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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nt Dec 09. 2021

메리골드의 꽃말을 아나요? 에 다녀왔습니다.

청년 자살시도자들의 살아감의 이야기

메리골드의 꽃말을 아나요


<메리골드의 꽃말을 아나요? _청년 자살 시도자들의 살아감의 이야기> 전시에 다녀왔습니다. 영등포구에 위치한 문래동을 처음 방문한 것이기도 했지만, 좁은 골목에 조성된 ‘문래 철공 거리’를 걸으면서 마주한 낯선 풍경들과 코끝을 찌르는 연기 냄새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속에 작게 핀 전시장이 너무나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한 번에 찾지 못했거든요.



 자살 시도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지 제 시선을 스스로 조정하려 했습니다. 그래야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 때문인지 전시회 첫 장면부터 너무 많은 의문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선보인 작품들에서 ‘자살시도’라는 맥락이 끼어들었다고 전혀 느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82 북스가 기획하고 진행한 <메리골드의 꽃말을 아나요?> 프로젝트 전시회는 ‘청년 자살시도자’라는 정체성으로 한데 묶인 참가자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소재를 담은 ‘오브제(objet)’ 사진은 단순히 ‘청년 자살시도자’라는 맥락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수많은 여지들이 담 있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참가자들의 오브제가 한 데 모인 전시회 장면을 넘어서면 참가자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참가자들 자신의 오브제(objet) 사진의 범위를 확장하여 보여주고 이를 짧은 메세지와 함께 설명해줍니다. 그들이 겪어온 삶의 맥락을 짚어주는 자기 고백은 오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누구나 고민하는 ‘실존’을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제 생각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왜 자살이었을까?” 쉽사리 답을 내놓기 어려웠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자살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단정 짓습니다. 그리고 그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누군가 자살을 계획하고, 누군가는 실제로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 합니다. 미디어는 자살을 ‘왜’ 하면 안 되는지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우리 사회가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 너무나 경직되게 만듭니다. 결국 자살은 곧 ‘나쁜 행동일 뿐이라는 도식만 남아버렸습니다.


죽음의 이유




“유이치를 데리고 이곳 세키구치 다미오의 집으로 시집와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저는 당신이 죽은 그날부터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해온 마음속의 혼잣말을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_<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_12p.


“저에게는 이것저것 다 알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

한신 전차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 ······”   

_<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_15p




소설 <환상의 빛>은 ‘떠난 자와 남겨진 자’ 그리고 ‘죽은 자와 살아가는 자’의 도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편에게,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왜 스스로 죽은 것인지를 묻는 미망인의 편지 같습니다.



결국 이 간절한 물음이 남기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인간’ 그 자체입니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사람이 '왜 사는 가'명확한 이유가 없는 만큼 '죽고 싶어 하는 것'에명백하고 본질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죽음에 이르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막상 대답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모른 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누구도 묻지 않은 채 당연시되어간 하나의 폭력이 되어갔습니다.  "죽지 못해 산다"라는 자조적인 대답조차 쓴웃음으로 넘길 뿐입니다.


살아감과 죽음




"그리고 결혼하고 첫아이를 낳은 지 세 달이 되었을 때

저는 이유도 알 수 없는 자살이라는 형태로 당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 후 허물처럼 살아왔습니다. 당신은 왜 자살을 했을까.


그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 저는 멍 해진 머리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러다가 생각하는 데 지쳐서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되어 집주인 부부가 꺼낸 재혼 혼담에 어느새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_<환상의 빛(1979)>, 미야모토 테루_47p.




 도대체 왜 남편이 자살을 했는가를 계속해서 되뇌는 유미코이지만 한편으론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해갑니다. 유미코가 살아야 하는 커다란 이유가 이 책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흘러갈 뿐입니다. 삶과 죽음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지만, 결국 ‘명확한 단 하나의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살아감과 죽음'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남편은 대체 왜 을 스스로 마감했는지'를 끊임없이 묻던 유미코의 생각이 도달한 곳 결국 "남편이 유년시절부터 겪어온 삶의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의 죽음이 아니라 남편의 삶을 반추해보기 시작한 것이죠.


시선 돌리기


 누군가 살아감과 죽음을 ‘선(善)과 악(惡)’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자살이란 삶이 너무 힘들어  고통을 끊어내고 싶어 하는 사실상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입니다. ‘자살 시도자’들이 단지 삶보다 죽음이 더 나은 선택이라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돌보던 환자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故 임세원 정신과 전문의가 저서에서 고백했듯이 '자살을 계획한 이후 모든 마음이 편해졌다'는 말은 이를 잘 표현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힘든 삶을 스스로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하게 됩니다.



 이제 저는 다시 질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왜 자살하려고 하셨나요?(왜 나쁜 행동을 하려 했습니까?)” 대신에 “왜 자살을 ‘선택’ 한 것입니까?(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택한 것입니까?)”라고 다시 묻고 싶습니다. ‘자살’로 당신의 삶을 개인화하고 단순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자살을 생각하게 된 당신의 삶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다시 물어보고 싶습니다. ‘무엇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고통스럽게 했던 것입니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




“삶의 모양새가 가지각색인 만큼 죽음의 모양새도 가지각색이다.

사람들이 궁지에 몰리는 방식은 다양하다. 생각해 보라,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다 고시원에서 약을 먹고 자살을 하는 여자와,

성폭력을 저지른 후 수치심에서 벗어나고자 죽음으로 도망간 권력자와,

여성들이 자신과 자주지 않음에 분노하여 여러 명을 총기로 살해하고 자기 자신 또한 죽인 인셀

(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의 약자로 여성과 성관계를 맺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남성을 가리킨다)과,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에도 군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싶다고 울며 고백하던 트랜스젠더 군인과,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입고 온갖 악성 댓글과 악의적 기사에 시달리다

죽은 여성 연예인의 자살을, 각각의 자살을 도저히 똑같이 받아들일 수가 없다.”  

_<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2021)>, 하미나_236p




 하미나 작가는 ‘자살’을 개인의 병리적 원인으로만 치부하면(그것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죽음이 담고 있는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더불어 자살에도 다양한 유형이 존재하며, 그 원인 역시 다양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는 죽음의 다양한 형태일 것입니다.


또한 하미나 작가는 자살을 막는 것과 함께 '왜' 그들이 자살을 ‘택한 것’인지, 그것의 ‘공적이고 정치적 내용’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남겨진 자’들이 해야 할 소명이라고 말합니다. 결코 '자살을 시도'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한 개인의 삶에 가해진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폭력이 드러나야 합니다. 고(故) 설리 씨와 구하라 씨의 자살이 연예 gossip기사로만 소비되어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메리골드의 꽃말을 아나요?> 참가자들이 세상 앞에 <청년 자살시도자>라는 꼬리표로 스스로를 드러낸 것은 굉장히 ‘공적이고 정치적인’ 그래서 ‘용기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던지고 싶은 것은 '동정 어린 시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연대의 시선’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사람의 인간이 죽으려고 결심하기에 이르는 다양한 이유를 맞춰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당신과는 아무래도 잘 맞춰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그날 밤 당신의 행동이

어떤 간격까지 좁혀진 것으로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고,

거기에서 선로의 한가운데까지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은

오히려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공동(空洞) 같은 것이 되어갔습니다.”   


_<환상의 빛(1979)>, 미야모토 테루_67p.



 자살(自殺), 그 자체는 어쩌면 의미 없 텅 비어 있는 굴(공동, 空洞)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자살을 결심하고 시도했던 그 ‘복잡한 맥락’은 우리가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설령 그 답을 단번에 찾는 것이 어렵더라도, ‘당신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다’는 모양새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 스스로도 자신은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기로를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익명의 존재들에게 어떤 것을 지향하도록 할지는 관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사소한 일로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꽤나 구체적인 자살을 계획했던 또 다른 한 명으로서 그렇다고 믿고 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유미코가 뜻밖의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떠난 존재와 함께 살아가고 있듯이 말이죠.




“오늘부터 내가 네 엄마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얼굴을 휙 들고 웃어준 도모코,

분명히 여자아이임에 틀림없는 그 아이의 냄새를 코끝으로 맡는 순간

저는 그때까지 자신 없이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시원하게 똑바로 펼 수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내가 오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내내 기다려주었구나, 하고 생각하자

갑자기 힘이 나서 눅눅한 집안 분위기도, 아주 가까이서 들려오는 해명(海鳴) 소리도,

까맣게 빛나는 마루방의 냉랭함이나 잘 안 나오는 텔레비전 화면도 수년 전부터 써와서

익숙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_<환상의 빛(1979)>, 미야모토 테루_51p.



"아아, 역시 이렇게 당신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네요.

이야기를 시작하면 가끔 몸 어딘가에서 찡하니 뜨거운 아픔이 일어 기분이 좋습니다."

_<환상의 빛(1979)>, 미야모토 테루_82p.



#메리골드

#청년자살시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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