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녀왔다.
조그마한 사업을 하셨던 친정아버지는 외형상으로나 목소리 크기로나
상남자 스타일이 틀림없으나 겁도 많으신 분이셨다.
앞서가는 머리를 가지고 있으셨지만
실천력이 따라가지 못했고(운도 없었다만)
그 기저에는 소심함과 겁장이 기질이 자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마치 지금의 나와 똑같다.
사업이라는 것은 이윤추구가 목적인데
나는 주로 퍼주는 자선 사업에만 능하다.
대학 강의의 쥐꼬리만한 강사비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물품 자체 구입과 간식비로 꽤 사용하니 말이다.
이번 연구비도 내 몫의 인건비 정도만 챙기면 아마 댕큐일 것이다.
그 것도 온전히 내 차지는 아니고 또 연구와 관련된 무언가에 사용할 확률이 크다.
사업가 체질이 절대 아니다.
아버지나 나나 말이다.
폭망하기 딱 좋다.
그런 아버지가 가고 싶지 않아서 피하고
어머니를 대신 보냈던 곳이 바로 세무서이다.
지금의 나도 가고 싶지 않고
세무서에서 우편이 배달되기만 하면
겁부터 왈칵나는데
그때 아버지는 아마도 더하셨을게다.
그 시대 세무서는 서슬이 퍼런 곳이었다.
데모를 한 대학생들이 잡혀가던 경찰서 못지않았다.
아마도 모르기는 몰라도 세금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시대였다.
어머니가 유난히 큰 소리를 치시던 날은
아버지 대신 세무서에 가서 대판 싸우고 오신 날이셨고
한국은행 은행원이셨던 경력을 십분 발휘하시는 날이었다.
오늘 세금을 줄여서 다시 고지서를 받아들고 오셨던
그 위풍당당했던 친정어머니가 몹시도 그리운 오전이었다.
화요일 나에게 아픔을 선사한 전자계산서 발급용 인증서를 해결하려 집을 나섰다.
일단 은행으로 간다.
OTP 카드 비번 오류가 떠서 영업점을 방문해달라는 메시지를 끝으로 처참하게 실패한
히스토리를 이미 디지털 역량 관련하여 글을 썼었다.
가급적 침착한 말투로 은행 창구 직원에게 나의 용건을 설명한다.
이틀 전 나에게 잘못 안내를 해준 그 직원이 아니다.
자리는 그 자리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것 저것을 확인하더니 아무런 오류가 없다는 거다.
그럴 리가 없다. 10번 오류가 나서 더 이상 진행이 안되었는데 그게 무슨 일이냐?
아무래도 이해가 안되었는데 아뿔싸.
내가 사용한 것은 개인용 OTP 였다하고(나는 개인용을 새로 발급해달라 한 적이 없었고 사용도 하지 않았다만)
사업자용 OTP는 오늘 처음 눈에 띄는 카드 형태로 발급해준 것이라 한다.(오늘 대문 사진이다.)
나는 통장개설을 할때 한꺼번에 받기만하고 일이 생기려나 반신반의한 상태로 보관만 하고 있었다.
세상에나 사업자용의 번호를 넣어야는데 개인용 번호만 주구장창 기록했으니 안될 수밖에.
엄청 허무하다. 그래도 여러 차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고는 은행을 나왔다.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 온라인으로 처리할까 싶었는데
나의 디지털 역량을 믿을 수 없의 이왕 나온 김에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나도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인 세무서로 가서 전자계산서 보안카드도 받아두자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해두는 것이 좋다.
온라인으로도 오프라인으로도 말이다.
다행히 세무서는 그다지 무섭지 않았고
오픈런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고
관려 매뉴얼도 받아 오고 다급한 질문도 해두었으니 급한 불은 껏다는 생각이 든다만
나처럼 개인사업체 개설 초보자 대상의 연수과정이나 Q&A 코너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세청 그 많은 메뉴를 다 뒤질 시간과 여력은 없으니 말이다.
오늘 당장 해야할 일이 있어서 아직 완전하게 수행을 마무리한것은 아니지만
화요일보다는 잘 될 것이라 기대하며 안심이 조금은 된다.
더 급한 것부터 우선 처리해보자.
그럼에도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여유시간을 주려고
성수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온 나 자신 칭찬한다.
이렇게 일이 몰아칠 때가 있다.
11월은 모든 연구가 마무리되는 시기여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일이 많으면 가슴이 콩닥거리고
머리가 쭈볏하기는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점심은 남편이 단백질이 많다고 희망한 오징어볶음을 맛나게 해두었는데
정작 중요한 일을 보러 나간 남편이 오지 않는다.
물론 연락도 없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매번 신경질은 난다.
남편은 친구와 어머니에게만 친절하다.
그런 착한 친구와 아들이 없다.
착한 친구나 아들이 절대 착한 남편과 동의어가 아니다.
입에 착착 붙는 오징어볶음을 내가 다 먹어버릴까 싶다.
(급한 일 먼저 처리를 끝내고서
드디어 세금계산서 발행을 위한 인증서 발급에 성공했다. 무지무지 기쁘다. 나 아직 안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