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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프 힐 링 Jul 03. 2021

정서적 조율

(가트맨의"부부감정 치유"를읽고

  

  가끔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이 손끝에 만들어져 있으면 어땠을까.


 뇌의 지령에 의해 정제된 도파민이 새롭게 생성되는 세포를 따라 마음의 장기에 도달하면, 보이고 싶은 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 주는 것. 그런 세밀함까지 신체의 한 구조로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부부관계는 내가 가진 마음의 모양과 형태가 제멋대로 변하여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미세한 갈등의 틈이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끝나는 발단이 되기 때문이다. 설명하기 서툴러서. 타이밍을 놓쳐서.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말하지 말아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는다. 그러나 그 마음의 눈이 따뜻한 감정선을 타게 되면 굳이 마음이 손끝에 있지 않아도 보인다는 것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감정(분화, 미분화로 구분할 수 없는)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과는 정도의 차이지 관계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노출되어 있다.


 동국대 석좌 교수 조 벽의 추천사 “신뢰는 과정이다”란 제목에서 나의 지각은 이미 해체되었다. 내가 정의하는 신뢰는 하나의 결정체 즉, 대상에 대한 결과론적인 명사였으며 흑백논리였다. 그러나 가트 맨 박사는 명사, 동사, 형용사, 신념 등 모든 것들을 포함한 생애주기와도 같은 각 단계의 속성과 특성을 45여 년의 종단 연구를 통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차원적이고 복잡한 감정들, 주고받음의 행위들, 많음과 적음의 상처와 배신들, 일련의 부정적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 끝에 신뢰를 과학적으로 수량화했다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다. 가령, 부모의 적대적 관계가 아이에게 미치는 스트레스 수치와 아이의 소변검사만으로도 부부의 이혼 확률을 예측할 수 있다는 통계가 94% 정확하다는 것이 놀랍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혼의 위기에 있는 부부는 보수가 불가능한 치명적인 감정의 홍수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에, 실패를 초래하는 '바퀴벌레 숙소로 가는 5단계'를 살펴보면,   

"1단계 : '미닫이문 순간'이 있다. 관계에서 말 걸기의 시작을 '미닫이문 순간(sliding door moment)'이라고 부른다. 아내나 남편이 연결하고 싶다고 표현할 때 배우자의 반응은 미닫이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거나 문을 닫고 외면하기다"

 여기에서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는 '다가가기(turning toward)' 대화를 실패하면 미닫이문의 견고함이 2단계의 후회할 만한 사건으로 연결되고 3단계의 자이가닉 효과가 뿌리를 내리게 된다. 모든 단계가 우리가 범하는 愚 에 속 하지만, 특히 3단계는 더욱 흥미로웠다. 자이가닉 효과란 마무리가 안 된 일들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이다. 부부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부모, 형제, 친구를 포함한)도 마찬가지다.

"마치 신발 속의 돌멩이처럼 그 기억은 끊임없이 짜증을 유발해 결국 배우자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증가시킨다"(페이지 76)

 이처럼 오래된 매듭으로 인해 현재까지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그 기억을 쫓아가야 한다.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멀리 달아난 부부라 할지라도 이혼의 타당한 명분(외도, 폭행 등 이혼의 결정적인 이유)을 찾지 못하는 건 필경 감정의 문제일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의 매듭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찾는다면 고리를 풀어내는 방법은 근처에 있을 수도 있다.  이 고리를 풀지 못하면 4단계의 부정적 감정의 밀물 현상이 자리 잡게 된다고 하였다. 긍정적인 사건조차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끔찍'한 상태에 자주 들어가게 되는 단계를 말하며  결국은 5단계의 네 가지 독이 대재앙을 일으키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네 가지 독은 비난, 경멸, 방어, 담쌓기이다. 비난은 파괴력이 약하다고는 하나 이혼으로 가는 부부들에게 보이는 첫 번째 징후이며 다음 단계가 경멸이다.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경멸]이란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경멸하는 아내도 경멸당하는 남편도 그 이유를 모르고 수십 년을 살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진솔하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 부분 역시 미해결 과제로 남게 된다면 굳이 방어나 담쌓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독은 저절로 쌓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 정거장은 '연인들을 위한 바퀴벌레 숙소'로 가는 단계이다.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모든 관계는 관계 안에서 증명되어야 하므로 일정한 리듬이나 규칙 없는 상호 신뢰는 불가능하다.

"부부가 서로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서로에 대한 지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친밀감이 존재한다 “정서적 조율”이라고 하는 이런 능력은 어떤 운 좋은 부부에게는 아주 간단한 것이지만, 많은 부부가 어렵다고 느낀다. 다행히도 조율은 거의 모든 부부가 배울 수 있고 학습을 통해 강화시킬 수 있는 기술들로 이루어져 있다".(페이지 141)

 이처럼 “정서적 조율”이 간단하지는 않으나 누구든 학습으로 가능한 기술이라고 하였다.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는 많은 부부 들의 삶의 형태들을 보면 가정에 이익이 되는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대화가 끊어지지 않는다. 나의 이익이 아닌 상대의 이익, 즉 가족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부부의 정서 체계를 조율하기 때문이다. 책(페이지 141) 하반부와 다음 페이지 중반부(페이지 142)에서도 밝혔듯이,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배우자와의 정서적 차이를 살핌과 동시에 초 감정(meta-emotion)에 대한 느낌을 배우자와 소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배우자의 영향력을 받아들인다는 건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한다는 의미이며, 의견의 불일치에서도 다정함을 보일 수 있다는 건 타협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가 전제된 부단한 노력의 대가일 것이다. 다정하여 부부 체계가 없는 것이 아니며 과다한 융합으로 경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따뜻한 긴장감을 정서적으로 조율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진정한 친밀감으로 서술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해서 감정을 무시하거나 부끄러워하면 안 된다. 차라리 배우자에게 감정 표현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하고 그 감정을 본인이 깨달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라.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신체에 집중하고 감정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것이다.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유진 젠들린 박사는 이 방법을 '집중'이라고 부른다"(페이지 154).

  이처럼 단어 표현을 연결하는 훈련이 쉬워지면 감정을 조율하는 능력도 발달된다는 것이다. 개방형 질문과  상대방의 말에 유대감을 강화하는 말을 하며 진심으로 공감하고 연민을 표현하는 네 단계의 방식을 따르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독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공감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앞 3단계를 훌륭히 수행해 내어도 공감적 유대를 강화하지 못하면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하여서 스포크 박사는

"정신 융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잠시 동안 자기 자신의 의식을 차단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의미하는 공감에 가까운 것이다. 특히 배우자가 상처, 분노 또는 슬픔을 표현할 때 그렇다. 조율은 당신이 거의 배우자가 되어 배우자의 감정을 경험하는 그런 강도의 정신 융합을 요구한다. 우리 모두는 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페이지 196)

  완벽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진정한 공감은 배우자의 감정 속으로 합류하여 둘만의 통로를 찾아내는 것이다.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둘만의 세계. 그 세계의 아름다운 템포는 왈츠를 추게 한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만들어 내는 정신 융합은 정서적 조율이라는 멋진 곳으로 부부를 초대할 것이다. 그렇듯 완전한 공감은 신뢰에 우선해도 되는 감정이며, 부족한 신뢰를 채우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부부의 정서적 조율이 간단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이상적이거나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은 사랑이었다.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성공적인 보수 시도를 하고 바퀴벌레 숙소를 피하라는 과학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삶에 있다는 것을 감사하는 일이다. 나는 인간관계를 과학적이라는 완고한 불빛에 드러내는 것이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페이지 339)

 이처럼 어떠한 과학적 통계도, 훌륭한 대화의 기술도 사랑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사랑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신성한 경험이다. 서로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 주어 신뢰를 쌓고 함께 만들어 낸 것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면서 진정한 감사를 통해 서로에 대한 충실함을 강화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성경의 잠언 31장을 바꾸어 말하면 훌륭한 배우자는 루비보다 더 소중한 보석이다.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랑으로 당신은 매일 당신의 삶 속에서 악이 아닌 선을 경험할 것이다" (페이지 347)   





... 진실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 한동안 그 소리에 집중하여 심연의 요동에 체온을 맡겨본다.

 

 어느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의 위력이다. 죽음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듯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인간은, 온몸에 생채기를 내며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그것이 사랑이 가진 힘이다. 결단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평행 선상에서 죽음과 사랑을 초월하지 못한 채 갈등과 방황을, 용서와 사랑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의 주기에 거미줄처럼 엉켜 있는 일련의 현란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나의 배우자가 있고 내가 있고 나의 원 가족이 함께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부부란 특별한 관계와 가족으로부터 파생되는 관계 또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삶이 말하는 지혜가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이 책이 안내하고 있다.


 신뢰의 과정에 충실하며, 배반으로 가는 여러 가지 방식에 우리의 발목이 묶이지 않아야 하는 것도 생생하다. 신뢰와 정서를 조율하는 방법, 다양한 갈등들을 해결하는 방법, 친밀한 성관계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법 등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 가는 질문과 질문들, 도식되고 편협된 의식 덩어리를 스스로 도려낼 수 있도록 친절한 메스를 들게 해 준다.  


 비로소 감정이 치유된다면 서로를 신뢰하는 믿음이 정서적 융합과 조율 속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바라는 이상적인 부부상이다. 가트 맨 박사는 이 단계가 어렵지 않으며 우리 모두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런 노력과 열정이 배우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스한 온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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