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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Jun 27. 2021

텃밭의 아쉬움

대문 없는 시골집 풍경

 



이사를 계획하느라 텃밭을 가꾸지 못했다.

그런 탓에 늦겨울과 초봄 사이가 허전하게 지나갔다.


모종을 사러가며 흐뭇해했던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이번엔 조금만 사야지'를 연방 되뇌지만 도착하자마자 좁은 텃밭은 아량곳 없이 주워 담기 바빴다. 아삭이 상추를 더 많이 담았다. 우리 부부가  특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넉넉히 차에 싣고 집으로 가는 길은 흐뭇함이 배가 되었다. 호미로 밭을 고르며 겨우내 숨죽였을 흙의 기운을 느끼는 기분은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자고 나면 쑥쑥 자라 있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자연의 섭리를 새삼 깨닫기 때문이었다.


그런 재미를 만끽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허전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과정의 재미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지만 오월 초에 이사를하면 아마도 그쪽 집 텃밭의 채소 크기가 먹을만큼 자라 있겠지. 이 집으로 들어올 사람을 위해 텃밭의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집수리로 인해 입주 계획을 당분간 할 수 없을 거라는 통보를 주인에게 받은 터라 수고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를 혼자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잘못된 계산법이었다. 텃밭이 잘 가꾸어진 시골 주택 전세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였다. 천정부지로 오른 가격도 그러하거니와 계약기간이 4년으로 연장되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사가 오월쯤이 될 거라는 예측은 정확히 빗나갔다. 어째던 어렵게 전세를 구했는데 이사 날짜가 8월 말경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머리를 스친 건 텃밭이었다. 시기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가끔 보는 광 자매란 주말드라마가 있다(드라마 선전 절대 아님). 터줏대감으로 등장하는 대화 중에 “지랄도 풍년이지"라는 멘트가 있다. 씩 웃으며 가끔 생각해 보는 지랄에 풍년이 들면 어떨까? 어떤 모습일까?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지랄에 풍년이 들면 딱 지금 내 꼴이 아닐까? 이래저래 얄팍하게 자질하다가 채소를 얻어먹어야 하는 꼴이 돼버린 것이다. 

 

“친구야 집에 있니? 채소 못 사 먹겠어. 맛이 없어서”

“그래? 나 없어 그냥 와서 따가”  

  

대문 없는 시골집 풍경이 아직은 낯설지만 그렇다고 대문 달린 집은 시골냄새가 덜나서 좋아 보이지도 않는다. 친구라고는 하나 그냥 와서 따가라는 말이 예전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처음엔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 이곳은 이렇게 살아가는 곳이었구나. 담장이 낮으니 아무나 들어가서 먹을 만큼 훑어가도 이상하게 쳐다볼 눈도 없을 것 같았다. 맛있는 상추와 갖가지 채소를 따기 위해 주인장도 없는 집을 도둑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들어갔다. 그래도 동네 사람이 뭐라고 하면 이렇게 말해야지.


“이 집주인이 제 친구인데요, 허락을 받고 왔으니 가던 길 그냥 가시지요!!”


그 누구도 물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꾸할 말을 준비하면서 간다.    

“참 지랄도 풍년이지” 딱 맞는 말 아닌가!!

    

언제부턴가 사소한 것도 어긋나는 것을 느낀다. 철저히 계산하고 계획하고. 이젠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또 그렇게 하고 있다. 그냥 살면 될 것을 꼭 옛 짓을 하고 있다.    

               




해 거름 붉은 노을이 집 마당을 빠져나간다.

검정 보자기 가득 채소를 담고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마중 나온 순돌이의 헉헉대는 웃음소리가 또 속에 웃음을 자아낸다.

(순돌이 : 진돗개-우리 가족)

차를 타고 5분만 가면 친구 텃밭이 있어 행복하다.

무릎까지도 안 되는 담장.

앞마당이 훤히 보이는 대문에다 걸쳐진 자물쇠가 의미 없어 좋다.    

그럼 아예 내년부터는 텃밭을 가꾸지 말아 볼까?

다 내 텃밭처럼 인걸!!!

“이런 도둑놈 심보 하고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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