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다거(喫茶去):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

숫자의 유령을 베고 앉아, 비로소 나를 대접하는 고요한 시간

by 하노이별

1. 돋보기 너머의 신대륙, 브런치라는 낯선 놀이터

수십 년간 경리 부장으로 쉴 새 없이 돌아가던 톱니바퀴에서 툭 떨어져 나온 뒤, 내게 남겨진 거실 소파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외딴섬 같았다. 평생 출근 시간에 맞춰져 있던 징그러운 습관은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내 눈을 번쩍 띄워놓았다. 다시 눈을 붙이려 이리저리 뒤척여봐도 야속하게 정신만 더욱 또렷해졌다.


서둘러 씻고 나설 곳도 없는데, 수십 년 길들여진 몸뚱이는 자꾸만 지금 일어나 움직여야 한다고 나를 이불 밖으로 떠밀었다. 쫓기듯 거실로 나왔지만, 이미 반듯하게 치워진 공간엔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먼지 하나 없는 식탁을 괜히 행주로 한 번 더 훔쳐보고, 베란다 창너머로 종종걸음 치며 출근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몸은 바쁘게 움직이라고 재촉하니, 갈 곳 잃은 발걸음만 좁은 거실을 허둥지둥 맴돌았다.


오전 8시 25분, 습관처럼 TV를 켜면 어김없이 '아침마당' 시그널 음악이 무심히 흘러나왔다. 베란다로 나가 화분의 마른 잎을 떼어내고, 발치에서 하품하는 네 살배기 고양이 턱을 한참 긁어주었는데도 시계는 고작 오전 10시.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도 헐렁해서 숨이 턱턱 막혀왔다.


다 키운 자식들은 제 살길 찾아 떠나고 적막만 남은 거실. 째깍거리는 벽시계 초침 소리만 유난히 크게 울리는 이곳에 덩그러니 앉아 있노라면, 치열했던 내 65년 세월이 마치 장롱 구석에 처박힌 철 지난 외투처럼 퀴퀴하게 버려진 기분이었다. 이대로 속절없이 시들어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나, 동네 주민센터를 기웃거리며 수채화 교실이니 요가 수업이니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이름을 올려봤지만 영 신통찮았다. 시간을 때우려 억지로 나간 그곳에서도 내 영혼은 지독하게 심심했다.


어린 시절, 나는 나름 문학소녀였다. 아버지가 전기세 나간다고 매섭게 호통을 치면, 한여름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밤새 문고판 세계전집의 책장을 넘기곤 했다. 나도 오빠나 남동생들처럼 고등학교 교복을 한 번 입어보고 싶다고 생떼를 써보았지만,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딸인 내겐 겨우 중학교 문턱을 넘는 것만 허락했다. 그리곤 매캐한 먼지가 날리는 미싱 공장으로 가차 없이 내 등을 떠밀었다.


재봉틀을 쉼 없이 돌려 번 돈으로 남자 형제들의 대학 등록금을 대면서도, 내 안의 활자를 향한 지독한 갈증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기름때 묻은 손을 씻고 밤마다 야학을 다녀 기어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냈고, 결혼 후 둘째를 유치원에 보내고서야 그토록 원하던 방송통신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해 문학의 끄트머리라도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먹고사는 일 앞에서 시나 소설은 한낱 우아하고 배부른 사치였다. 대신 1원 한 푼 틀리지 않는 차갑고 빈틈없는 계산만을 요구했다. 그렇게 나는 평생을 메마른 숫자에 파묻힌 채, 사촌 형부 회사의 장부나 맞추는 경리 부장으로 늙어갔다.


'내 인생도 참 치열하고 뜨거웠는데. 이대로 조용히 잊히기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밑줄을 긋던 그 시절의 억울한 문장들이 내 안에 너무 많이 고여 있는데….'


그러던 중 문화센터 시 쓰는 강좌에서 '브런치스토리'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독수리 타법으로 더듬더듬 자판을 두드리는 육십 넘은 중늙은이에게, 이 세련된 플랫폼은 낯설지만 가슴 뛰는 신대륙이었다.


몇 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가슴을 졸이던 작가 신청 심사가 통과되었다. "청량산 날다람쥐 작가님, 브런치 작가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라는 문자를 받던 날, 나는 쿵덕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몇 번이나 돋보기를 벗고 눈을 비볐다. 그리고 텅 빈 작가 소개란에는 한참을 고민하다 이렇게 적어 넣었다.


"독수리 타자로 꾹꾹 찍어 누릅니다. 멋 부릴 줄 모르고 내 식대로 펄떡이며 씁니다. 돋보기 낀 날다람쥐가 맘대로 주워 담은 투박한 도토리 창고입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 따윈 추호도 없는, 거칠고 어설프지만 정직하고 통쾌한 내 첫 선언이었다.


며칠 뒤, 마침내 하얀 모니터 위에 내 글이 처음으로 발행되던 날, 나는 평생 동경해 왔던 '작가님'이라는 그 낯설고도 거룩한 호칭표 앞에 우두커니 멈춰 섰다.


작가(作家). 그것은 내게 하늘의 별처럼 아득하고 숭고한 이름이었다. 겨우 중학교 문턱만 밟아본 주제에, 평생 매캐한 공장에서 미싱을 돌리고 남의 회사 장부나 뒤적이던 늙은 경리 부장이 언감생심 감히 품어볼 수조차 없는 성역과도 같았다. 그런 내게 이 눈부신 왕관이 씌워지다니.


활자를 향한 오랜 갈망이 마침내 이루어졌다는 황송함과 경외감이 벅차게 밀려오는 동시에, 내 누추한 삶에 감히 이 찬란한 호칭이 어울리기나 하는지, 마치 남의 비단옷을 훔쳐 입은 듯 어색하고 부끄러워 두 손이 다 덜덜 떨렸다. 나는 화면 속 그 무겁고도 황홀한 '청량산 날다람쥐 작가님'이란 글자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나는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을 타놓고 밤이 늦도록 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남들에게 평가받으려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낡은 일기장 속 먼지 쌓인 내 청춘과 미싱 공장의 매캐한 공기, 그리고 평생 주판알을 튕기던 밥벌이의 고단함을 내 손으로 정갈하게 닦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가슴 한구석이 뜨끈해지는 참으로 다정한 해방구였다.


2. 하트 15개의 초라함, ‘새로고침’의 지옥

나는 매일 밤 모니터 앞에 앉아 묻어두었던 내 삶의 조각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갔다. 야학에서 만난 남편과의 가난하지만 뜨거웠던 연애 시절의 기억,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나 차가운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선을 넘나들던 첫째를 유리창 너머로 지켜보며 피눈물을 삼켰던 시간들을 조심스레 쏟아냈다.


그렇게 위태롭던 핏덩이가 기적처럼 자라, 생후 일곱 달째 붉은 잇몸을 뚫고 하얀 앞니 네 개가 앙증맞게 돋아났을 때 느꼈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벅찬 기쁨. 초등학교 1학년 가을 운동회 계주에서, 3등으로 바통을 이어받은 녀석이 얼굴이 터질 듯 악을 쓰며 뛰어 기어코 1등으로 결승선 테이프를 끊었을 때 왈칵 끌어안고 울었던 그 눈부신 환희의 순간들도 빠짐없이 활자로 옮겼다.


평생 차가운 영수증과 장부의 숫자만 들여다보던 내 거친 손끝에서, 나의 진짜 인생이 어설프지만 따뜻한 이야기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애틋하고 순박했던 기록의 시간이 달포쯤 흘렀을까. 하지만 나의 그 무해하고 가슴 뛰던 설렘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잔인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플랫폼의 생리가 눈에 뜨이고 다른 이들의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보이지 않던 '숫자'들이 독침처럼 내 노년을 찌르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브런치 앱의 종 모양에 초록색 알림이 뜨지 않았나 '새로고침'을 누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대단한 인정이나 찬사를 바라고 쓴 글은 분명 아니었다. 하지만 거짓 없이 쏟아낸 내 묵직한 진짜 인생에 비해, 모니터 너머의 반응은 너무나도 가볍고 냉담했다. 투박하게 펄떡이는 그 문장들 밑에는 야박하게 찍힌 '라이킷(하트)' 15개가 전부였다.


그런데 저 멀리 메인 화면에 걸린 앳된 작가의 '입사 1년 차 퇴사기'나 '감성 카페 투어' 같은 글에는 하트가 무려 300개씩 무더기로 박혀 있었고, 댓글 창은 응원금과 찬사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화려하고 폭력적인 지표들 앞에서, 죽을힘을 다해 아이를 살려내고 30년 넘게 가족을 먹여 살리며 아등바등 버텨온 내 눈물겨운 60여 년 인생은 한순간에 '아무도 클릭하지 않는 노인네의 쉰내 나는 넋두리'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이렇게 끙끙대며 내 심장을 꺼내 쓰는데 팔로워도 라이킷도 왜 안 오르지?", "저 젊은 작가는 무슨 요술을 부리기에 저리 잘 나가는 걸까?"


거칠고 꾸밈없이 내 글을 쓰겠다던 당당함은 산산조각 났고, 나잇값도 못 하는 유치한 질투와 조급함이 맹독처럼 퍼졌다. 내 삶의 그 거룩하고 경이로웠던 가치가 남들이 가볍게 꾹 누른 하트 개수에 난도질당하며, 비로소 나다웠던 활자의 색깔도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3. 조회수의 노예, 타인의 시선을 구걸하는 꼭두각시

그때부터 나는 완전히 길을 잃었다. 수시로 들여다보던 내 스마트폰 화면과 유튜브 알고리즘은 어느새 '조회수 터지는 제목 짓는 법', '브런치에서 라이킷 많이 받는 필살기' 같은 얄팍하고 자극적인 비법들로 도배되었다. 브런치에서도 남의 눈길 끄는 요령을 늘어놓는 작가들만 줄줄이 팔로잉하고 있었다.


나는 돋보기를 추켜올리고 노트에 그 요령들을 주야장천 메모하며 라이킷 순의 최상단 인기 작가들의 글을 스토킹 하듯 따라 읽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내 인생의 핍진하고 진솔한 이야기들은 트렌드에 안 맞는 촌스러운 넋두리라며 스스로 휴지통에 처박아 버렸다.


프로필 소개글에 당당히 적어두었던 "멋 부릴 줄 모르고 내 식대로 펄떡이며 쓴다"는 다짐은 온데간데없어졌다. 대신, 남들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낚아채려고 내 삶을 과장하고, 있지도 않은 깨달음을 억지로 쥐어짜 내며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조미료를 팍팍 쳐댔다. 투박한 도토리 대신, 남들이 좋아할 만한 번들거리는 가짜 열매만 잔뜩 주워 담고 있는 꼴이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던 내 진짜 이야기는 차갑게 증발해 버렸다. 그 빈자리에 라이킷이 많은 남의 죽은 문장들을 주워와 억지로 기워 붙이다 보니 글은 점점 기괴해져 갔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이 흉측한 변질을 두고, 내 문장의 완성도를 높여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필력 수련'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철저히 기만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인기 글마다 박혀 있는 세련되고 화려한 삽화들이 못내 부러웠다. 투박한 글만 덩그러니 놓인 내 화면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결국 유튜브를 뒤져 'AI로 이미지 만들기' 같은 강의를 주워 들었다. 젊은 강사가 화면에서 시키는 대로 더듬더듬 낯선 영어 단어들을 쳐가며 이미지를 생성해 보았다.


그런데 화면 속에 튀어나온 결과물은 기가 막혔다. 내가 원했던 따뜻한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 발치에서 둥글게 몸을 말고 자는 우리 집 고양이의 귀여운 온기를 바랐건만, 모니터 속에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기괴한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따뜻한 봄날 커피를 마시는 여유로운 카페의 오후 풍경을 의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커피잔을 쥔 사람의 손가락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어처구니없는 이미지들만 쏟아졌다. 인기 작가의 글마다 들어간 그 번지르르한 그림 하나를 어떻게든 건져보겠다고, 나는 반나절 넘게 눈이 빠져라 모니터 앞을 파고들며 끙끙댔다.


글의 본질을 깎고 다듬어 내 진심의 한 문장을 써 내려가야 할 귀한 시간에, 나는 AI가 만들어낸 오류투성이 그림과 남의 시선을 구걸하는 포장지 작업에만 온종일 매달려 헛심을 빼고 있었던 것이다.


글을 발행하고 나면 10분에 한 번씩 앱을 켜서 통계 창을 훔쳐봤다. 숫자가 안 오르면 우울해서 밥맛도 없었고, 하트가 하나 달리면 세상을 다 가진 듯 들떴다.


남의 글을 이곳저곳에서 베껴다 누더기처럼 기워 붙이고, 다리 여섯 개 달린 고양이 그림과 한참을 씨름하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까만 모니터 화면에 낯선 내 얼굴이 비쳤다. 거기엔 평생을 꼿꼿하고 정직하게 밥벌이를 해왔다고 자부하던 어른은 온데간데없고, 타인의 시선을 구걸하며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낯설고 초라한 꼭두각시가 서 있었다.


산등성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날다람쥐는 온데간데없고, 조회수라는 거대한 쳇바퀴 안에서 눈을 까집고 달리는 가엾은 실험용 쥐 한 마리만 남아있었다. 평생을 남의 회사 장부 숫자들에 시달리다 간신히 내 마음 하나 편히 뉘일 곳을 찾았건만, 늘그막에 제 발로 '조회수'라는 더 지독하고 얄팍한 새 장부 속에 나 자신을 옭아매고 만 것이다.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온 이름 모를 이들의 알량한 하트 몇 개를 더 얻어보겠다고, 내 65년의 눈물겨운 진짜 삶을 내 손으로 모독하고 있었다. 그 징그러운 종속성에 뒷덜미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나는 숨이 턱 막혀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4. 1,200년 전의 서릿발 같은 호통, 끽다거(喫茶去)

기괴한 화면을 끄고 마주한 새벽, 답답한 마음에 서재 구석에 꽂힌 낡은 책 한 권을 무심코 빼들었다. 늦깎이로 입학했던 방통대 시절, 자를 대고 반듯하게 밑줄을 긋고 여백마다 깨알같이 강의 내용을 메모해 두었던 수업 교재였다. 누렇게 바랜 책장을 넘기다, 문득 그 시절 중간고사 시험문제로 지독하게 파고들었던 선문답 하나가 불현듯 눈에 박혔다.


한여름 이불을 뒤집어쓰고 책을 읽던 가난했던 문학소녀가 기어이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치열하게 써 내려간 흔적들이었다. 낮에는 경리실 장부의 빡빡한 숫자에 시달리고 저녁엔 아이들 건사하느라 파김치가 되면서도, 밤이면 고요히 홀로 남아 활자를 구원처럼 붙들고 꿈을 지켜내던 그 고단하고도 벅찬 시절의 풍경이 왈칵 쏟아졌다.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오직 내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문장을 보석처럼 쓰다듬던 그때의 내가, 고작 하트 몇 개에 눈멀어 글을 난도질하는 지금의 나를 매섭게 꾸짖는 듯해 가슴이 뜨끔했다. 부끄러움에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다 시선이 멈춘 곳은 1,200년 전의 서릿발 같은 죽비 소리, 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일화였다.


趙州問新到僧 曾到此間麼, 僧云 曾到, 州云 喫茶去.

又問僧 曾到此間麼, 僧云 不曾到, 州云 喫茶去.

院主問 爲甚麼曾到也云喫茶去 不曾到也云喫茶去.

州呼 院主, 院主應諾, 州云 喫茶去.


조주 선사가 새로 온 승려에게 물었다. "자네,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가?"

승려가 답했다. "네, 예전에 와본 적이 있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그래? 그럼 저기 가서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


선사가 다른 승려에게 물었다. "자네는 와본 적이 있는가?"

"아닙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선사는 똑같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자네도 가서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


곁에서 지켜보던 절의 원주(관리인)가 황당하다는 듯 따져 물었다.

"스님! 와본 놈에게도 차를 마시라 하시고, 안 와본 놈에게도 차를 마시라 하시면 어찌합니까?"

그러자 선사가 원주를 빤히 바라보며 벼락같이 일갈했다.

"원주야!"

"예, 스님."

"너도 잔말 말고 가서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


이 선문답의 핵심은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분별심(分別心)'을 경계하는 데 있다. 절의 살림살이와 행정을 맡아보는 원주의 논리에서는 '이전에 와본 적이 있는 사람'과 '처음 온 사람'은 철저히 다르게 대우받아야 마땅했다. 끊임없이 가치를 매기고, 남들에게 쓸모를 증명해야만 대접받는 세속의 합리적인 계산법이다.


하지만 조주 선사는 그런 원주의 얄팍한 분별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선사의 눈에 세상이 쳐주는 지위나 타인의 평가는 모두 머리로 지어낸 부질없는 허상에 불과했다. 남에게 어떻게 비칠지 계산하고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순간, 우리는 결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서 차나 한잔 마시게."


이 말은 겉보기엔 아주 우아하고 고결한, 여유 넘치는 선문답 같지만, 우리네 투박한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한마디로 "가서 냉수 먹고 속이나 차려라!" 하는 매서운 호통이다. 쓸데없이 남의 눈치나 보며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 그 알량한 분별을 단칼에 딱 끊어내라는 것이다.


그 매서운 호통은 남의 눈치나 보며 끊임없이 안팎의 가치를 저울질하던 시끄러운 마음자리를 일순간 텅 비워낸다. 타인의 평가에 전전긍긍하며 잔뜩 들어갔던 어깨의 힘을 툭 풀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 앞에 가만히 마주 앉게 하는 것이다. 마치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듯 청량하게 정신이 맑아진 뒤에야만, 우리는 비로소 굽은 등을 펴고 숨을 고르며 눈앞에 놓인 찻잔의 진짜 온기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칠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한 찻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 우리는 오직 그 쌉싸름한 감각에 머물 뿐,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 혹은 이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계산하지 않는다. 차를 마실 때는 그저 온전히 차를 마시는 것. 끊임없이 재고 따지던 얄팍한 알음알이를 단칼에 끊어내고, 마침내 시비가 멈춘 텅 빈 공성(空性)에 접속하는 것이다. 어지러운 분별의 꼬리를 자르고 도달한 그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청정한 자리야말로,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여실한 진리이다.


1,200년 전 조주 선사의 무심한 그 한마디는, '라이킷'이라는 얄팍한 허상에 갇혀 길을 잃었던 내 정수리를 가차 없이 내리치는 서늘한 죽비였다.


5. 분별심의 쳇바퀴 밖에서 마주한 '본래면목(本來面目)'

그렇다면 조주 선사가 불쑥 내민 그 찻잔을 받아 들고, 나는 과연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끝없이 비교하던 그 시끄러운 '분별심'을 멈춰 세운 자리, 그곳에는 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어지러운 생각의 꼬리가 툭, 하고 끊어진 그 무상무념의 자리. 너와 나를 가르던 경계도, 성공과 실패를 따지며 쉼 없이 굴러가던 얄팍한 계산기마저 멈춰 선 그곳에는 어떠한 위계나 한계도 없는 아득하고 청정한 여백만이 남는다. 잘나고 못남을 저울질하던 잣대조차 하얗게 지워진 이 텅 빈 상태.


세상의 온갖 시선과 비교가 완전히 사라진 그 맑고 끝없는 빈자리. 그것이야말로 남들의 숫자에 때 묻기 전, 내가 태어난 이래 단 한 번도 흐려지거나 오염된 적 없는 나의 진짜 얼굴, 즉 '본래 모습(本來面目)'인 것이다.


분별이 멈춘 이 고요하고 맑은 내 진짜 얼굴을 마주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곳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는지가 비로소 똑똑히 보였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의 쳇바퀴는 참으로 지독하다. 하트를 몇 개 더 받고, 남들보다 더 눈에 띄기 위해 그 쳇바퀴 안에서 아무리 헉헉대며 달려보았자 속도만 빨라질 뿐, 결코 영원한 내 안의 갈증을 해소할 수는 없다.


쳇바퀴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해선 안 된다. 그 숨 막히는 통 안을 빙빙 도는 짓을 멈추고, 과감하게 통 밖으로 발을 빼고 완전히 걸어 나와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통 밖으로 걸어 나와, 맹렬하게 돌아가던 그 쳇바퀴의 소란을 가만히 지켜보는 냉철한 시선. 그것이 바로 조주 선사가 내민 차 한 잔을 마시며 우리가 마침내 도달하게 될 텅 빈 공성(空性)의 자리다.


조주 선사가 1,200년의 세월을 건너 내게 툭 던진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는 그 무심한 한마디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쳇바퀴 안에서 가엾은 실험용 쥐처럼 피투성이가 되도록 달리던 나를 밖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누군가의 '좋아요'가 없어도, 화려한 인공지능의 그림으로 장식하지 않아도, 나는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고 존귀한 존재라는 깨달음.


그 무심하고 따뜻한 위로에 뻣뻣하게 굳어있던 어깨가 탁, 하고 풀렸다. 그제야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빙빙 돌던 그 지독한 쳇바퀴에서 조용히 발을 빼고 내려올 수 있었다. 어지러운 세상의 소음이 잦아들고, 남들과 나를 견주던 날 선 잣대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


그 거추장스러웠던 껍데기들을 다 벗어던지고 나서야, 쳇바퀴 안에서 만신창이가 된 내 진짜 모습이 시리게 다가왔다. 남의 입맛에 맞추겠다며 가장 나다운 이야기들을 스스로 촌스럽다 구박하고, 억지로 가짜 옷을 입히며 내 안을 얼마나 닦달해 왔던가. 남의 시선에 눈이 멀어 나를 가장 매몰차게 홀대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뼈아픈 자각과 함께 비로소 내 마음속 가장 깊고 조용한 방, 누구의 간섭도 없는 나만의 다실(茶室) 문이 열렸다. 그 텅 빈 다실에 가만히 앉아, 나는 비로소 고단했던 나에게 가만히 말을 건넸다.


조회수와 인기 작가들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갓 쪄낸 감자처럼 온기가 남아있던 내 진짜 이야기들을 촌스럽다며 휴지통에 밀어 넣었던 시간들. 남의 매끈한 문장을 흉내 내느라 정직하게 펄떡이던 내 글을 구석에 방치하고 홀대했던 일들이 못내 부끄러워졌다. 세상 누구보다 먼저 내 삶의 문장들을 인정해 주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건만, 나는 남의 시선을 구걸하느라 정작 가장 나다운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나는 맞지도 않는 남의 옷을 억지로 꿰어 입으려다 길을 잃어버린 내 안의 문학소녀에게, 늦었지만 조용한 사과의 손을 내밀었다.


그 오염되지 않은 본래의 맑은 자리에 닻을 내리고 머물 때에만, 비로소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나만의 진짜 이야기, 살아 숨 쉬는 생생한 글쓰기가 터져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거짓된 포장지를 벗어던지고 내 영혼의 맨얼굴을 정직하게 마주하며 건넨, 늦었지만 가장 눈물겹고 뜨거운 화해였다.


6. 숫자의 망령이 깃든 두 번째 장부, 뼈아픈 자각

쳇바퀴 밖으로 한 걸음 물러나 조주 선사의 투박한 찻잔을 마주하고서야, 나는 비로소 나를 갉아먹던 괴물의 진짜 정체를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평생을 남의 회사 경리 부장으로 살며, 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을 1원 단위까지 기어코 맞춰내던 나의 징그러운 '계산'의 습관이었다. 수십 년간 뼈에 새겨진 그 차디찬 숫자의 노예근성이 은퇴 후에도 나를 끈질기게 따라왔던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쥐었던 장부를 간신히 내려놓고서, 나는 예순다섯 늦은 나이에 제 발로 타인의 시선과 '조회수'라는 새로운 장부를 펼쳐 들고 내 삶의 가치를 또다시 뾰족한 숫자로 매기고 있었다.


처음 온 자와 여러 번 온 자를 칼같이 가르고 계산하려 들던 선문답 속 어리석은 원주(관리인)가 바로 나였다. 나는 브런치 세상의 모든 글을 '하트 300개짜리 훌륭한 글'과 '하트 15개짜리 하찮은 글'로 철저하게 가르고 쪼개어 내 마음의 장부에 기입하고 있었다.


인기 작가와 이름 없는 늙은 지망생이라는 급을 나누고 내 60년 인생을 스스로 초라하게 만든 건 플랫폼의 알고리즘도, 브런치 독자들의 무관심도 아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선을 넘던 첫째의 가녀린 숨결, 가을 운동회 계주에서 핏대를 세우며 달리던 그 눈부신 환희의 순간들을, 고작 남들의 가벼운 손가락 클릭 수에 내맡겨버린 내 안의 지독한 '분별심'이었다.


선사는 차가운 모니터 앞에 주저앉은 내게 준엄하게 타이르고 있었다.


"인기가 있든 없든, 남이 하트를 누르든 말든, 네가 이 늘그막에 돋보기를 쓰고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그저 네 치열했던 삶이라는 차를 네 손으로 정성껏 우려내기 위함이 아니더냐!"


조회수와 라이킷이라는 허상의 스위치를 끄고 나자, 그제야 돋보기안경 너머로 자판 위에 올려진 내 두 손이 제대로 보였다. 미싱 공장에서 바늘에 찔려가며 형제들 학비를 벌고, 수십 년간 영수증 더미와 씨름하느라 마디가 굵어지고 거뭇한 검버섯이 핀 두 손. 이 투박하고 억척스러운 손으로 65년의 험난한 파도를 거침없이 헤쳐 오며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거짓 없이 살아내지 않았던가.


젊은 인기 작가들에게는 그들만의 경쾌한 속도가 있고, 예순다섯의 내게는 나만의 묵직한 보폭이 있는 법이다. 그 당연한 이치를 잊은 채, 남의 뜰에 피어난 화려한 봄꽃에 정신이 팔려 내 삶이 붉게 빚어낸 단아한 단풍을 스스로 초라하게 여겼다.


꽃은 찬란하게 터져 오르는 그 생기 자체로 눈부시게 아름답고, 단풍은 모진 비바람을 견뎌내고 묵묵히 제 색을 물들였기에 더없이 깊고 아름답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나는 나 나름대로 각자의 계절 안에서 이미 온전하게 빛나고 있음을 이제야 기꺼이 긍정하게 된다. 남과 나를 견주던 조급함을 내려놓은 마음자리에, 비로소 어떤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내 삶의 고요한 축이 마음 한가운데에 넉넉하게 차올랐다.


굳이 남들의 환호라는 달콤하고 변덕스러운 시럽을 들이붓지 않아도, 내 인생은 이미 그 자체로 떫고도 깊게 우려진 진한 차 한 잔이었다. 타인의 인정이라는 가짜 장부를 덮고, 억지로 만들어낸 기괴한 고양이 그림을 화면에서 지워버렸다. 그러자 텅 빈 책상 위로, 세상 어떤 베스트셀러보다 존귀한 내 진짜 인생의 맨얼굴(本來面目)이 비로소 맑게 떠오르고 있었다.


7. 숫자의 감옥을 부수고 나를 대접하는 고요한 다실(茶室)

나는 책상 위에서 쉴 새 없이 알림을 울려대던 스마트폰을 미련 없이 뒤집어엎었다. 즐겨찾기 폴더에 빼곡하게 모아두었던 '조회수 올리는 꼼수' 글들과 자극적인 썸네일 작성법들을 모조리 휴지통에 처넣고 영구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뻣뻣해진 허리를 펴고 부엌으로 가, 가스레인지 위에 낡은 주전자를 올렸다.


'치익' 하고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텅 빈 거실의 정적을 따스하게 깨웠다. 아끼던 머그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녹차 티백을 담그자, 구수하고 쌉싸름한 향기가 숫자에 쫓겨 헐떡이던 내 숨통을 평온하게 틔워주었다.


하트가 15개면 어떻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으면 또 어떠랴. 조주 선사의 찻잔 앞에서는 수십만 명을 거느린 유명 작가나, 이제 막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더듬거리는 예순의 노인이나 똑같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받을 뿐이다. 남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쥐어짜 낸 가짜 글이 아니라, 내 삶의 쓴맛과 단맛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갈 수 있다면 이 낡은 거실 책상이야말로 내 영혼의 가장 완벽한 다실(茶室)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자, 굳어있던 마음에 기분 좋은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에게 갈채를 받기 위한 화려한 공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60년 세월 동안 뽀얗게 먼지 앉은 내 지나온 삶의 테이블을 정성껏 닦아내고, 묵묵히 그 모진 풍파를 견뎌온 나 자신에게 기꺼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주는 지극히 애틋하고 정갈한 의식이다.


인기 작가들의 화려한 봄꽃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돋보기를 낀 초짜 작가의 서툰 문장이면 또 어떤가. 내 삶은 이미 단풍처럼 붉게 타오르던 시간도 지나, 이제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잎을 떨구며 기꺼이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담담한 의연함에 닿아 있다.


조주 선사가 들이민 그 무심한 찻잔, 분별심을 멈춰 세운 그 자리에 비로소 어떤 숫자의 무게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空)'의 다실이 내 마음에 고요히 차려졌다. 타인의 잣대와 얄팍한 계산을 남김없이 비워낸 이 텅 빈 공간은 결코 차갑고 메마른 진공 상태가 아니다.


조바심과 인정 욕구가 빠져나간 그 홀가분한 자리에는, 도리어 뭉근한 온기와 한없이 너그러운 충만함이 부드럽게 차오른다. 남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뻣뻣한 힘을 내려놓자 마음은 물 흐르듯 유연해졌고, 어떤 평가에도 기웃거리지 않는 서늘한 초연함을 얻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눈부시고 고요한 비워짐 안에서, 평생 숫자 밑에 억눌려 있던 내 안의 생명력이 마르지 않는 깊은 우물처럼 소리 없이 힘 있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 삶의 초라한 상처마저도 기꺼이 품어 안고, 그 어떤 이야기든 거창한 꾸밈없이 내 생긴 모습 그대로 툭툭 던져놓을 수 있는 단단한 바탕이 된 것이다.


조회수에 짓눌려 헐떡이던 늙은 광대는 이 따뜻한 찻잔 속에서 완전히 죽었다. 그리고 덩달아 하늘의 별이라도 되는 양 숭배했던 '작가'라는 그 거창한 환상도 미련 없이 박살 냈다.


작가가 뭐 별 건가. 덜덜 떨며 떠받들어야 할 숭고한 성역? 가만히 내 속을 들여다보니 그 밑바닥엔 지독한 탐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편하게 앉아 자판 몇 번 두드려 돈과 명성, 환호는 물론 알량한 지적 우월감까지 통째로 움켜쥐겠다는 속셈 말이다. 돌이켜보면 재벌 총수나 당대 최고의 K-POP 스타가 되고 싶다는 세속적인 욕심은 차라리 솔직하기나 하다. 고상한 활자 뒤에 숨어 '지식인'이라는 완장까지 슬쩍 차려했으니, 내 안의 이 얄팍한 심보야말로 참으로 염치없고 징그러운 위선이었다.


나는 내 안 깊숙이 숨어있던 이 탐욕스러운 지적 허영의 덩어리마저 남김없이 꺼내어, 조주 선사의 이 따뜻한 찻잔 속에 툭 빠뜨려 저 먼 우주로 미련 없이 떠나보낸다.


8. 다시 찾은 하얀 모니터, 날다람쥐의 펄떡이는 놀이터

그 시꺼먼 찌꺼기마저 스르르 녹아내린 찻잔 앞에는 다시 평온한 틈이 열린다. 대단한 철학이나 번지르르한 수식어가 없어도, 매일매일 이어지는 촌스럽고 끈적한 내 일상을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언어로 거침없고 당당하게 꾸려나갈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작가 아니겠는가.


타인의 잣대라는 족쇄를 끊어내고 나니, 지긋지긋한 숫자에 짓눌려 지옥 같았던 이 하얀 모니터가 비로소 막혔던 내 숨통을 틔워주는 다정한 '놀이터'로 온전히 되돌아왔다. 그제야 처음 이곳에 가입하며 지었던 '청량산 날다람쥐'라는 유치하고 쾌활한 필명이 얼마나 뼈 있는 우연이었는지 깨닫는다.


주어와 술어가 좀 안 맞으면 또 어떠랴. 내 삶의 장부를 남의 눈치가 아니라 내 방식대로 정직하게 적어 내려가면 그만일 뿐이다. 이제 나는 가짜 숫자에 오염되지 않은 이 고마운 놀이터에서, 내 이름 '날다람쥐'처럼 누구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펄떡이며 마음껏 뛰어놀 것이다.


나는 찻잔을 들고 다시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돋보기를 고쳐 쓴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알량한 재주 넘기는 마침내 끝났다. 미싱 공장의 매캐한 먼지와 회사 장부의 차가운 숫자를 넘어, 기어코 따뜻하고 향긋한 활자의 세계로 돌아온 늙은 문학소녀. 처음 브런치 스토리에 내 삶의 조각을 띄워놓고 벅차오르던 그날의 꾸밈없는 진심만을 남긴 채, 이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손님인 나 자신에게 대접할 묵직하고도 진실한 내 진짜 인생의 첫 문장을 다시 쓰려한다.


숫자에 쫄아 있는 척, 예쁜 척하는 글은 때려치웠습니다.

이불속 문학소녀가 돋보기를 썼으니 눈치 볼 게 뭡니까.

청량산 날다람쥐의 닉값처럼 제멋대로 펄떡대는 진짜 내 숨소리나 투박하게 툭툭 뱉어볼랍니다.


"자,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저 푹 우려낸 차나 한잔 마시고 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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