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걷는 시간

사람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존재

by 다경 ㅡRegina

요즘 친구들과 만날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바로 쳇 GPT다.


누구는 ‘지브리' 로 만화 같은 사진을 뽑아내어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고

누구는 AI에게 자기소개서를 쓰게 했다고 자랑한다.

이제는 “나만 안 써봤나? “ 싶은 마음에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나도 이것저것

해본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다.

처음엔 신기하고 편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AI 가 내 안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무얼 검색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알고 있다는 듯 관련정보를 툭툭 띄운다.


식당을 다녀오면 “ 오늘 다녀간 곳은 어땠나요? “ 라며 문자 하나가 도착해 있다.

방문을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도움되는 리뷰를 남겨 달라고 부탁을 한다.

오늘 내가 운전 중 전화를 얼마나 한 것까지 다 알고 이야기해 준다.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이 느낌.

이건 분명 기계인데, 사람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AI는 이제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

식당에선 로봇이 음식을 서빙하고, 키오스크에서 주문과 결재를 하고,

집에선 로봇청소기가 구석구석을 닦는다. 걸레를 헹구고 물을 갈고..

사람이 하던 모든 수고를 말끔하게 대신해 준다

편리하다. 정말 편리하다. 그런데 그 편리함 속에서 ‘나 ’라는 존재가 조금씩 흐려지는

느낌을 받는다.


1762년 ,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람과 함께, 사람 가운데서 살아야 한다. “고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사람보다 AI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화를 나누고,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심지어 외로움까지도 달랜다.

AI는 점점 더 사람을 닮아가고, 우리는 점점 더 AI를 닮아가는 것 같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검색하지 않아도 되고, 고만하지 않아도 되니

점점 내 머리도 마음도 게을러 지고 느려지는 것 같다.


우리는 앞으로 AI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건 피할 수 없는 길이고 미래이다

하지만 AI 가 아무리 나를 잘 안다고 해도 내 삶을 결을 대신 살아 줄 순 없다.

나만의 글쓰기 문장을, 나의 영혼의 호흡을, 내 내면 깊은 곳의 의식과 망설임등

작은 실수들은 대신 느껴줄 수는 없다.


우리가 수많은 편리함의 시대에 산다 해도 내가 ‘ 나’ 일 수 있는 무언가를 붙들고 싶다.

천천히 가더라도, 서툴더라도 직접 쓰고, 말하고, 느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게 사람이니까

그게 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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