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도 어김없이 앞집 이웃과 함께 산을 누비며 다녔다.
좋아하는 두릅을 따기 위해 돌아오는 길을 까먹도록 이리저리 뒤지며 온산을 헤맸다.
어느새 각종 산나물과 두릅이 자루에 한가득이다.
언제 이런 비탈길을 올라왔지? 이렇게 가파른 길이었나?
반나절이 훨씬 지났는데도 금방처럼 느껴졌다. 잠시 굽힌 허리를 펴고 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애당초 길이 아닌 길을 가고 있었다. 필요한 것을 얻고 보니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준비해 온 자루마다 꾸역꾸역 다져 넣어 더 이상 담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욕심스러운 손이 보이기 시작했다.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 가득한 산나물에 뒤섞여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이고 적당히 하지 뭔 욕심이 그리 많아?”
“그러게요 하하 이렇게 많을 줄... 무거워서 좀 내려놓고 가야겠어요”
맘에 없는 말을 건성건성 성급히 대답해 놓고 지름길을 찾기 위해 우거진 숲을 막대기로 휘휘 저으며 두리번거린다. 길을 잃은 것 같다며 잔뜩 겁먹고 내게 같이 온 이웃이,
'이런 험한 길을 누가 왔을라고. 지름길이 있겠어? 다시 길을 내며 가는 되지'
그런가 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취할 것과 취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없이 내 것처럼 구겨 넣고 나면 매번 지름길을 피해 험한 길을 다니게 되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된다. 힘들고 무거울 땐 미련 없이 놓는 법도 익혀두어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싫어 미련한 짓을 미련하게 반복할 때가 더러 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왔으니 지름길을 놓칠 수밖에. 놓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건 필요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뭐부터 내려놔야 하지?
가만있어 보자...
두릅은 안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건데 아무렴 안 되지.
그럼 다래순? 아 이건 쪄서 말리면 겨울 양식이니까 많은 게 아니지 아무렴.
그럼 더덕, 취나물? 꽁무니 잘라 버리면 얼마 되지 않을걸? 아무렴.
그럼 미나리 싹? 아냐, 깨끗이 씻어 보관하면 충분히 일주일 셀러리 감이지 아무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쏟아놓은 순서대로 되돌아 담는다.
또다시 쏟아놓아도 버릴 것은 여전히 없을 것이다.
버리지 않아야 하는 수만 가지 이유를 여기저기서 끌어놓는 내 모습이 그리 낯설지 만은 않았다. 익숙한 몸짓은 어디에서나 자연스레 뿜어져 나온다.
잠시 하늘 시계를 올려다보며 물 한 모금 마시니 금방 다리에 힘이 실렸다.
그래 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래 데리고 가는 거야.
우리의 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끔 후진기어를 넣고 달리는 인생 같을 때가 있다.
버거워 버려 놓은 것들을 다시 두레박처럼 힘겹게 퍼 올린다.
그렇게라도 되찾고 싶은 어제에는 어떤 것들이 숨겨져 있을까.
쏟아 놓고서도 순서대로 되돌아 담을 만큼 안타까운 것들일까.
그래서 산 아줌마는 산에서 내려올 때는 한마디도 말을 섞지 않는다.
혼잣말도 하지 않는다. 사각사각 관절에서 소리가 나고 열이 나고 붓기가 손에 잡혀도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잘했노라고 스스로 칭찬하며 어깨를 피면 부듯해진 자아가 한 겹 튼튼한 울타리를 치고 있다. 더욱 튼튼한 집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마당에 솥을 걸고 불을 지핀다. 남편은 슬그머니 나와 미소를 짓는다.
“겨울 농사를 잘 지어왔군”
일일이 다듬고 삶아 놓으면 부피가 턱없이 줄어든다. 다시 가자고 약속을 한다.
앞집 이웃이 안 간다면 혼자라도 갔다 와야지. 다듬고 삶으며 겨우 다짐한 것이
오늘보다 더 많이...
구멍 난 하수구처럼 술술 혼잣말이 센다.
열이 나는 관절에 얼음주머니를 갖다 얹으면서 하는 혼잣말이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던 것일까.
널따란 소쿠리에 삶은 나물을 말린다. 손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기차 레일처럼, 함께 가는 이쪽과 저쪽의 경계는 오래 살아도 좁혀지지 않는다.
모두 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 속에 찬 욕심도 물기 없이 건조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