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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cent Nov 13. 2023

너 그 성격 바꿔야 돼

".....어?....어!"


레이저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레이저 헤드는 합판 위로 움직이며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레이점 빔이 나오지 않았다. 발진기가 작동을 멈춘 것이다.


"Interlock"


오류가 발생하면 메인작동 장치의 화면에 오류 알람 메시지가 표시된다. 그리고 그 아래로 조금 더 작은 폰트로 구체적인 오류명이 나온다.


"Cavity pressure --- Gas Change Required"


레이저 빔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가스가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72시간 간격으로 제 때 가스 교환을 한 터라 예상치 못한 가스 교환 알림에 어리둥절 했다. 근처에 있던 선임과 공장장님도 기계 앞으로 다가와 문제 원인을 확인해보려 하셨다.


"왜 빔이 안나오냐? 가스통 양이 부족한 거 아냐?"


발진기로 레이저 가스를 충전하는 가스통에 충분치 못한 양의 가스가 남은 것 아니냐고 공장장님이 추측하셨다.


"레이저 가스가 얼마 남지 않긴 했어요. 근데 오늘 아침에 채웠습니다."


나는 계기판 메뉴를 조작하며 레이저 가스를 교환한지 10시간 밖에 되지 않았음을 보여드렸다.


"가스량이 부족하면 충분하지 않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


공장장님은 지나온 시간동안 겪었던 사례를 떠올리시며 내게 원인을 가늠해주시려 하셨다.


"일단 다시 가스체인지 해보겠습니다."


"그래 일단 해보고, 안되면 가지고 있는 새 가스통으로 교체해버려"


그렇게 발진기 커버를 연 뒤 가스 밸브를 열고 가스체인지 메뉴로 들어가 작동시켰다. 그리곤 이제껏 동작시켜놓은 도안 파일을 리셋 시킨 뒤에야 Interlock 잠금이 풀리고 기계가 작동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레이저 가공을 하다 중간에 멈췄고 이걸 다시 리셋하는 바람에 합판에 새겨진 도안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이었다.


 단박스 6개가 그려져야할 합판에는 6개 박스가 온전히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중구난방 식으로 그려져있었다. 만약 사람이라면 하나씩 완성시켜 6개를 그렸겠지만 기계는 그렇지 않다. 기계가 알아서 선을 그리는 순서를 프로그램화 시키고 그 순서에 따라 그림을 그려나간다.


 방법은 두가지다. 처음부터 다시 쏘거나 빠진 부분만 남겨서 새로운 파일로 저장해서 쏘는 것. 나는 괜스레 이것 저것 골라내는 작업이 더 번거롭고 부정확하다는 판단에 처음부터 쏘려고 했지만 공장장님께서 놀란 목소리로 나를 제지하셨다.


"같은 데 다시 쏘면 구멍이 넓어져서 안돼!!!"


 나는 어쩔 수 없이 합판에 새겨진 선 더미들을 스마트폰으로 찍은 뒤 도안에 그려진 선과 대조하며 지워가기 시작했다.


 그 때 한 선임이 나를 도우려는 듯 말해주었다.


"일단 박스 하나씩 보면서 지워가세요."


그리곤


"그냥 제가 할까요?"


나를 도와주려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매번 내가 고민해서 직접해볼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 불만이기도 했기에 내가 직접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가 하겠습니다. 일단 퇴근 준비하세요."


하지만 마음은 조급해졌다. 이미 퇴근할 시간이 넘었고, 공장장님은 퇴근을 하다 말고 레이저 테이블에 누인 합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셨다. 선임들은 어쩔줄 몰라하면서 버벅거리는 내 손을 보며 못내 답답한 심경을 가리지 않았다. 모자란 사람처럼 보일까봐 점점 불안해진다.


 결국 빨리 끝내자는 마음에 눈만 빨리 돌릴 뿐 제대로 확인 하지 않은 채 새로운 파일을 저장했다. 그리고 기계를 작동시켰다.


 "치이익~~~"


 합판에 레이저가 닿으면서 구멍이 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뒤이어


"시이익~~~"


 이미 난 구멍에 레이저 빔이 쏘아지면서 힘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선 정리를 확실히 하지 못했다.


뒤로 갈수록 이미 그려진 곳에 레이저 빔을 쏘는 빈도가 많아졌고, 공장장님은 나를 향해 선 정리를 제대로 안했음을 지긋이 지적하셨다.


새 파일에 저장된 선이 다 그려지고, 합판을 다시 확인해본다. 몇 군데 선이 또 빠졌다.


공장장님은 일일이 새어가며 나에게 어떤 선을 남길 지를 지시하셨다.


"여기 오시 두개, 여기 뚜껑 선 두개, 시야기 하나... 둘... 세엣... 세군데"


 이번엔 확실히 하기 위해 선을 지우기 전에 색을 달리해서 재차 확인하며 선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앗!! 그런데 외곽선을 잘라버린 나머지 합판이 분리되면서 위치가 바뀌어 버렸다. 새로 그린 선들이 조금씩 밀렸다.


"자 가지고 와바"


 공장장님은 줄자를 당겨 합판에 새겨진 선들 사이 간격을 신중히 재시면서 얼만큼의 오차가 생겼는지를 측정하셨다.


"에이! 그냥 박아. 이 정도는 괜찮아"


그렇게 일은 일단락 되었다.



이제 기계를 끄고 합판 위로 방수포를 덮어주고 퇴근 준비를 한다. 확실히 뒷마무리를 짓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느라 어깨는 한 껏 웅크려진다. 그러던 나를 기다리시던 공장장님께서 한 마디 건네오신다.


"넌 누가 지켜보면 일을 잘 못하는 성격이야?"


나는 멀뚱멀뚱 서있기만 한 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


"너 그 성격 고쳐야돼! 누가 본다고 막 조급하게 제대로 못하면 안돼. 누가 보면 어때 그냥 네가 하는 대로 해야지. 그 성격 고쳐"


 부끄러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내가 모자란 사람이란 것을 지적당하는 것은 여전히 버겁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속으로 변명부터 한다.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빨리해라 지적을 하니까 그렇지"


"나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 방법을 찾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지"


하지만 내가 화를 참지 못하는 것은 사실 상 그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빈번했다.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내 부족함을 받아들일, 그리고 극복해낼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그 말을 듣고나서 화가난 채로 퇴근길에 들어섰다. 속으로 씩씩 거리며 호흡을 가쁘게 쉬었고,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가서는 양 손으로 내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나를 향한 혐오감과 상대를 향한 분노감을 육체적 고통으로 해소하려했다.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대체 왜...? 라는 공허한 물음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라는 진취적인 물음에 중점을 둬보자. 불현듯이 일어난 감정에 잠식되지 말고 잠시 떨어져보자. 뼈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공장장님의 말씀을 다시 떠올린다. "너 그 성격 고쳐야돼" 대신에"누가 보면 어때 너가 하는 대로 해"에 해답이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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