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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

by 이일일


나는 왕따였다.


안타깝게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는 순간.

나는 항상 따돌림을 당했다.


언젠가 글을 써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은 순간,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왕따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그때는 왕따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왕따가 되었던 이유를 내 안에서는 이미 정의를 내렸다.

그렇게 이유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내가 더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았기에

내 나름대로는 반드시 정의를 내려야 했다.


나 자신의 이유가 됐든, 외부의 이유가 됐든 반드시 필요했다.

정답이 아니어도 된다. 이유가 있기만 한다면.

그렇다면 그걸로 된 거다.


중학교 1학년 남자아이는 겉으로 보면 초등학생과 다름없다.

요즘은 그렇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 나는 사랑을 많이 받는 아이였다.

얼마 전 편지에 나의 가장 친했던 친구는 나를 "라이벌"이라고 표현했더라.

내가 누군가의 "라이벌"이라니. 참 대단한 이야기다.



중학교를 다소 먼 곳으로 배정받았던 나는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과는 영 다른 곳으로 학교를 가야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낯설다고 표현하기도 그렇지만, 새롭기는 했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나는 혼란 그 자체였다.

내 주변에는 흔히 말하는 "일진"들이 득실거렸다.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던 것처럼 괴롭힘을 당했던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괴롭힘과 정신적인 괴롭힘이 있다면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 새끼들 "물갈이" 한 번 해야겠어."


당최 머리가 다 크지도 않았던 나로서는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도 않지만, "일진"들은 본인들이 졸업한 학교의 후배들을 관리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갈이"라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직접,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다짜고짜 때린다. 선배와 후배라는 말이 어울리는가 싶을 정도의 나이였던 아이들끼리

손찌검과, 발길질이 꽤나 익숙해 보였다. 처음 보는 광경이 꽤나 당혹스러웠지만

"익숙한 척"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퉤, 너네 애들 똑바로 관리 안 할래?"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관리를 못했나 보다 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되던 바로 그날, 나에게 사귀자고 했던 여자애가 있었다.

꽤 유명한 "일진"이었더라. 따라다니다 보면 가관이었다.


헤어졌다. 아니 얘를 만났던 거라고 할 수 있을까?

옆반 남자애가 좋단다. 당연히 헤어져줬다.

내가 헤어짐을 당한 거겠지.


그때부터 시작됐다. 아무도 나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나와 이야기 나누는 것을 눈치 보고, 내 옆에 오지 않는다.

이 순간들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감정은 또렷하다.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했던 친구들.

그들에게 맞추려고 정말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날 언제든 떠날 것이라 생각했고, 그들이 없으면 나는 죽는 줄 알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상태가 꽤나 놀랍고 어려웠지만,

참았다. 참는 것이 나의 정의였고, 말하지 않는 것이 나의 용기였다.


어제 웃으며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다음 날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답이 없는 질문의 칼날에 끊임없이 베이게 되는 것, 그것이 지옥이다.

이해가 안 되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도 잘.


어린 나이에 꽤 잘 버텼던 것 같다.

중학교 2학년을 거쳐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인싸"가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날

중학교 1학년이 되던 날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나는 또다시 이들이 필요하고, 가라앉아있던 감정은 다시 올라왔다.


고등학교 1학년 16반, 꼴통들의 반이었다.

내로라하는 각 중학교 "일진"들이 기가 막히게 같은 반으로 집결했다.

초등학교 때 친구였던 아이도 한층 레벨업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냥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담배 피냐?"


등용문인가. 나는 담배를 피지 않았지만, 다시 "일진"들과 친해졌다.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빵셔틀을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들러리" 정도는 섰던 것 같다. 그렇다. "맞춰주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어느 여고 근처에서 초등학교 때 친구라 했던 놈은 날 때렸다.


"정신 차려, 잘해주니까 진짜 친구 같냐?"


그럼 뭘까 우리는. 친구가 아니면 뭘까?

또다시 나는 왕따가 되었다. 나와 이야기 섞는 것은 불편한 용기가 되었고

원래 조용히 지내던 아이들만도 못한 1학년 학교생활을 보냈다.


수학여행, 체육대회, 등등 모든 것이 괴로웠다.

선생님들은 날 예뻐했다. 아니 내가 예쁨을 받으려고 발악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편이 없으니까.


고등학교 2학년을 거쳐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인싸"가 되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 반드시 알아야 할까?

내가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나에게 왜 그랬을까?


내 결론은 장황하다.


아마 그들은 이유가 없을 것이다.

내가 맞춰보려 했던 모든 행동은 그들을 우위에 서게끔 했을 것이다.

호의가 아닌 호구짓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얼추 파악이 되었다. 다 알 수는 없었지만

내 안에서 정의 내린 나만의 무기가 그래도 날 살게 했다.


겉돌았다. 열심히 겉돌았던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절친한 학창 시절 친구, 난 없다.

단 2명, 지금 아무리 생각해 봐도 2명 말고는 없다.

1명은 나의 결혼식 사회를 봐주었고, 1명은 축가를 불러주었다.

감사한 인생이다.


내 안에서 정의 내린 나만의 무기는 그랬다.

나에게 잘못이 있다. 내 탓이다. 내가 너무 그들에게 의존했다.

나를 바꾸자, 내가 바뀌면 그들도 바뀌리라.

시간은 생각보다 꽤 많은 것들을 해결해 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주시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그때 할 수 있는 생각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라면, 조금은 다르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나를 알고 있는 모두에게 가끔, 정말 가끔 내 "왕따설"을 이야기해 주면,

그렇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감사하게도.


공교롭게도 첫 취직을 했던 회사에서부터 지금까지 난 HR을 꾸준히 맡았다.

내 본업과 관계없이.


"신입사원 대표로 네가 면접관으로 들어가 봐."
"사람 잘 보잖아, 너의 판단이면 믿을게."


난 사람을 잘 모른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사람에 대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관계에 있어 미숙하기에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그런데 왜 나에게 "사람"과 관련된 일들을 맡기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10년이다.

10년 동안 나는 사람을 채용해 왔고, 면접도 단순히 본 적이 없다.

사람은 모르는 거니까.


지금도 나는 사람에 대해 연구한다.

늘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관계에 대해 고민한다.


"그들은 나에게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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