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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이 좋아 Aug 17. 2023

우리가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솔솜네 여행 앨범: 살면서 다시 알래스카에 갈 수 있을까 #5

 오늘은 좀 여유롭게 아침을 열었습니다. 어제 잠깐 들린 스케이트장에서 놀기 위해 개장 시간 맞춰서 나오느라 말이죠. 온 가족이 도서관에서 놀다가 남자팀인 남편과 아들은 스케이트장으로, 여자팀인 저와 딸은 도서관에 남았습니다. 딸아이가 너무 어리고 저도 빙판에서 크게 다친 경험이 있어서 스케이트를 못 타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에 이틀째 놀러 온 우리는 어제보다 더 현지인처럼 도서관을 여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작은 방과 같은 의자에 아이와 함께 편하게 앉아서 동화책을 읽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동화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만은 아니에요. 저는 특히 동화책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작가에 따라 개성 있는 그림과 어른책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 기발한 상상력이 녹아있기 때문이죠. 한때 동화작가를 꿈꾸기도 했기에 동화책을 고르는 일이 저에게는 보물 찾기와 같습니다.

 아빠와 아들의 Big dipper ice arena 스케이트장 체험은 둘 다 대만족이었습니다. 아이스하키 경기장이라서 그런지 규모도 크고 빙질도 좋아서 재미있게 즐기다 온 것 같았습니다. 문만 열어도 눈과 얼음이 펼쳐진 벌판이 펼쳐져 있는 이곳 알래스카이지만 실내 얼음판 위에서 타는 스케이트도 현지인에게 무척 매력적인 스포츠인가 봅니다.


 

 철판볶음밥을 먹고 싶어서 식당에 갔습니다. 철판 위에서 펼쳐지는 불쇼도 감상하며 즐겁게 밥을 먹고 나왔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식당가를 걷다가 사람들이 많은 커피숍에 들어갔습니다. 이곳에서는 미국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스타벅스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지 궁금하네요. 하여튼 식후 카페인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좀 힘든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타벅스와는 맛에서 비교가 안 되는 커피숍을 발견했습니다. 진하고 구수한 커피 향을 맡으며 아주 족했습니다. 저에게 커피 향기는 마법에 가깝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다가도 그 특유의 갓 내린 구수한 커피 향을 맡으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죠. 아주 여유로워져요.


 

 University of Alaska 내에 위치한  Museum of the North 자연사 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건물 자체가 알래스카의 빙하를 연상시키더군요. 살짝 누런 색을 띠는 흰색과 빙하의 모양처럼 끝이 날카롭거나 구부러진 형태가 말이죠. 실내의 건축 모양에서도 알래스카의 자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건축가가 정말 알래스카를 사랑하고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 했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볼 수 있는 천장에 달린 북극 고래의 뼈는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모비딕이 저 천장에 매달린 고래만큼 컸을까요. 고래는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게 공포와 함께 정복욕을 불러일으키나 봅니다. 박물관에는 이밖에도 정말 다양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에스키모인들이나 원주민들의 문화, 알래스카의 야생동물들, 예전에 그 지역에 살았던 공룡들과 자연환경 등이 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곳의 전시물들을 보면서 알래스카의 환경이 지금 이렇게 보전되어 있는 것에는 많은 이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생태환경에 관심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나 하나만 환경을 지키려고 노력하면 뭐 하나 이런 회의적인 생각에 빠져있었습니다. 한국과도 다르게 제가 사는 곳에서는 재활용 쓰레기 분류에 대한 압박이 느슨하거든요. 그리고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일회용품을 어마어마하게 사용합니다. 덩달아 저도 일회용품을 편하게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이번 알래스카 여행을 계기로 나부터 비닐 한 장이라도 아껴서 조금이라도 지구를 지키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군가 사람은 무의미를 가장 견디기 힘들어한다고 말했는데 제가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환경을 지키려고 노력의 의미를 찾은 것 같아 내심 뿌듯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다날리 국립공원(Denail national park)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눈 덮인 산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코스로 이곳에 왔기에 한결 더 여유롭게 눈을 감상했습니다. 만약 한국 출근길에 눈이 내렸더라면 그리 반갑지 않았을 눈입니다. 하지만 여유로운 여행지에서의 눈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고 환상적인 장식처럼 빛나네요.

 다날리 국립공원 안에 있는 Mountain Vista Picnic area에 왔습니다. 역시 산과 들판은 온통 눈, 눈이었습니다.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좋아하는 눈밭을 걸었습니다. 또 언제 우리가 살면서 이곳 알래스카에 와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걷고 또 걸었습니다. 4월까지도 눈의 나라인 알래스카를 다시 한번 더 확실히 체험했습니다. 문득 이곳에 눈이 녹으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분명 여름인 알래스카도 너무 예쁠 것 같았습니다. 알프스의 여름 산처럼 이곳 알래스카의 여름 산에도 초원 융단이 깔리겠죠. 혹시 우리가 알래스카에 다시 오게 된다면 여름의 알래스카도 보고 싶습니다. 초원에 핀 들꽃을 바라보며 인공적인 구조물들을 거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산들바람을 맞아보고 싶습니다.



 알래스카에서 마지막 밤을 Talkeetna 지역의 너무너무 예쁜 통나무 산장인 Sustina river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향긋한 통나무 냄새와 깔끔한 인테리어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창밖으로 보이는 실개천이었습니다. 정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설경에 함성이 터져 나왔죠. 해가 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창밖 풍경을 더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창가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는 언제 생길까요. 이런 풍경을 내가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습니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공항 가는 차를 타러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정말 집에 가고 싶지 않을 만큼 숙소 경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거든요. 가져 갈수만 있다면 가방을 깨끗이 비워서라도 담아가고 싶은 풍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숨죽여 오래도록 눈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Ted Stevens Anchorage International Airport에 다시 왔습니다. 눈의 나라에서의 일정이 아쉽게 끝이 났습니다. 계절 중에 겨울을 가장 좋아하고 눈 내리는 풍경을 사랑하는 저에게 이번 여행은 최적의 여행이었습니다. 또 인생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던 오로라를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었던 환상의 여행이었습니다. 행복한 기억으로 채운 시간들이 삶의 원료가 되어서 힘겨운 짐들도 거뜬히 어깨에 지며 미소 짓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변했습니다.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은 이곳 알래스카에 저의 마음 한 조각을 떼어 두고 왔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 한 조각은 눈밭이 펼쳐진 벤치에 앉아 설산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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