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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일사삼공삼 Jun 17. 2021

당신의 불빛은 무엇인가요?

6월 3주차 블루블랙 망월장 출품작

관상을 보는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 귀를 보고서는 이리였는지 호랑이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동물의 귀라며, 남이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성격이라 했습니다. 정곡을 찔렸죠. 정말 그랬거든요. 그 친구가 놓친 것이 하나 있다면 저는 읽는 것도 제 마음대로 읽는다는 것입니다. 중학교일지 고등학교일지 국어 시간에, 모든 문학 작품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고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으니, 이 ‘제멋대로 읽기’는 대충 면죄부를 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신이 살면서 체험한 최고의 진리는 무엇인가요?” 이번 망월장의 주제입니다. 어디 한번 제멋대로 읽어보겠습니다. ‘진리’는 철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지요. 철학은 밝을 철(哲)자를 사용합니다. 몇 년 전 꼬닥꼬닥 졸면서 들었던 철학 수업 시간에, 한 교수님께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둠 속을 헤쳐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으며, 철학은 어둠을 밝혀서 앞으로 나아가는 그 걸음을 돕는 학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진리가 나아갈 길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면, 내딛는 발걸음에는 자유가 생기겠지요. 다양한 갈림길도 보일 것이고. 선택한 이 길이 얼마나 울퉁불퉁할지 미리 보고 입술을 꽉 깨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조건이 달려 있네요. ‘당신이’, ‘살면서 체험한’ 입니다. 망월장 주제를 설명한 글을 읽어보니, ‘그러나 그 대안은 불가피하게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면모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서 제각기 다른 어둠을 직면했고, 따라서 모두 다른 빛을 찾아 길을 밝혀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끈적하게 달라붙는 어둠을 횃불로 물리쳤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싸늘하게 목을 죄어오는 어둠을 안개등으로 뚫었을 거에요.



또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나의 진리보다 타인의 진리가 나에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또한 너무나 옳은 말입니다. 나는 쏟아질 듯한 어둠을 촛불로 겨우겨우 더듬어 밝히고 있는데, 비슷한 어둠을 헤쳐나갔던 다른 사람이 횃불을 피우는 법을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이 ‘진리’를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명언’이랄지, 아님 ‘좌우명’으로요.



사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진리를 향한 여행’ 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엔 눈만 돌리면 온갖 명언이 쏟아져 나오고, 클릭 하나만 하면 과거 위인들이 품었던 좌우명이 눈덩이처럼 굴러옵니다. 그래서 ‘여행’이라고 표현하셨나요? 저에게 여행은 도저히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쉴 새 없이 맛보는 경험이거든요. 그중에는 도저히 이것만은 안 되겠어! 하게 되는 것도 있고, 이상할 정도로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수많은 너와 나의 진리 속에서 읽고 듣고 맛보고 느끼다 보면, 내가 들고 있던 것이 촛불이었는지 혹은 횃불이었는지도 알게 될 테고, 다른 이가 들고 있는 백열등을 가져와 내 것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요.



이젠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가 왔네요. 제가 체험한 최고의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Dum vita est, Spes est.”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라고 해석되는 문장이지만, 저는 또 저답게, 제멋대로 읽을래요.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네.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그 어떤 일을 겪더라도 살아만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역전할 수 있어요. 최악의 최악까지,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살아만 있다면 다시 기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살아만 있다면 한번 보고 다시 못 본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날지도 몰라요. 살아 있다면 다시 한번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힘과 의지를 잃고 헤매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를 죽이려 드는 수많은 바깥의 것과 합세하여 내가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이것으로 저는 저의 어둠을 밝힙니다. 이것이 바로 제 불빛입니다. 당신의 불빛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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