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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Jul 10. 2021

순돌이(강아지)와의 첫여행

고향의 겨울

 거리는 겨울다웠다. 을씨년스럽고 안쓰럽기까지 했다.

도착 10분 전의 맵을 쳐다보며 겨울이 마음으로 옮겨지는 것을 알았다. 아무런 추억도, 기억나는 얼굴 하나 없는 고향이니 당연했겠지. 그런 고향이지만 녀석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뜻밖이었다. 순돌이와 함께라서 였을까. 눈 녹은 바람의 향기는 온유하고 포근했고 살갗을 비비며 스치는 바람은 뽀송하기까지 했다. 첫 추억의 여행을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급회전한 선택이라 정확히 39년 만이라는 것도 계산하지 못했다. 길고 넓어 보였던 동네 어귀 동동(동네 이름) 다리가 한 뼘으로 짧아져 있다는 걸 발견하고서 비로소 39년을 단 번에 넘어왔음을  알게 되었다. 

  



 순돌이는 본능적으로 나의 고향임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창밖으로 머리를 내민 채 뭔가를 킁킁거리며 열심히 탐색하고 있었다. 인간보다 수백 배 탁월한 후각을 가진 아이들이 아닌가. 나와 세상을 번갈아 보며 연결고리를 찾고 있던 순돌이의 초롱한 눈망울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 차를 세웠다. 높았던 담장이 어깨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훤히 보이는 집집의 마당이 어찌나 정겨웠는지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 온다. 고향은 그런 곳이었다. 녀석은 내 보폭에 맞춰 얌전히 걸어주었고 연신 고향이라고 일러주는 내 말을 귀담는 듯했다. 들어주는 순돌이가 기특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하나씩 둘씩 묵은 추억들이 실타래처럼 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기억하지 않았으나손바닥으로 담장을 쓸었을 때의 마디마디가 고향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유달리 학교 가기 싫은 날이었다. 나와 똑같이 마음먹은 단짝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이 파이브를 외쳤다. 우리 학교는 사철나무로 울타리가 쳐져 맘만 먹으면 누구라도 비집고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학교를 벗어나 친구의 자취방에서 만화를 보았다. 대단한 짓을 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학교가 싫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서  엄마가 이틀을 고모네 집에서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내게 탈선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교육방식은 교묘했다. 내가 아버지를 본격적으로 미워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우리들의 잘못을 엄마에게로 돌리는 것. 야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 마음을 느꼈는지 녀석은 비스듬히 기운 담장 아래 배를 깔고 엎드렸다. 나도 따라 쪼그리고 앉았다.     


“주워 담으라는 거지?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을 말이야 그렇지?”    






 


엎드린 순돌이를 깨워 집으로 향했다. 돌보지 않으면 사람도 집도 버려지는 것은 마찬가진다 보다. 가끔 언니들이 다녀간다고는 했으나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폐허가 된 집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 낡은 장난감 상자처럼 작아져 있었다. 초현대식으로 지었노라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했던 멋진 집이 아니었던가. 주방 벽면과 바닥에 동전 크기의 사각 타일이 붙은 것도 처음이었고 집안에 목욕탕이 있는 것도 획기적이었다. 연하늘색의 매끈한 타일의 촉감이 좋아 매일 집에서 목욕했던 기억이 난다.  바래지 않는 물감으로 그린 그림이었고 그리움이었다. 결국은 문을 열어보지 못하고 나왔다. 삭아져 가는 뭔가를 확인한다는 것이 싫었다.


고향의 이미지  (책 : 국가 복지에서 동네 복지로)에서 캡처


해는 중간을 훨씬 지나 있었다. 나는 서둘러 초등학교로 향했다. 사실,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었지만 집을 지나쳐야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늘진 곳에는 들 녹은 눈이 솜사탕처럼 박혀 있었고 운동장은 아이들의 발자국이 짙게 남아 있었다.  놀 곳이 마땅치 않았던 시골 아이들이 오래도록 놀다가 막 집으로 돌아간 흔적이었겠지.




 고요했다. 녀석과 나, 둘만의 세상이었다. 녀석의 웃음소리는 울리는 징처럼 고향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여 갔다. 기대선 나무들도 흥에 겨워 춤추는 것 같았다. 나지막이 앉은 교실은 시리도록 애틋했다. 녀석은 나의 추억어린 고향을 세세히 기억하려는 듯 하늘 향한 고개를 한번도 떨구지 않았다. 다시는 올 수 없다는 것을 순돌이도 알았던 것이었을까?    


녀석은 얼마나 지나야 나의 상처를 찾을 수 있을지...

혀끝에 연필심을 녹여가며 꼭꼭 눌러쓴 어린 일기장의 꿈을 정영 찾을 수 있을지...    


 39년의 세월이 길 앞에 놓여있었다.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교실이었고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했었다. 펼쳐진 교실의 풍경은 내 이기심을 자극했다. 대형 온풍기며 빔프로젝트까지  책상마다 붙박이처럼 고정된 컴퓨터가 참으로 놀라웠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혜택을 이들은 몰랐어야 했단 말인가.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해가도 고향은 기억한 대로 보존되길 기대했겠지. 먼지 한 톨 남김없이 치워진 교실에는 오십 중년의 그림자뿐이었고 녀석은 대각선 모서리에 몸을 말아 누웠다. 아무리 버려도 지워지지 않는 나의 체취를 녀석은 찾았던 것이었을까?    


가자 순돌아!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이미 누군가를 만나는 건 의미가 없었다. 다시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했던 한 세월이 허무의 뒤안길로 꼬리를 감추었음을 깨달았다. 내 인생의 미해결 과제였던 고향은, 아버지는 삶의 뿌리였고 가지였다. 잎사귀와 열매는 나의 몫이었음을 다녀와서야 알게 되었다. 고향은, 켜켜이 쌓인 분노의 시간들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고 아버지는, 나를 지탱하게 한 멍에였다는 것도 다녀와서야 알게 되었다.




뉘엿뉘엿 석양이 머리 위를 선회할 때쯤 녀석과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탔다. 뭘 기대한것 없이 다녀간 고향이지만 여전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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