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34

김밥과 함께 한 나의 추억

by 태생적 오지라퍼

지하철 역사에는 대부분 김밥집이 하나씩은 있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에게 김밥은 영원한 소울 푸드이다.

낙성대 입구에는 달걀을 얇게 지단처럼 잘라 왕창 집어 넣어주는 김밥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전화 예약을 하고 찾으러 가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으나 한 번 맛보면 그 불편함 정도는 감수하게 되는 맛이다.

가장 단순한 당근, 달걀, 단무지, 오이, 햄이 들어있는 기본 김밥부터

시금치가 들어가는 고전적인 김밥, 무말랭이가 들어가는 매콤한 김밥, 어린이들이 좋아라 하는 참치 김밥, 청양고추가 들어가는 화끈한 김밥까지 김밥의 종류가 점점 더 다양해지는 것은 SNS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김밥 속으로는 물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요즈음은 두릅이나 냉이 등 봄나물 김밥이 자주 등장한다.

너무 많이 나오니 한번쯤 나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것이 SNS의 힘 일게다.

씁쓸한 맛이 별미일 듯 하나 나처럼 야채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선택을 받기 쉽지 않다.

나는 김밥 싸는 것에 꽤 오랫동안 울렁증이 있었던 편이었다.

옆구리도 터트리고 안에 집어넣은 김밥속들이 한쪽으로 몰려대서 어떻게 하든지 맛난 티가 안났었다.

아들 녀석 어렸을 때 소풍날은 친정어머니 찬스를 사용했고

조금 더 커서는 김밥 대신 김을 잘라놓고 넣고 싶은 것을 넣어먹는 미국식 김밥 형태를 즐겨했다.

코로나19로 집밥을 해먹어야만 하는 나의 요리 능력치 업그레이드 시기에

비로소 다양한 재료로 김밥을 싸보기 시작했다.

어묵을 맵게 볶아서 넣어보기도 하고 멸치, 묵은지, 간소고기 볶음, 아보카도, 우엉,

오징어채,명란구이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일부는 성공했고 어떤 것은 여전히 옆구리가 터지기도 했다.

그래도 옆구리 터진 것은 내가 먹고 말짱한 것만 가족에게 내놓으니 쓸만했다.

이제는 김밥싸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는 극복한 셈이다.

뭐니 뭐니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밥은 충무김밥이다.

신규교사 여름방학 때 충무항에서 처음으로 충무김밥을 먹었을 때의 신기함이 아직도 생각난다.

여러 명이 같이 갔던 여행길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바다와 어울려서 더 맛나게 느껴졌을 수도있다.

요즈음도 가끔 기력이 없으면 명동에 있는 충무김밥집에 간다. 다른 집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알맞게 맵게 무쳐진 섞박지와 오징어무침은 물을 들이키면서도 계속 먹게 되는 마성의 맛이다.

그리고 평범하기가 그지없이 보이는 김에 말은 맨밥이 그리 깔끔할 수가 없다.

다른 김밥들은 여러 가지 맛이 섞여있어서 맛있는 것일테지만

아무것도 없는 김에 말은 맨밥이 제일 맛있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은(그래서 충무김밥이 익숙할 수도 있다.)

아마도 나 정도 나이의 낡은이일거다.

그리고 그 김에 말은 맨밥을 내 입에 쏙쏙 넣어주던 사람은 다들 어머니였을거다.

어미새가 새끼들에게 모이를 주는 것처럼 엄마 옆에 붙어 앉아서

김에 말은 맨밥이나 김밥 꽁지를 받아먹던 시기가 다들 있었을거다.

우리에게 김밥은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의 음식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늙지 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