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썼다. 토닥토닥
유월의 어느 여름날!
공대에 입학한 둘째 딸이 공학수학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힘들다고 할 때 남편은 그럼 “시간 될 때마다 공부를 봐줄게“ㅡ남편은 이과전공자라
얘기를 했고, 그날도 학교 근처 식당에서 딸과 만나 1시간가량 공부를 봐 주었다
점심으로 돼지갈비와 냉면을 함께 먹고, 딸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우리는 집에 돌아와 잠시 쉬고는 저녁에 야외음악회가 있어 음악회에 다녀왔다.
간식으로 옥수수도 먹으며 즐겁게 음악회를 잘 본 뒤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이들 등교가 있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소위 아침형이고, 남편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관계로 편안하게 우린 각 자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녁
곤히 자고 있는 내 귀에서 모기가 웽웽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서 일어나서 보니, 팔에는 모기가 세 군데나 물어 가려웠고,
나는 벌레물약을 가지러 약장서랍이 있는 남편이 자고 있는 방으로 갔다.
캄캄한 밤에 방 불도 켜지 않고 조심조심 더듬거리며 약을 찾아서 나오려고 돌아서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남편의 침대를 쳐다보니 어둠 속에서 비슴듬이 누운채 숨소리가 이상했다.
나는 “당신 안 자요? 왜 그러구 있어요? 라고 물었고, 그 순간 남편은 작은 소리로 막내를 깨우라고 한 뒤 그대로 쓰러졌다.
모든 건 찰나였다.
나는 막내를 깨우고 119를 부르고 남편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얘기할 때 남편이 한 그 한마디는 지금도 선명하다.
“자기야 사랑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 이후의 일들은 지금도 생각이 잘 안 난다.
돌아가든 필름이 잠시 끊긴 듯이..
새벽시간이었고 대학병원과는 집에서 가까운 거리이고, 그리 지체한 시간도 아니었던것 같은데 병원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은 뇌사상태로 중환자실이 입원을 하게 되었고 온갖 기계들을 몸에 달고 붙이며 치료에 들어 갔다.
그날 이후의 우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고, 너무나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다.
할 수 있는 모든치료를 시도하며 회복의 기적을 바랬지만 회복의 가능성은 희박했다.
, 한 달 넘게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는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렇게 남편은 뇌사상태인 채로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그곳 병원에서 10여 개월간 버티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때부터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세 아이를 건사하며 살아가야 했다.
대학교 다니는 두 아이와 늦둥이 중학생인 막내딸을
잘 키우고 지키는게 나에겐 주어진 가장 큰 숙제였다. 내가 무너지면 안된다며 눈물도 슬픔도 삼키며 남겨진 일들을
수습해야했다.
그 전에 우리에게 천사가 나타났다.
남편의 큰집 ( 큰 아버지. 시아버님의 형님) 형님네가 서울에서 전문학교를 운영하는 재단의 이사장님 셨다.
남편이 쓰러져 병원에 누워 있던 시기에 어머님이 췌장암 말기로 돌아가셨고, 시어머님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동안에 서울 큰 형님내외분이 오셨고,그때
남편의 상태와 우리 집의 사정을 보시고는 너무 가슴 아파하시며 말씀하셨다.
대학 다니는 조카들 ㅡ우리 아이들 ㅡ대학등록금과 남편의 병원비를 지원해 주시겠다고 하셨고,
말씀하신 대로 남편이 돌아갈 때까지 병원비 일체와 아이들 대학졸업 때까지의 학비를 부담해 주셨다.
그 어떤것 보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베풂은 결코 돈이 많다고 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때 큰 형님 내외분의 그 큰 배려가 없었다면 내가 짊어져야 할 경제적인 많은 부분에서 굉장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형님내외분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셨고, 난 가톨릭신자이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받은 큰 나눔, 베풂의 실천을 형님내외분은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우리 가족들에게 실천하셨고,
지금까지도 그것에 대한 생식이나 일체의 얘기를 지금껏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다.
가끔 안부 전화드리면 형님께서는 나와 아이들이 그저 편안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고만 하신다.
우리는 살면서 예상하지 못하는 갖가지 일들을 마주하게 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의 작은 도움의 손길, 따뜻한 격려의 말들이
힘든 절망의 시간들을 잘 견디어 내고 지나갈 수 있는 힘이된다.
그동안 힘든 과정 잘 지내왔고,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 몫을 해내며 지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베풂을 다른 어려운 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내 주어진 역량 안에서 도와주라고 항상 얘기한다.
나 또한 내 처지안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베풀며 살아 가고자 한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당신은 없지만 내가 아이들 잘 키우고 잘 지낼테니 우리 너무 걱정하지말고 당신은 그곳에서 편안하게 지내라고,
내가 잘 하겠다고 한 약속 끝까지 지킬게.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지난 일상의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들이 그립고 또 그립지만 지난 시간들은 지나간 시간대로 소중히 기억하며 잘 지내다가
나중에 우리 만나요.
만나게 되면
당신 그동안 애 많이 썼다고 토닥토닥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