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뜬구름이 좋아 Aug 17. 2023

자작나무가 너무 좋아

다솔솜네 여행 앨범: 살면서 다시 알래스카에 갈 수 있을까 #4

 이른 아침 우리는 흰 눈이 덮인 통나무 산장에서 나무 냄새를 맡으며 깨어났습니다. 새벽에 본 오로라는 마치 꿈 같았고 아침 산공기를 맡고 싶어 열어 본 문밖에는 눈 쌓인 산중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눈밭을 산책을 했습니다. 하지만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신발이 눈에 파묻혀 많이 걸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숙소로 서둘러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래스카 산장에서 아침 눈밭 산책. 말로만 들어도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요.



 North pole이라는 산타클로스 하우스에 다녀왔습니다. 크리스마스 소품점이지요. 4월이라 크리스마스와는 아무 상관없는 달이지만 눈 쌓인 이곳에서는 봄크리스마스 같네요. 크리스마스 하면 괜스레 설레고 기분 좋아지는 까닭에 그냥 크리스마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저는 자잘하고 깜찍한 소품을 구경하는 것이 좋거든요. 그것들이 누군가가 얘기하듯 예쁜 쓰레기여도 상관없어요. 우리 아이들도 자잘한 장식품을 많이 좋아해요. 그래서 북극에서 크리스마스 용품 가게 관광도 괜찮았어요.


 

 숙소에 다시 돌아와서 이곳에 구비되어 있는 스노슈를 신고 눈밭을 걸었습니다. 아침에는 스노슈를 신지 않아서 걷기 힘들었지만 오후에는 산장 앞에 펼쳐진 자작나무 밭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하얀 몸통을 가진 자작나무 숲이 풍기는 오묘한 아름다움 때문에 자작나무 숲을 동경해 왔습니다. 이곳에서 온 가족이 눈이 내린 자작나무 숲을 걷노라니 너무 즐거웠습니다. 동화책에서 본 삽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어디선가 빨간 색 목도리를 두른 하얗고 귀여운 북극여우가 나타나 뛰어다닐 것 같았어요. 이곳 알래스카에서는 도로변에도 자작나루 군락지들이 많았습니다. 작은 숲을 이루는 자작나무 무리를 볼 때마다 마음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Chena hot spring resort에 왔습니다. 야외 온천이라서 가벼운 옷이나 수영복을 입고 온천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노천탕은 딸아이가 아직 어려서 들어갈 수 없어서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보면서 각각 번갈아 들어갔습니다. 몸 따뜻한 물에 담그고 얼굴은 서늘한 공기에 노출되어 있으니 너무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한옥집에서 문틈 사이로 황소 바람이 들어오는 겨울밤에 몸을 꾹 누르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또 눈으로 앞에 펼쳐진 눈 덮인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온천욕으로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숙소로 돌아가던 도중에 선물처럼 오로라를 보았습니다. 여러 번 오로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은 오로라가 자주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운전대를 잠시 멈추고 오로라를 구경했습니다. 추운 날씨에나 볼 수 있다는 분홍빛깔 오로라도 보고 초록색, 푸른색의 오로라를 마음껏 감상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오로라 보기가 일상인 이곳에서 사는 것도 너무 좋을 같았습니다. 미국은 생각보다 여러 모습으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곳인 것 같았습니다. 삶의 선택지가 다양한 곳이죠. 땅이 워낙 넓으니 본인에게 잘 맞는 기후대를 선택해서 살 수 있는 것이 참 부럽습니다.



 온천욕 후 오로라를 마음껏 보고 온 탓인지 곯아떨어져 새벽 오로라를 보지 못한 아침이었습니다.  산장 거실의 탁자 위에는 아침마다 굿모닝으로 시작하는 공책이 있었습니다. 숙소 주인은 교수님으로 은퇴하신 분이었습니다. 특히 부인분은 오로라를 너무 사랑해서 매일매일 오로라 일지를 썼습니다. 이 공책에는 전날 새벽에 오로라가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친절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따뜻한 아침 인사와 함께 말이죠. 특별한 산장을 만드는 참 좋은 아이디어 같았습니다. 이 공책 덕분에 더 따뜻한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참 이곳은 새벽에 오로라 알람 서비스도 해주십니다. 오로라 구경을 온 관광객들에게 새벽에 나타난 오로라를 발코니에서 바로 볼 수 있게 말이죠.



  알래스카는 겉으로는 황무지 같지만 어마어마한 지하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니다. 이런 알래스카를 러시아가 미국에 헐값에 팔았다지요. 지금 그 알래스카를 판 사람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원망을 듣고 있을까요. 역시 겉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네요.

 오늘은 알래스카 북부에서 나는 석유를 미국 본토로 수송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파이프라인을 보고 왔습니다. 튼튼한 파이프라인을 보면서 참 미국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니언(canyon)에서도 느꼈지만 알래스카와 같은 춥고 황막한 땅에 도로를 깔아놓은 것 자체도 너무엄청난 것으로 보이더라고요. 콜럼버스의 달걀이 떠오릅니다. 달걀 껍데기를 깨서라도 둥근 달걀을 기어이 세우는 그 강한 추진력을 여기 파이프 라인에서도 느껴졌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버치 힐 휴양지(Birch hill recreation area)에 갔습니다. 자작나무를 좋아하는 제가 자작나무 언덕에 있는 이곳이 마음에 안 들리 없겠지요. 이곳은 노르딕 스키를 타는 곳 같았습니다. 걷다가 동아리 방 같은 곳에서 잠시 쉬었는데 이곳은 일반인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너무 잘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취미 생활을 마음껏 즐기면서 사는 인생은 한층 더 깊고 다채로운 즐거움으로 가득 찰 것 같습니다. 갑자기 학교에서는 공부보다 경쟁으로  힘들어하고 사회에서는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 들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어서 각자 일도 열심히 하지만 좋아하는 취미를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사회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Morris thompson cultural & visitors center에서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과거 삶의 모습과 초창기 알래스카 개발에 대한 기록을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알래스카에서는 대형 마트 유치가 힘들다고 들었는데 이곳 주민들이 발전으로 경제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보다는 자연 보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참 지혜로운 주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더 중요한 가치를 지켜나가는 주민들의 지혜가 존경스럽습니다.



'The Crepery'라는  크레페 전문 식당에 갔습니다. 이곳 맛집이라고 해서 갔는데 역시 민족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이런 경험도 전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달콤한 크레페에 적응된 저의 입맛에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한식만 고집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점점 여행지의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변화가 좋습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굳어서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제가 되고 싶거든요.


 

  입에 맞지 않는 크레페였지만 에너지 충전을 위해 열심히 먹고 Noel wien public library에 갔습니다. 이 도서관은 규모도 꽤 크고 시설도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추위를 피해 자리를 잡은 노숙인들이 보이더라고요. 노숙인 근처에만 가도 훈훈한 실내 공기 때문인지 냄새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을 밖으로 쫓아내고 깔끔한 도서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도 문화를 누릴 권리는 있으니까요. 다만 어느 사회를 가든지 사회의 궤도에서 이탈되어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다양한 사연으로 지금은 노숙인의 삶을 살지만 그들도 유년기에는 미래를 꿈꾸며 행복해 하던 순간들이 있을 테지요. 그들이 다시 희망을 노래하는 삶을 살길 기도해 봅니다. 응원하고 싶지만 다가가지도 못하는 저의 용기 없음이 죄송할 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엽서 보내기, 새벽의 오로라. 이것이 낭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