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랑의 끝

2026년 4월 17일

by 소로



삼 년 반 연애의 끝이 다가왔다.


우리는 '좋은 사랑'을 함께 배웠다. 누구 하나가 먼저 알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던 서로가 서로를 만나며 자연스레 배워갔다. 초반엔 겁도 내고 실수도 했지만 그런 모습조차 받아들여주는 서로를 보며 마음을 열었다. 우리의 사랑은 순조롭게 깊어져갔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랑이란 서로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사랑이다. 애인과 나는 서로를 성장시키는 관계였다. 개인적이고 건조하던 성격의 애인은 나를 만나고 한결 따뜻하고 관용적인 사람이 되었다. 부모님에게 살뜰한 딸이 되었으며, 아주 가끔이지만 감정이 북받칠 때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타인을 의식하고 스스로를 잘 살피지 못했던 나는 애인을 만나고 나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었다. 애인의 단단한 신뢰와 애정 아래, 보다 덜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사랑 받아본 자의 여유로부터 미운 사람에게조차 다정함으로 다가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애인은 첫 만남부터 마지막까지 매 순간 내게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그 마음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를 이 정도로 예뻐하고 사랑할 수 있다니, 나 스스로에 대한 놀라운 발견이었다. 애인은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큰 사랑을 준 사람은 너일 것이라 말하곤 했다. 사랑을 배우고 보니 내 사랑은 반쯤은 모성애를 닮아 있었다. 또 나머지 반쯤은 상대가 온전히 나를 생각해줬으면 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끈 것 같지만.


나는 내가 이런 사랑을 하게 될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몰랐으니까. 평생 결핍으로 남아있었던 사랑이라는 부분을 애인을 통해 재경험하고 보니, 세상이란 참 살만한 곳이었다. 함께 밥 해 먹고 산책하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았다. 다가올 기념일들을 기대하며 축하하는 재미도 알았다. 삶의 이유가 생기며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던 마음은 점차 사라져갔다.


외국으로 떠리려던 나는 애인을 만나는 동안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내가 있는 기반에서 애인과 함께 뿌리내리며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애인을 보며 단지 타이밍의 차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너를 만나고 이렇게 바뀌었는데, 너도 언젠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 간극은 좁힐 수 없는 종류의 것이란 걸 애인도 나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생각보다 안정에 대한 추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애인과 법적으로도 경제 공동체로도 얽히고 싶었다. 약해지고 늙어가는 서로임에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책임지고 싶었다. 그렇게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애인을 이해하고 싶었다. 오롯이 이해하고 존중해 보려 오랜 기간 애를 썼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치유될 수 없는 나의 상처가 애인의 상황으로 건들어질 때마다 스스로와 싸워야 했으므로. 애인 역시 본인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헤어질까 라는 의문을 품었던 적도 있다. 겪어보니 이제는 알 것 같다. 사랑만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순 없다. 짧지 않은 내 인생에서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사람. 이만큼 누군갈 사랑할 수 있을까 싶지만 당신으로 인해 더 성장한 내가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어떤 사람을 만나 또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그 사랑은 분명 더 좋은 사랑이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