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일
H 아주머니를 뵈었다. 9년 동안 조금 나이 든 서로를 안아주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도 다정하셨다.
생전 엄마의 이야기들을 들었다. 떠난 사람은 조각이 절반쯤 빠져있는 퍼즐 같아서 여러 사람들의 조각을 이어 붙여야 한다. 아주머니가 알고 있는 엄마는 선하고 예의 바른 사람. 거동이 어려운 몸이어도 시원한 물 한 잔은 직접 주고 싶어 했던 사람. 나는 아주머니와 우리 사이의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생존하기 위해 대부분의 기억이 잠식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아주머니가 나에게 있어 고맙고 죄송스러운 분이었다는 감정만큼은 오래도록 마음 한 켠에 남아있었다. 아주머니는 생생하게 모든 것을 말씀해 주셨다. 엄마를 처음 봤던 순간, 통화하며 나눴던 대화, 마지막 모습, 장례식에 나왔던 남동생의 첫 휴가, 우리 집에 보냈던 작은 성의들, 내 합격 소식에 급하게 맞춰 보내주셨던 떡케잌. 조건 없는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빠가 몇 차례 사양을 하고 나서야 본인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 그만두셨다고 했다.
밥을 사드리고 싶다는 내게 나중에 자신보다 더 많이 벌면 그때 하라며 밥값을 내고는 아버지가 국수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셨다. 소면을 비롯한 무엇을 잔뜩 담은 쇼핑백을 들려주고 무거울까 봐 더 넣지 못했다며 아쉬워하셨다. 길목까지 배웅을 나와 뒤돌아 가는 내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아주머니를 뵙고 와서는 정겨운 마음과 좀 이상한 마음이 공존했다. 고객의 자녀로 만난 나를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걱정해 주는, 엄마와 똑같은 나이의 아주머니. 재회의 대부분이 마치 엄마의 일부를 다시 만난 듯 따스했는데, 최근 자녀를 낳았다던 아주머니의 딸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땐 내 마음에 잠깐 구름이 끼었다. 아주머니는 남들은 손주가 그렇게 예쁘다는데 아직은 모르겠고, 그저 아기가 아기를 낳은 것 같아 딸에게 더욱 마음이 쓰인다고 하셨다. 약 십 년 전 만나던 남자친구의 누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게 기억났다. 누나의 입덧이 너무 심해 엄마가 매일 그 집에 가 냉장고 청소를 해준다는 소리에 올라온 어떤 감정.. 나의 결핍에서 비롯된 불건강한, "시기"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 무거운.
살면서 그런 다정한 모성을 겪어본 적이 있었는가. 내 엄마의 사랑은 아주 간접적인 것이어서 취해 들어온 나를 노려보며 윽박지르던 엄마가 다음날 말없이 끓여둔 콩나물국에서 짐작해야 했다. 너도 꼭 너 같은 딸 낳으라는 저주에서 이면의 섭섭함을 유추해야 했다. 확신의 언어가 부재한 자리 위, 상상의 힘을 빌려 얼기설기한 사랑의 형태를 스스로 그려보곤 했다. 그렇게 자란 나는 그저 그렇게 지내다가도, 이렇게 화사하고 직접적인 모성애를 마주할 때 드러나는 내 안의 빈곤을 본다. 빛이 강해질 때 진한 음영이 들 듯이. 무언가를 묻고 답하고 바로잡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떠나버렸다. '엄마, 나를 정말로 사랑했어?', '나라는 존재가 사랑받을 만 해?'... 엄마만이 채워줄 수 있던 깊은 크랙들은 고스란히 무력하게 남겨둔 채.
많은 시간이 흐르는 사이, 기억은 퇴화되었고 묵혀있던 감정들은 떠올랐다. 한바탕 돌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모든 것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맑아진 눈으로 그것들을 살피며 호기심을 가지기도, 비평을 하기도, 마음껏 추억하고 음미하기도 한다.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싶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엄마의 조각을 받아오고 싶다. 나와 그들의 조각을 대보며 서로의 공감대와 간극의 너비를 가늠하고 싶다. 그렇게 내 기억 속 희미하고 불완전한 엄마라는 존재를 다시금 빚어내고 싶다. 이제야 진정한 추모의 과정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