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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이 좋아 Aug 17. 2023

엽서 보내기, 새벽의 오로라. 이것이 낭만

다솔솜네 여행 앨범: 살면서 다시 알래스카에 갈 수 있을까 #3

 

 북아메리카 최북단 부동항인 알래스카 발데즈(Valdez)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얼지 않는 항구라는 말답게 4월의 아침 발데즈는 바닷물은 얼지 않았지만 바닷물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 숙소 주변 아침 산책은 겨울 달력 속 사진을 눈앞에서 보는 듯했습니다. 사방 어디를 보나 그냥 달력 속 겨울 풍경 사진이죠. 저의 마음속의 겨울 풍경은 알래스카에서 모두 머릿속에 입력된 것 같습니다.



 첫 일정으로 우리는 발데즈 페리 터미널에 갔습니다.  운항표를 보니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월요일인 오늘은 여객선을 탈 수 없었습니다. 사실 알래스카에는 오로라 때문에 이 기간에 온 것이라서 많이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바다 위에서도 먼 설산을 바라보는 코스일 것 같았어요. 대신 근처에 눈 쌓여 만들어진 키 만한 눈 담장을 사이에 둔 눈길을 걷고, 설산 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실컷 구경했습니다.


 

 또 이어 차를 타고 가서 발데즈 글레시어 호수 근처 글레시어 뷰 파크(Glacier view park)의 눈밭에서 또 원 없이 놀았습니다. 이렇게 거의 매일 눈밭에서 신나게 놀 줄 알았다면 아이들의 스키복을 챙겨 와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그냥 평상복으로 눈밭에서 놀았습니다. 신발과 옷이 눈에 젖어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되었지만 저희 부부의 육아 방식이 강하게 키우는 것이라 그냥 뛰어놀라고 허락했습니다. 이렇게 놀았던 추억도 특별한 체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죠.


 

  이번에는 발데즈시립도서관(Valdez City Library)으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도서관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어릴 적 집에서 한 시간 정도를 걸어가면 도서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추운 날에 눈보라를 헤치며 도서관에 가면 큰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따뜻한 공기와 도서관 특유의 종이 냄새에 행복을 느끼곤 했습니다.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서가를 비추면 서가에 빽빽이 꽂힌 책들이 보석보다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또 그 책들이 풍기는 냄새는 어떤 향기보다 저에게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도서관을 좋아해서 그런지 낯선 여행지에서도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알래스카에서는 꼭 도서관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긴 겨울에 야외 활동이 어려운 이곳에서 책으로 위로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가 방문한 도서관은 오래 머물고 싶은 아담하고 포근한 도서관이었습니다. 서가 한쪽에는 새 책을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안내문이 있어서 고르고 골라 4 권을 가져왔습니다. 뜻밖의 선물이었죠.



 눈의 나라 알래스카에서 보낸 카드를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알래스카발 카드는 상대에게 정말 큰 행복을 주지 않을까요? 그런 이유로 양가 할머니들에게 아이들이 카드를 보내 보았습니다. 우체국에서 할머니들께서 좋아하실 만한 카드를 고르고 골라 그 카드에 사연을 꾹꾹 눌러 담아 보냈습니다. 나중에 카드가 할머니들께 도착했을 때 너무 좋아들하셨죠. 저라도 손주들이 알래스카 여행지에서 보낸 카드는 감동일 것 같아요. 할머니들께도 추억이지만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런 낭만적인 생각을 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은 아침부터 눈썰매를 타러 갔습니다. 어제 맨몸으로 눈밭에서 논 것에 아쉬움이 많았던 아들은 눈썰매를 실컷 탄다고 신나했습니다. 오전 내내 눈밭에서 놀다가 배가 고파진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 식당을 찾아왔습니다. 역시 한국인에게는 밥이죠. 알래스카의 날씨와 순두부찌개, 불고기, 돌솥밥은 무 잘 어울리던 걸요. 현지인들이 이 한식, 특히 추운 날 국밥의 맛을 알면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질 못할 텐데 참 아쉽습니다.


 

 오늘의 숙소산장에 도착했습니다. 통나무로 만든 산장이었는데 운치 있고 좋았습니다. 알래스카 산중에 통나무 산장이라,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동화책에서 본 듯한 눈 내린 산장의 모습이었습니다. 실내 인테리어도 안락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에는 개가 2 마리 주인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순하고 귀여웠습니다. 혹시 모를 개에게 물릴 수 있는 사고의 염려 때문인지 개들의 송곳니가 모두 반씩 잘려 있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곳 산장을 굳이 찾아온 이유는 산장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날 새벽에 이곳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기대로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오로라는 깊은 새벽에 출몰했고 우리는 자다가 덜 깬 눈으로 환상의 오로라를 발코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새벽의 숲 공기는 너무 추웠지만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북극 추위를 이기게 하더군요. 이윽고 펼쳐진 오로라 쇼를 보면서 꿈인지 실제인지 잠시 헷갈렸습니다. 오로라를 보고 들어와 바로 포근한 침대에서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날 밤 꿈에 오로라를 계속 보지는 않았을까요. 너무 단잠을 자서 그런지 꿈은 생각도 나지 않는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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