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등지더라도
태양을 등지고 그림자를 벗 삼은 난, 슬픔이 그리워, 굳이 새벽을 구겨서라도 빈자리에 채워놓곤 했다. 그런 내게 너의 밤은 훔쳐서라도 갖고 싶은, 이미 쥐고 있으면서 하루 더 짊어지고 싶은 탐나는 시간이었다. 어째 나란 놈은, 펜대를 몇 번씩 던지며 갖가지 비유를 섞으며 말을 흐리고 빙빙 돌리며 온종일 끄적인 이 문장이 위로로 가닿기를 바란다. 그냥, 애정이라는 말이다.
시력을 다 써가며 읽은 책들이 배신했다. 온갖 격언으로도 너의 마음을 닦아줄 수 없었다. 수온이 무색할 정도의 깊은 강바닥까지 내려가 봤다만, 너의 아픔을 공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나 보다.
가장 아름다운 꽃이 제일 먼저 꺾이는 게 참 싫다. 벌레들이 빛나는 곳을 좇는 것도 싫다. 이런 이치를 거부한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괜찮아질 거라는 무미건조한 답뿐이었다.
그 무력함이 느껴질까, 더 건조하게 굴었지만, 그게 또 무심해 보일까 밤새 걱정했다. 뜬눈으로 지새운 밤이 혹여나 너를 무겁게 할까, 잠이 많아 탈이라는 너스레를 떨었다. 또 내가 싫어졌다.
네가 너를 원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 무서운 것들이 창문을 두들기지 않기를 바란다. 저 너머 누군가의 찬란함이 너에게 그림자로 다가오지 않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도 너의 오늘 밤이 괜찮기를 바란다.
나의 끄적임이 너의 밤을 훔치기를 바란다. 슬픔이 눈코 뜰 새 없도록 전부 가져가 버리기를 바란다. 수 개의 문장 중 단 하나라도 너의 마음에 침범해 온갖 걱정 불안을 훔쳤으면 한다. 결국 또, 애정을 둘러 말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