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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Mar 30. 2022

언니, 마약이 좋은 거야?

어... 그게 안 좋은 거긴 한데...

어느 날 가족들과 함께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언니! 마약이 좋은 거야?”

옆에서 가만히 걷고 있던 막내 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적잖이 당황했다. 초등학교 2, 3학년밖에 안 되는 어린아이가 ‘마약’이라는 단어는 지금 어디서 봤으며, 마약이 ‘좋은 거냐’고 묻는 그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래서 난 잠시 대답을 미루고 혹시나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약이 내 눈앞에 있었다.


‘OO마약집’.


식당 이름이었다.      



“어... 그게 안 좋은 거긴 한데...”

동생의 질문에 나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마저 길을 걸어가며 ‘OO마약집’이라 적혀있는 그 식당의 이름을 다시 곱씹어 봤다. 마약집이라니... 마약은 아주 나쁜 것이라고 배웠던 어린아이가, 마약을 하면 경찰 아저씨들이 달려와 잡아간다는 뉴스를 봐 온 어린아이가 대놓고 마약집이라 적힌 가게를 보았으니, 마약은 좋은 것이냐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난 동생이 이 질문을 하기 전까지 가게 이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학교에 가기 위해,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항상 오고 가는 골목에 위치해있는 식당이었는데도 말이다.       


‘마약’이라는 단어는 일상 속에서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다. 그러나 마약은 범죄의 온상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오직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단어는 긍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마약’이라는 단어가 ‘마약 옥수수’, ‘마약 치킨’, ‘마약 떡볶이’와 같이 음식 이름 앞에 붙어 중독적인 맛에 자꾸 먹게 되는 음식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동생이 봤던 가게 주인도 아마 이러한 뜻으로 ‘마약’이라는 단어를 가게 이름으로 사용한 것일 거다.       


마약 옥수수, 마약 떡볶이, 마약 치킨, 그리고 OO마약집.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정말 무서운 단어들이다.

기분이 이상하다. ‘마약’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사용해도 되는 걸까?     


 어느 날은 막내 동생이 집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기에 무슨 노래를 부르나 하고  기울여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계속 노래를 듣던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동생이 영어 가사로  욕을 그대로 따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동생에게 그 노래를 어디서 들어봤냐고 묻자 동생은 ‘틱톡’에서 들었다고 답했다. 요즘 이 노래가 유행이라 대부분의 영상에서 이 노래가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 네가 부른 노래 가사, 무슨 뜻인지 알아?”


동생이 답했다.


“아니 몰라. 그냥 따라 부르는 거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유행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생을 혼낼 수 없었다. 반복해서 나오는 멜로디와 가사를 따라 부르는 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내가 동생이었더라도 그렇게 따라 부를 것 같았기에.


결국 보다 못한 나는 동생에게 영어 가사의 뜻을 알려주었다. 동생은 꽤나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어른들이 과연 아이들에게 바르고 고운 말을 쓰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아직 투명한 세계를 갖고 있는 동생의 투명한 물음과 행동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괜히 다시 한번 우리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언어들을 둘러보게 된다. 새삼 걱정 없는 맑은 얼굴로 자고 있는 동생에게 조금은 미안해지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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