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엄격죽(香嚴擊竹): '딱!' 소리에 진짜 나를 깨닫다

스마트폰 액정이 깨지던 날, 비로소 나의 고요한 세상이 열렸다

by 하노이별

1. 광장의 전사, 태극기와 성조기의 바다에서

내 나이 일흔둘. 지하철 무임승차 카드를 찍을 때마다 울리는 경쾌한 신호음은, 세상에서 한물간 늙은이라고 낙인찍는 서늘한 경고음처럼 들렸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무얼 하며 하루를 보내나' 멍하니 한참을 앉아있는 시간은, 무력하게 늙어가는 내 삶을 더더욱 견디기 힘들게 했다. 평생을 가족 건사하느라 뼈 빠지게 일했지만, 은퇴 후 내게 남은 것은 텅 빈 거실과 훌쩍 커버려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자식들의 데면데면함뿐이었다.


사실 나는 그저 평범하고 배운 거 없는 촌부 무지랭이가 아니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잿빛 시절에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굴지의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하기까지, 이 나라 산업화의 최선봉에서 내 손으로 직접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다는 거대한 자부심이 평생 내 척추를 꼿꼿하게 지탱해 왔다.


하지만 은퇴 후의 현실은 참담했다.


아내가 죽은 후, 어쩌다 동거인이 된 마흔을 훌쩍 넘은 미혼인 맏딸과 함께 살고 있다. 예술을 한답시고 내 재력에 기생하면서도 늙은 애비를 가르치려 드는 녀석과의 저녁 식탁은 매일이 전쟁터였다. 딸년은 내게 '가짜 뉴스에 포박당한 고집불통 노인네'라며 짜증을 냈고, 내 눈에 그 녀석은 제 밥그릇 하나 못 채우면서 나라 망치는 소리나 늘어놓는 위선적이고 싸가지 없는 '종북좌파'일뿐이었다. 내가 평생 피땀 흘려 세워둔 성공의 잣대와 산업역군으로서의 명예는, 가장 가까운 핏줄의 차가운 비웃음 속에 매일 밤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집 밖으로 나가면 세상의 취급은 더 가혹했다.


요즘은 식당에서 내 돈 내고 밥 한 끼 사 먹기도 참 서럽고, 더럽게 힘들다. 죄다 '키오스크'인지 뭔지 번쩍거리는 기계만 덩그러니 세워놔서, 당최 뭘 어떻게 눌러야 할지 몰라 그 앞에 서면 식은땀을 줄줄 흘린다. 참다못해 "이보쇼!" 하고 큰소리로 직원을 부르면, 내 손녀뻘도 안 되는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온다. 귀찮음이 뚝뚝 흐르는 표정으로 "여기, 이렇게, 이거 누르시면 되고요" 하며 친절한 것도, 그렇다고 대놓고 불친절한 것도 아닌 그 묘한 태도로 쌩하니, 순댓국 한 그릇을 주문해 주고 돌아간다.


그럴 때면 내 등 뒤로 '이런 것도 혼자 못 하면 그냥 집에나 틀어박혀 있지 왜 기어 나와서 민폐냐'는 세상의 싸늘한 눈초리가 비수처럼 꽂히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없던 이 잿더미 나라를 맨땅에서부터 멱살 쥐고 끌어올린 게 대체 누군데! 주둥이로만 민주화니 인권이니 떠들어대고, 내가 사우디 모래알을 씹으며 지어 올린 선진국에 태어나 뱃가죽이 등짝에 붙는 굶주림 따윈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배부른 것들이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든다. 내 청춘을 뼈째로 갈아 넣어 쌓아 올린 피땀 어린 노고를 한낱 적폐나 쓰레기 취급하며 기어코 훈계질하려 드는 이 오만방자한 세상을 향해, 단전에서부터 시뻘건 분노가 뭉근히 끓어올랐다.


이토록 철저하게 집 안팎으로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며 서서히 말라죽어가던 내 쪼그라든 심장에 다시 뜨거운 피를 돌게 한 곳은, 다름 아닌 광화문 아스팔트 광장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딸에게 무시당하고 순댓국 하나 혼자 주문하지 못해 눈치 보는 뒷방 늙은이가 아니었다. 한 손에는 태극기를, 다른 한 손에는 성조기를 거머쥐고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칠 때면, 나는 나라를 구하는 구국의 전사였고 역사의 중심에 선 애국자였다.


내 옆에는 나와 똑같이 분노하고 똑같이 열광하는 수백 명의 동지들이 있었다. 우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비장한 군가에 맞춰 눈물을 흘렸고, 우리가 믿는 지도자가 부당한 탄핵의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이 나라를 위대하게 이끌어 줄 것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광장의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내 초라한 노년은 비로소 거룩한 의미를 부여받고 있었다.


2. 알고리즘의 밀실, 확증편향이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

집으로 돌아오면 나의 투쟁은 6인치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유튜브를 켜면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굳게 믿고 있는 진실만을 융단폭격처럼 쏟아내는 수십 개의 채널들이 밤낮없이 돌아갔다. 화면 속의 유튜버들은 침을 튀기며 세상의 숨겨진 음모와 다가올 승리의 날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선포했다.


나는 지난 총선이 종북 세력에 의해 조작된 완벽한 부정선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기에 전임 대통령이 내렸던 계엄령, 아니 그 위대한 '계몽령'은 썩어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한 지당하고도 구국적인 결단이라 생각했다. 유튜브가 전해주는 물밑의 진실들은 매일같이 내 피를 뜨겁게 끓게 했다. 선관위에 잠입해 있던 중국 간첩놈들이 이미 일망타진되어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압송되었다는 통쾌한 낭보도 들려왔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극비리에 미 항공모함을 파견해 저 시건방진 범죄자 야당 대표와 빨갱이들을 모조리 잡아갈 것이며,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우리 대통령을 당장 풀어줄 것이라 했다. 당연히 헌법재판소에서도 이 말도 안 되는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할 것이라 우리는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와 내 주위의 동지들은 단톡방에 그 영상들을 수백 번씩 퍼 나르며 승리의 날이 머지않았다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 작은 화면 속은 바깥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된 우리만의 견고한 밀실이었다. 우리는 철저히 담을 쌓은 채 입맛에 맞는 말들만 골라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끼리끼리 모여 서로의 이야기에 열렬히 맞장구를 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은 한 치의 의심조차 허용하지 않는 완벽하고 단단한 진실이 되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밤, 우리만의 굳건한 신념의 성벽을 더 높게 쌓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창밖의 현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탄핵은 기각되지 않았고, 미 항공모함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서초동 법원 앞에서 목이 터져라 무죄를 기원했건만 결국 전 대통령에게는 무기징역 판결이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굳게 믿고 있는 진실과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하나도 맞지 않고 무참히 어그러져 있는 상황. 이 끔찍한 부조화가 이따금씩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 때면, 나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과 불안감에 숨이 막혀왔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 거룩한 투쟁을 포기할 수 없었다. 당장 오늘 내가 틀어놓은 유튜브 채널에서는 그 불안을 잠재워 줄 또 다른 진실을 부르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흔들리지 마십시오!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드디어 미국 FBI가 직접 나서서 저들의 부정선거 증거를 만천하에 폭로할 것입니다! 이 가짜 현 정부는 그날로 완전히 박살이 날 겁니다!"


그 결연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막혔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했다. 나는 다시 떨리는 손으로 영상의 '좋아요'를 누르고 수십 개의 단톡방에 링크를 공유했다. 당장 눈앞의 현실이 내 신념을 배신하는 것처럼 보일수록, 나는 알고리즘이 빈틈없이 짜놓은 그 완벽하고 견고한 요새 안으로 더욱 깊숙이 몸을 숨겼다.


3. 끝없는 유예, 그리고 쩍쩍 갈라지는 신념의 바닥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대던 저들의 저주와는 달리, 무너진다던 경제는 도리어 코스피 5000을 넘어 6000선까지 뚫을 기세로 무섭게 치솟고 있었다. 게다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판을 단숨에 뒤집어줄 거라던 FBI의 폭로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현 정부의 시간표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갔고, 6월 지방선거에서는 가장 견고한 보수의 텃밭인 대구에서조차 야당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지표들만 쏟아졌다. 그러자 스마트폰 속 유튜버들은 또다시 핏대를 세우며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미국 내부의 딥스테이트 세력이 FBI를 끈질기게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8월 광복절에 맞춰 트럼프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계엄사령부를 세우고 군사재판을 열 것입니다! 여러분, 저 범죄자 종북좌파들과 끝까지 싸우기 위해서는 투쟁 기금이 절실합니다. 당장 슈퍼챗을 쏴주십시오!"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서늘하고도 기분 나쁜 의심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미 항공모함이 온다던 겨울이 지났고, 탄핵이 무효가 될 거라던 봄도 속절없이 지나갔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압송되었다던 중국 간첩 얘기도 어느새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자신들의 예언이 빗나갈 때마다 저들은 교묘하게 날짜를 미루고 더 자극적이고 위험한 적을 만들어내며 쉼 없이 우리의 분노를 부추겼고, 결국 그 끝은 늘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그 6인치 화면 밖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 현실은 너무도 참담했다. 세상은 유튜브 속 예언과는 전혀 다르게 굴러가는데, 나는 매달 연금을 쪼개어 저들의 통장에 돈을 꽂아주며 저들의 배만 불려주는 '거룩한 호구' 노릇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서는 제 앞가림도 못하는 딸에게조차 미치광이 노인네 취급을 받으며 철저히 고립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현실과 신념의 끔찍한 충돌 속에서 인지부조화가 빚어낸 지독한 멀미가 온몸을 덮쳤다. 내가 지난 수개월간 밤을 새워가며 믿고, 퍼 나르고, 아스팔트 위에서 목을 놓아 외쳤던 그 완벽한 구국의 세계가, 실은 저들의 돈벌이를 위해 정교하게 조작된 거대한 사기극은 아니었을까.


할 일 없고 무식한 노인네들이 홍보관이란 곳에 몰려가 점심을 먹고 춤추고 놀다가, 미끼로 제공되는 무료 휴지를 받아 들고는 아이처럼 좋아하다가 결국 뻔한 약팔이 사기꾼에게 속아 수백만 원짜리 원적외선 침대나 옥장판을 덜컥 사들이는 것을 나는 평소 얼마나 비웃었던가.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내 행동은 '배운 지식인'의 진정한 구국 활동이자 애국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극우 유튜버들에게 아낌없이 슈퍼챗을 쏘아댔던 것이다.


과연 나와 그들이 다른 것인가.


실상 나는 햄버거집 키오스크 앞에서도 쩔쩔매는 늙고 초라한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 내 무너진 자존감을 가려줄 '애국자'라는 가짜 완장이 절박하게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유튜브 속의 세상과 내가 발 딛고 선 현실 사이의 간극이 더 이상 어떤 변명으로도 메울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나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든 것은 저 밖의 종북 세력도, 나라를 통째로 공산당에게, 김정은이에게 갖다 바치려는 지금의 여당도, 범죄자 대통령도 아니었다.


조그만 6인치 액정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실체 없는 환상 속의 전쟁을 치르며,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끔찍한 수렁. 그 지독한 수렁을 내 손으로 파고 들어간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 참담한 진실이 목을 서서히 조여오며 나를 벼랑 끝으로 맹렬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4. 아스팔트의 파열음, 향엄격죽(香嚴擊竹)을 마주하다

답답한 마음에 겉옷을 꿰어 입고 무작정 집 밖으로 걸어 나왔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각자의 평범한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만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쟁터에 갇혀있는 거 같았다. 마치 동떨어진 섬에 홀로 남겨져 유령처럼 겉도는 기분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다시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 숨 막히는 혼란과 길을 잃은 듯한 멀미를 달래줄, 아니 내 맹신이 아직 틀리지 않았다고 확인해 줄 유튜브 채널을 다급하게 켰다. 화면 속 유튜버는 여전히 핏대를 세우며 "미국 딥스테이트의 공작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는 더더욱 뭉쳐야 합니다. 흔들리지 말고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시고 투쟁 기금을 힘차게 모아주십시오!"라고 악을 쓰고 있었다.


그 광기 어린 목소리와 후원 계좌번호가 적힌 붉은 자막을 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덜덜 떨리던 내 손가락에서 땀에 전 스마트폰이 쑥 미끄러졌다.


"딱- 찌지직!"


스마트폰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정통으로 부딪히며 액정이 거미줄처럼 박살 나는 소리. 그 날카롭고도 경쾌한 마찰음이 귓가를 찢을 듯 울려 퍼지던 유튜버의 고함을 단숨에 끊어내고 고막을 강타하는 순간,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옛 선사의 이야기 하나가 벼락처럼 내 정수리에 내리 꽂혔다.


一日 芟除草木 偶拋瓦礫 擊竹作聲 忽然省悟


어느 날 (향엄 스님이) 풀과 나무를 베고 치우다가 무심코 던진 기와 조각이 대나무에 부딪혀 '딱' 하는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에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당나라의 승려 향엄 지한(香嚴智閑)은 경전과 교리에 해박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부모가 태어나기 전 너의 참모습(본래면목)이 무엇이냐"는 스승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머리로 쌓은 지식인 '알음알이'로는 결코 삶의 본질적인 진리에 닿을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평생 보던 책과 불경을 모두 불태운다. 그리고 시골의 버려진 절터로 들어가 깨달음조차 포기한 채 마당을 쓰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빗자루에 쓸려 날아간 기와 조각 하나가 대나무에 '딱' 하고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 순간 홀연히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향엄격죽(香嚴擊竹)'의 일화는 선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진리란 머리로 분석하고 따지는 복잡한 개념이나 외부의 거창한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억지로 쌓아 올린 지식과 신념의 탑을 무너뜨리고 마음을 비워냈을 때(무심, 無心), 일상의 아주 평범하고 물리적인 파열음 하나가 방아쇠가 되어 본래의 맑고 텅 빈 마음을 단박에 회복하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내 손을 떠나 아스팔트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6인치의 스마트폰. 발밑에서 울려 퍼진 '딱- 찌지직' 하는 서늘한 파열음이 단숨에 베어버린 것은 비단 유튜버의 핏대 선 고함만이 아니었다. 맨손으로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는 빛바랜 자부심, 나를 뒷방 늙은이 취급하며 훈계하려 드는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것들을 향한 적개심, 마음 붙일 곳 하나 없이 텅 비어버린 노년의 허망함. 그리고 복잡하게 변해버린 세상을 내 힘으론 도저히 분석하거나 이해할 재간이 없어, 한낱 유튜브의 얄팍한 해석에 내 삶의 주도권을 통째로 내맡겨 버렸던 그 비참한 종속성마저 함께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내 머릿속을 지옥처럼 들끓게 하던 그 거대한 번뇌들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가며, 서서히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독한 확증편향의 늪에 빠져 있던 나를 후려치는 벼락같은 죽비 소리이자, 일흔둘의 낡은 나를 향해 날아든 향엄의 기와 조각이었다.


내가 그토록 움켜쥐고 있던 '애국 우파'라는 숭고한 지식의 탑,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그 거창한 서사들이 바닥에 나뒹구는 저 깨진 액정 조각들처럼 처참하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나를 세뇌시키던 시끄러운 알고리즘의 소음이 그 '딱' 하는 파열음과 함께 끊어지자, 마침내 내면의 거짓말 같은 고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5. 부서진 액정, 소음이 멎은 자리에 스며든 맑은 공성(空性)

스마트폰 액정이 산산이 조각나며 낸 그 서늘한 파열음은, 천 년 전 향엄을 깨웠던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처럼 몽롱했던 내 의식을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순간, 나는 향엄과 내가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었음을 깨달았다. 고정불변의 진리를 좇아 죽은 문자와 낡은 경전에 집착했던 향엄처럼, 나 역시 지난날의 영광이라는 박제된 환영을 꽉 부여잡은 채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상의 변화를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살아 움직이는 시대의 흐름을 온몸으로 막아서려 했던 것이다. 나를 철저하게 눈멀게 한 어리석음의 핵심은 바로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진리를 외면한 지독한 오만이었다.


세상은 이미 내가 맨손으로 신화를 써 내려가던 80년대가 아니었고, 나 역시 사우디의 모래 폭풍을 맨몸으로 견디며 외화를 벌어오던 그 강인했던 청춘이 아니었다. 세상을 흑백으로 가르던 냉전적 사고는 진작에 수명을 다했고, 지금은 식당의 키오스크를 넘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AI'가 판을 치는 낯선 우주로 변해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완전히 무너져 내려 쇠락해 버린 왕궁의 폐허 앞에서, 그 옛날 제국에서 받은 빛바랜 훈장을 가슴에 달고 서서 거대한 시대의 변화를 막아보겠다고 기를 쓰며 발버둥 치는 늙고 어리석은 병사였다.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 그리고 현실에서 내가 늙고 쓸모없는 뒷방 늙은이로 밀려났다는 그 지독한 무력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나는 유튜브가 쏟아내는 '애국'과 '구국', '음모론'이라는 거창한 개념의 탑 속으로 비겁하게 도망쳤다.


내가 여전히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입만 살은 딸에게 무시당하는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나는 매일 밤 새로운 정치적 지식과 논리들을 머릿속에 미친 듯이 쑤셔 넣었다. 그것만이 진리이자 나를 구원할 동아줄이라 맹신했다. 하지만 변해버린 세상의 흐름을 거스른 채 개념과 이념으로 높게 쌓아 올린 그 거대한 모래성은 현실의 단단한 바닥과 부딪힐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자기모순이라는 끔찍한 지옥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머리로 짜 맞춘 그 알량한 알음알이는 결코 평안을 주지 못했고, 내 영혼은 갈수록 피폐하고 옹졸해져 갔다.


"딱- 찌지직!"


손에서 미끄러진 스마트폰이 아스팔트에 박살 나는 순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그저 변하고 흘러갈 뿐이라는 평범하고도 당연한 이치가 벼락처럼 머리를 때렸다. 그 순리를 거스른 채, 변해버린 세상을 인정하기 싫어 내가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있던 그 알량하고도 끔찍한 신념의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유튜버의 핏대 선 고함소리가 끊어지고 검게 죽어버린 깨진 액정을 내려다보자, 내 머릿속에서 폭주하던 시끄러운 이념의 언어들도 일순간 완벽하게 정지했다.


향엄이 불경을 모두 태워버리고 빗자루를 쥐었을 때 비로소 진리가 찾아왔듯, 나를 세뇌시키던 알고리즘의 감옥이 물리적으로 박살 나는 그 찰나에 기적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낼 거룩한 애국 투사도, 세상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지식인도 아니었다. 그저 늙고 외로운 일흔둘의 평범한 노인. 내가 켜켜이 덮어쓰고 있던 가짜 완장과 허상들이 깨진 액정 조각들처럼 바닥으로 흩어져버리자, 꽉 막혀 있던 가슴속에 아득할 정도로 텅 빈 공간이 생겨났다.


미 항공모함도, 종북 좌파도, 산업역군의 낡은 자부심도 모두 증발해 버린 그 텅 빈 진공의 자리. 모든 개념과 이분법을 내려놓은 그 고요하고 투명한 공성(空性)의 빈 공간으로, 비로소 서초동 법원 앞의 아스팔트 위를 스치는 초봄의 맑고 서늘한 저녁 바람이 훅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6. 소음이 멎은 자리, 비로소 드러난 나의 맨얼굴

바닥에 나뒹구는 스마트폰의 잔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늘 애지중지하며 분노의 불쏘시개로 삼았던 그 물건이 이제는 그저 시커먼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했다. '구국의 전사'라는 거창한 투구와 '산업역군'이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진 자리. 그 텅 빈 진공의 공간 속에 남은 것은 한 시대를 주름잡던 대기업 임원도, 나라를 구하려는 애국 투사도 아니었다.


그곳에는 그저 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먼저 보내고 헛헛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쩔쩔매는, 무릎 관절염에 시큰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거리를 서성이는 일흔둘의 평범하고 외로운 늙은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이념이나 수식어로도 포장되지 않은, 나의 진짜 맨얼굴(本來面目)이었다.


그 초라하고도 늙은 맨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수치심이나 비참함 대신 뭉클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키오스크 앞에서 버벅거리는 늙은 몸뚱이를 인정하는 것이, 세상이 더 이상 내 방식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뼈아픈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내가 세상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오만, 늙고 무력해진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그 지독한 자기 학대가 나를 알고리즘의 지옥으로 쫓아낸 진짜 범인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게 만들던 '뒷방 늙은이'라는 단어는, 역설적이게도 내가 돌아가 쉴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자리가 되었다. 세상을 다 짊어진 척하던 발버둥을 멈추고, 이제는 그 뒷방에 조용히 앉아 변화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상을 호령하듯 피어나는 봄꽃도 아름답지만, 제행무상의 순리를 받아들이며 기꺼이 떨어지는 가을의 낙엽 또한 얼마나 처연하고 아름다운가. 나는 비로소 맞지도 않는 거창한 애국의 갑옷을 벗어던지고, 늙고 볼품없는 내 몸에 꼭 맞는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을 용기가 생겼다.


스스로를 향한 분노가 가라앉은 텅 빈자리에 깊고 서글픈 연민이 스며들었다.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홍보관의 늙고 무지한 노인들이나,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세상을 구하겠다고 환상에 빠져있던 나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시대에서 밀려난 텅 빈 가슴이 너무 시리고 외로워서, 그 두려움을 감추려 거짓된 소음에 기댔던 어리석고 가여운 노인들일뿐이었다. 나를 포함한 그들의 굽은 등 위로, 비로소 따뜻하고 슬픈 위로를 건넬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을 좌우지한다는 거대한 착각과 분노의 소음에서 깨어나니, 비로소 내 곁에 숨 쉬고 있는 진짜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와 매일 밤 식탁에서 핏대를 세우며 전투를 벌이던 마흔 넘은 딸내미. '종북 좌파'니 '불효자식'이니 끔찍한 딱지를 붙여가며 미워했다. 하지만 사실 그 애 역시 이 팍팍하고 잔인한 세상에서 제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매일 밤 불안에 떨고 있는, 고독하고 고단한 한 사람일 뿐이었다.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딸을 적군으로 매도하고, 내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정치꾼들이 던져준 가짜 적들을 향해 허공에 칼을 휘두르던 지난날들이 일장춘몽처럼 흩어졌다. 이념과 개념이라는 알음알이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마음의 빈자리에는, 그저 나처럼 서툴고 상처받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연민할 수 있는 따뜻하고 고요한 여백만이 남아 있었다.


소음이 멎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나는 굳이 쪼그려 앉아 그 깨진 액정 조각들을 주워 담지 않았다. 내 영혼을 갉아먹던 그 징그러운 알고리즘의 파편들은 미련 없이 길바닥에 버려두기로 했다.


대신 나는 굽은 허리를 곧게 펴고, 초봄의 맑고 서늘한 저녁 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미 항공모함이 오든 말든, 세상이 누구의 손에 넘어가든, 남은 인생은 그저 내게 주어진 이 조용하고 낡은 일상이나 다정하게 보듬으며 살아가면 그뿐이다. 나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야 비로소, 가상의 전장이 아닌 나의 진짜 거실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7.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 내 삶의 진짜 고요를 껴안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아파트로 향하는 길. 늘 내 오른손에 쥐여 있던 네모난 기계가 사라진 빈손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허전했지만, 이내 그 가벼움이 묘한 해방감으로 바뀌어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었다. 스마트폰의 손바닥만 한 화면 속에서 나라를 구한다는 헛된 착각에 빠져 걷느라, 정작 아파트 단지 입구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지고 있는 줄도, 초봄의 저녁 공기가 이토록 달달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 달큰한 봄바람을 타고 동네 어귀 과일 트럭에서 상큼한 냄새가 밀려왔다. 나는 홀가분해진 빈손이 못내 아쉬워, 지갑을 열어 가장 붉고 향긋한 봄 딸기 한 상자를 샀다. 매달 사기꾼 유튜버들의 배를 불려주던 그 알량한 연금으로, 오늘 하루도 팍팍한 세상을 맨몸으로 버텨냈을 딸아이의 입에 넣어줄 진짜 봄을 산 것이다. 묵직한 과일 봉투가 들린 손끝으로 전에 없던 다정하고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익숙한 거실로 들어섰다. 매일 저녁, 내가 안방에서부터 극우 유튜버의 핏대 선 방송을 크게 틀고 나오면 식탁에 앉아 있던 딸내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전투태세를 갖추던 그 지긋지긋한 전장(戰場).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 손에는 시끄러운 스마트폰 대신 단내를 풍기는 딸기 봉투와 텅 빈 고요함이 들려 있었다. 조용한 거실 한구석에는, 마흔이 넘도록 제 앞가림도 못 한다고 내가 그토록 매몰차게 닦달했던 딸내미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녀석은 굽은 등뼈를 한 채 캔버스 위에 투명하고 맑은 수채화 물감을 조심스레 덧칠하고 있었다. 그 곁에는 딸애가 애지중지하는 네 살배기 고양이 녀석이 식빵을 굽고 앉아 나를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늘 '종북 좌파'니 '실패자'니 하는 매정한 잣대와 딱지를 붙여 노려보던 내 눈에, 비로소 상처투성이로 세상과 부딪히며 묵묵히 제 나름의 궤도를 그리고 있는 짠하고 가여운 내 핏줄의 맨얼굴이 온전히 들어왔다.


"왔어?"


붓을 든 채 퉁명스럽게 묻는 딸의 목소리에, 늘 묻어있던 날 선 가시 대신 삶의 고단함이 비치는 듯했다. 평소 같았으면 나라가 망해간다며 일장 연설을 토해냈을 나는, 겉옷을 벗어 걸며 아주 무심하고도 조용하게 딸기 봉투를 식탁 위에 툭 올려놓았다.


"밥은 먹었냐? 안 먹었으면 애비랑 순댓국이나 한 그릇 시켜 먹자. 식당에 갔더니 그놈의 키오스크인지 뭔지, 애비가 영 누를 줄을 몰라서 그냥 굶고 왔다. 오다 보니 딸기가 아주 달큰하길래 좀 사 왔으니, 밥 먹고 같이 씻어 먹자꾸나."


내 입에서 나온 뜻밖의 풀 죽은 고백과 식탁 위의 향긋한 붉은 딸기에, 딸내미의 눈이 토끼처럼 동그랗게 커졌다. 매일 밤 서로의 알량한 도덕적 우월감과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피 터지게 싸우던 식탁 위로, 수년 만에 처음으로 적막하고도 따뜻한 평화가 벚꽃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딸아이는 말없이 스마트폰 배달 앱을 열어 순댓국 두 그릇을 주문했다.


국가를 구하고 세상을 뒤집는 거창한 투쟁은 애초에 내 몫이 아니었다. 향엄 스님이 빗자루 끝에 튕겨 나간 기와 조각 소리에서 참된 불성(佛性)을 만났듯, 나의 진면목은 광장의 아스팔트 위가 아니라 이 누추하고 평범한 거실 한가운데에 있었다. 서툴게 섞인 맑은 수채화 물감 냄새와 내 발밑을 맴도는 고양이의 가르랑거리는 숨소리, 그리고 나를 향해 마주 앉은 딸아이의 둥근 어깨 속에 이미 완벽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텅 빈 손으로 돌아와 다정한 온기를 채워 넣은 나의 거실. 나는 비로소 나를 옭아매던 그 가증스럽고 시끄러운 이념의 뗏목을 미련 없이 불태워버리고, 남은 생을 지탱해 줄 진짜 고요를 깊고 단단하게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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