만 느낄수 있는 깊은 감정이다.

빠른 퇴근길에서는 전혀 못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순서를 확 바꾸어 본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