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을 사러가며 흐뭇해했던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이번엔 조금만 사야지'를 연방 되뇌지만 도착하자마자 좁은 텃밭은 아량곳 없이 주워 담기 바빴다. 아삭이 상추를 더 많이 담았다. 우리 부부가 특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넉넉히 차에 싣고 집으로 가는 길은 흐뭇함이 배가 되었다. 호미로 밭을 고르며 겨우내 숨죽였을 흙의 기운을 느끼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자고 나면 쑥쑥 자라 있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를 새삼 깨닫기 때문이었다.
그런 재미를 만끽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허전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정의 재미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지만 오월 초에 이사를하면 아마도 그쪽 집 텃밭의 채소 크기가 먹을만큼 자라 있겠지. 이 집으로 들어올 사람을 위해 텃밭의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집수리로 인해 입주 계획을 당분간 할 수 없을 거라는 통보를 주인에게 받은 터라 수고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를 혼자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잘못된 계산법이었다. 텃밭이 잘 가꾸어진 시골 주택 전세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였다. 천정부지로 오른 가격도 그러하거니와 계약기간이 4년으로 연장되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사가 오월쯤이 될 거라는 예측은 정확히 빗나갔다. 어째던 어렵게 전세를 구했는데 이사 날짜가 8월 말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머리를 스친 건 텃밭이었다. 시기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가끔 보는 광 자매란 주말드라마가 있다(드라마 선전 절대 아님). 터줏대감으로 등장하는 대화 중에 “지랄도 풍년이지"라는 멘트가 있다. 씩 웃으며 가끔 생각해 보는 지랄에 풍년이 들면 어떨까? 어떤 모습일까?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지랄에 풍년이 들면 딱 지금 내 꼴이 아닐까? 이래저래 얄팍하게 자질하다가 채소를 얻어먹어야 하는 꼴이 돼버린 것이다.
“친구야 집에 있니? 채소 못 사 먹겠어. 맛이 없어서”
“그래? 나 없어 그냥 와서 따가”
대문 없는 시골집 풍경이 아직은 낯설지만 그렇다고 대문 달린 집은 시골냄새가 덜나서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친구라고는 하나 그냥 와서 따가라는 말이 예전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이곳은 이렇게 살아가는 곳이었구나. 담장이 낮으니 아무나 들어가서 먹을 만큼 훑어가도 이상하게 쳐다볼 눈도 없을 것 같았다. 맛있는 상추와 갖가지 채소를 따기 위해 주인장도 없는 집을 도둑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들어갔다. 그래도 동네 사람이 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해야지.
“이 집주인이 제 친구인데요, 허락을 받고 왔으니 가던 길 그냥 가시지요!!”
그 누구도 물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꾸할 말을 준비하면서 간다.
“참 지랄도 풍년이지” 딱 맞는 말 아닌가!!
언제부턴가 사소한 것도 어긋나는 것을 느낀다. 철저히 계산하고 계획하고. 이젠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또 그렇게 하고 있다. 그냥 살면 될 것을 꼭 옛 짓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