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냐 방구냐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뜻

by 태생적 오지라퍼

나는 전설의 81학번이다.

왜 전설이냐 하면(좋은 뜻은 결코 아니다.)

본고사 폐지 + 졸업정원제 졸속 도입이 시작된 격동의 학번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총동원한 눈치 작전은 최고조였고

(나는 아니었다. 조금 후회한다.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거다.)

서울대도 미달과가 속출했다.

법대도 미달이었으니 말 다했지 싶다.

배짱 지원이 통하는 입시 시스템은 말도 안된다만 그때는 그랬다.

그 시절의 나는 오로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과로의 안전빵 지원만 했다.(동생들이 줄줄 있었다.)

원서 접수 번호가 모두 10번 이내였으니 소신지원이라기 보다 바뀐 입시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했던 거다.

부모님도 나도 담임 선생님도 너무

고지식하고 답답하고 모범적이었다.

그게 좋고 바른것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바뀐 입시 시스템의 빈곳을 노려보자고 이야기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나도 부모님도 담임선생님도 입시가 처음이었다.

그때 나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조건 의대 지원이다.

그런데 태생이 똥손에 악력 부족이다.

말이냐 방구냐.(말이가 방구가)

말도 안된다는 뜻의 친정아버지 사투리 버전 용어이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말로는 <택도 없다>가 있다.


사실 내 적성은 법대쪽이 맞다.

신문읽기를 좋아라하고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많으며 암기력은 꽤 높은 편이었으니

아마도 법전 암기와 서술형 답안 작성 등에 힘든 점은 많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적어도 물리학이나 미적분학 공부보다는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소질이나 성향을 알아본 선생님은 중학교때 사회 선생님이 유일했다.

시사적인 이야기를 가끔씩 수업 시간에 하셨는데

내가 그 의미를 알아듣는 것을 눈치채신거다.

너는 꼭 법대가라고 넌지시 이야기해주셨지만

친정아버지가 법대는 질색을 하셨었고

(외삼촌이 법대를 나왔으나 고시에 연달아 실패하는 것을 보셔서 그런가?)

그 당시의 데모로 얼룩진 사회 분위기가 그랬었고

무엇보다도 술 잘먹는 분위기와 안맞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 술을 잘 먹어야 법대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것이냐?

그 이야기를(카더라 통신이었을 것이다만) 나에게 전해준 친구에게 따지고 싶다.

말이냐. 방구냐.


수능의 계절이 돌아온다.

물론 수시 원서는 다 작성했을 것이고

최저 등급을 맞출 수 있을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관점이 될 것이고

실기가 있는 전공들은 수능 이후 거의 매일 밤을 지새우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아들이 재수생이던 해에 나는 심한 자궁근종 판정을 받았고

화장실을 엄청 자주 가야만 하는 빈뇨와 대량 출혈로 힘든 시간을 보냈었는데

아들 녀석의 재수 생활에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수술을 미루고 싶었다.

그때 주치의의 호통이 나를 깨웠다.

<아들 녀석 도시락 싸주고 뒷바라지 하다가 엄마가 죽어요.

엄마가 열심히 한다고 아들 녀석 수능 점수가 올라가는 것 아니에요.

우리나라 엄마들은 이게 문제입니다.

수술을 모두 수능 끝나고 잡아달라해요. 세상에나.>

처음 들었을 때는 말이냐, 방구냐

오늘 처음보는 환자인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이냐 불쾌하다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를 위하는 것이 결국 아들 녀석을 위한 것이었다.

그 해 나는 수술을 두 번 했다.

한번 하고 역효과가 나서 결국 두 번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데 수술로 인해 내 기초체력이 떨어지니

아들 녀석과 성적에 집착하는 정도가 줄어들었고

그것이 오히려 아들 녀석이 스스로 마음가짐을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나중에서야 전해들었다.


조언이란 이런 것이다.

단호하기가 그지없어야 하는 경우가 분명 있다.

애매모호하고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해서는 절대로

듣는 사람에게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알아듣겠지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비겁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말이야 방구야 싶게 받아들여질지도 모르지만

결국에 진심은 통한다.

그래서 교사일때도 지금도 최선을 다해 조언한다.

그런데 절대 내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남편이다.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만 하고

(주로 항암관련 유튜브 내용이다. 확인 불가능한.)

내 이야기는 귓등으로 듣는다.

딱 말이냐, 방구냐 이런 표정이다.

오늘 저녁도 쉬라는 내 말은 싹 무시하고

친구랑 저녁약속이라며 나갔다.

항암 열다섯번째인데

이번 주 내내 저녁 약속인게 괜찮은거냐?

나보다 더 바쁜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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