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이라는 공간이 주는 위압감

당당해지고 싶다만 쉽지는 않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강남을 방문하는 일을 좋아라하지는 않는다.

피할 수 없는 일들(일이나 결혼식 등)을 제외하고는

내 스스로 그곳을 찾아 무엇인가를 도모하는 일을 만들지는 않는다.

공간에 대한 낯설음 때문이기도 하고

교통이 매번 막힌다는 데이터 값 때문이기도 하고

아무도 관심 없지만 나의 열등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그 열등감의 근원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돈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절로 열등감이 생기는 그런 못난 마음의 소유자이다.

브런치에서는 세상 다 통달한 듯 글을 쓰지만 이게 나의 실상이다.

그래서 강남에 갈때는 보통 지하철로 지하 세계로만 왔다갔다하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재빨리 볼일만 보고 오는 편이다.

왜 그러냐고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고 당당하라고 하겠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 못났다.

강남에서 당당해지기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나에게는.


그런데 오늘 그렇게 지하세계로만 백화점에 가서 화장품과 먹거리를 사가지고 오려는 나의 계획은

삼성역의 지하철역 공사로 출구 위치가 변동되는 바람에 틀어졌다.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경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3년 정도 이 길을 다녀왔지만 지상 세계로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남 한 복판(어디가 한 가운데인지도 사실 모른다만) 지상 세계로 올라오니

새삼 시골 촌뜨기쥐가 서울 구경 나선 셈과도 같은데

그래도 표지판을 보고서는 물어보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가는데는 성공했다.

결혼식에 찾아온 나와 같이 강남과 친하지 않은

많은 분들이 어리둥절하면서 길을 찾고 있었지만

내가 그들을 안내해줄 형편까지는 도저히 되지 않았다.


변장용 화장품을 사고

(구입 이력이 남아있으니 따로 무어라 말을 안해도 되는 것이 같은 상품을 구입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지하 푸드코너를 둘러보다가 달래, 부추, 컬리플라워를 사고

(달래장 만들어 버섯밥이나 콩나물밥해먹고

부추는 남은 밀가루 처리용으로 부추전 부치고 컬리플라워는 샐러드용으로 사용하면 되겠다.)

반찬코너에서 배추쌈과 김치속을 사니

(이것을 파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봤다.

엄마와 그 힘든 김장하는 날 맛나게 먹었던 추억의 음식이다.)

오이소박이 한 팩을 무료로 주겠단다.

내가 근처 사는 주민인 것처럼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멀리서 와서 무언가 안스러워보였던 것일까

둘 중 어느 것에 해당될런지는 모르겠으나 해피하다.

친정 엄마를 닮아서 지독한 김치 홀릭이고

모든 종류의 김치를 다 좋아라한다.

마침 쿠폰을 써서 2만원 할인받아 화장품도 샀고

다음 주 먹거리도 준비했으니 이만하면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어느 멋진 10월의 토요일인 셈이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다 본 나무와 꽃들로 이 계절의 식물이 주는 위로도 받았으니 이정도면 선방이다.

강남이라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머문 시간 한시간 반 남짓.

잠시 불편하기는 했다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후를 기대해봐도 좋을 마음과 커디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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