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법문(安心法門): 불안한 마음을 꺼내 보아라

알고리즘이 씌워준 가짜 왕관을 벗고 맨얼굴로 무대에 서다

by 하노이별

1. 알고리즘의 간택, 내 몸에 맞지 않는 화려한 구속복

모든 것은 내 작업실, 아니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50만 원짜리 눅눅한 원룸에서 시작되었다. 네 살 때부터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주구장창 들었던 게 투박하고 묵직한 북소리였고, 내 목청은 가요의 예쁘장하고 매끄러운 가성 대신, 판소리의 거친 '수리성'으로 단단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숨 막히는 규율이 싫어 국악예고는 뛰쳐나왔지만, 음악마저 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정해진 악보와 엄격한 틀을 벗어던진 그 퀴퀴한 반지하 작업실이야말로 내 거친 영혼이 마음껏 뒹굴며 숨 쉴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진짜 내 세상이었다.


누구에게 거창한 평가를 받으려던 것도, 대단한 돈이나 인기를 얻으려던 것도 아니었다. 싸구려 통기타를 끌어안고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날것의 펄떡이는 감정들을 그 비릿하고 핏기 어린 한(恨)의 소리에 실어 마음대로 토해낼 때, 나는 비로소 완벽하게 자유롭고 순수하게 살아 숨 쉬었다. 세상이 뭐라든 이 방에서 콧노래를 흥얼대며 작업하는 동안만큼은, 이곳이 내 팍팍한 청춘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아지트이자 세상의 룰이 통하지 않는 나만의 해방구였다.


그날도 화장기 없는 퀭한 얼굴로, 온전히 나만의 위로를 위해 술김에 기타를 튕기며 그 거친 목소리로 자작곡을 흥얼거렸다. 서양의 트렌디한 팝 비트 위에 국악의 끈적한 농음(弄音)을 얹고, 목을 박박 긁어대는 수리성을 토해낸 3분짜리 조악한 영상. 그것을 장난 삼아 유튜브에 던져놓고는 먹고살기 바쁜 일상에 치여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K팝 월드클래스 아이돌이 자기 SNS에 내 영상을 공유하면서 그야말로 글로벌한 난리가 났다. '눈 떠보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그 뻔한 관용구가, 내 쓰디쓴 인생에 벼락처럼 내리꽂힐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액정이 깨진 낡은 스마트폰은 밤새 쏟아지는 알림을 감당하지 못해 뜨겁게 달아오른 채 방전되어 있었다. 충전기를 꽂고 다시 전원을 켰을 때, 내 채널의 구독자 수는 평생 본 적 없는 숫자로 미친 듯이 팽창하고 있었다. "저 앳되고 여리여리한 얼굴에서 터져 나오는 지독하고 거친 쇳소리는 대체 뭐야?" 대중은 열광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 앵앵거리는 뻔한 목소리에 질려 있던 사람들에게, 내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것의 수리성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TV와 신문, 유튜브 가릴 것 없이 온갖 매체와 평론가들은 '미친 천재가 나타났다'고 떠들어댔고, 어제까지만 해도 편의점 폐기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밀린 월세를 걱정하던 내 버겁던 삶은 하루아침에 거대한 해일에 휩쓸려가 버렸다.


불과 며칠 만에 방송국 카메라들이 내 초라한 원룸 앞까지 들이닥쳤고, 연예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빗발쳤다. 내로라하는 대형 기획사들은 0의 개수를 세기도 힘든 계약서가 찍힌 종이를 들이밀며 나를 '조선 펑크의 혜성',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화려하게 포장해 댔다.


얼마 전까지 냄새나는 만원 지하철에 껴 낡은 통기타를 매고 헐떡거렸는데, 지금 나는 최고급 밴의 가죽 시트에 앉아 스케줄을 돌고 있었다. 단 반년 만에 내 비루했던 세계가 완전히 뒤집혔다. 말도 안 되게 폭력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한마디로 벼락스타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길거리를 지나면 내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나를 향해 환호했다. 내 몸에 전혀 맞지 않는 남의 옷을 훔쳐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솔직히 그 뜨거운 스포트라이트와 달콤한 돈맛은 미치도록 황홀했다. 나는 내가 그 잘난 '조선 펑크'를 호령하는 진짜 조선의 국모라도 된 양, 그 화려한 구속복을 내 피부처럼 여기며 스스로를 기만하기 시작했다.


2. 천재라는 끔찍한 저주, 피투성이가 된 성대

하지만 그 화려한 구속복이 내 숨통을 조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중이 환호했던 그 '독보적인 매력'은 곧 나를 옭아매는 가장 잔인한 덫이 되었다.


판소리의 수리성이라는 건 본래 폭포수 아래서 피를 토하는 '독공(獨工)'의 시간을 거쳐, 성대를 헐게 하고 굳은살을 박이게 만들어 내는 고통의 소리다. 낡은 작업실에서 내 감정이 동할 때만 기꺼이 자유롭게 토해내던 그 소리를, 이제는 매 무대마다, 매 방송마다 기계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뽑아내야 했다. 그것은 내 연약한 목구멍을 매일 생으로 갈아 넣는 끔찍한 자해 행위나 다름없었다.


이 피 끓는 목소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 따위는 없다는 듯, 소속사 대표는 내 등을 미친 듯이 떠밀었다.

"지금이 물 들어올 때야! 다음 곡도 무조건 그 긁는 소리, 그 한 맺힌 바이브로 가야 해! 대중이 원하는 걸 줘야지! 자, 물 들어왔을 때 다 같이 빡세게 노 한 번 저어보자고!"


회의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양복쟁이들은 내 음악을 엑셀 파일의 데이터로 취급했다. "이번 타이틀곡 훅(hook)에서는 정확히 1분 15초에 그 '수리성'을 절정으로 터뜨려야 숏폼 알고리즘에 딱 걸립니다. 표정은 더 처절하게, 아시죠?" 그들은 내 목소리에 깃든 처절한 예술혼은 깡그리 무시한 채, 그 거친 수리성으로 터져 나오는 피 끓는 한(恨)을 초 단위로 쪼개어 가장 잘 팔리는 가성비 좋은 상품으로 규격화했다.


스타일리스트는 내가 입던 편안한 후드티를 벗겨내고, 힙하다는 기괴한 퓨전 한복과 숨 막히는 코르셋을 억지로 입혔다. 내 낡은 통기타 대신 수천만 원짜리 세션 사운드가 반주로 깔렸고, 카메라 앞에서는 '조선 펑크를 호령하는 고독하고 반항적인 천재 아티스트'라는 역겨운 대본을 앵무새처럼 외워야 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행사와 방송 스케줄 속에서, 나는 그저 무대 위로 던져져 기계처럼 목을 긁어대는 태엽 인형에 불과했다. 무대를 내려오면 기획사 대표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다음 달 꽂힐 정산금을 들먹였고, 나를 둘러싼 수십 명의 스태프들은 내가 뱉어내는 그 피 섞인 쇳소리에 빨대를 꽂고 기생했다.


자본의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음악은 더 이상 팍팍한 청춘을 위로해 주던 눈부셨던 나만의 구원이 아니었다. 내 목을 쥐어짜 내 자본과 알고리즘의 제단에 바쳐야 하는 핏빛 공물로 전락해 버렸다. 무대에 오르기 전, 혹시라도 쇳소리가 덜 나올까 봐 나는 화장실에 숨어 일부러 헛기침을 해대며 생목을 박박 긁어 상처를 냈다. 대중이 열광하는 그 '서늘한 허스키'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날마다 나 자신을 학대했다.


진정한 수리성이라는 건 본래 이런 얄팍한 꼼수나 자해 따위로 흉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수없이 피를 토하며 목에 피 섞인 생채기가 나고, 그것이 찢어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며 단단한 굳은살이 박이는 절대적이고 고독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돈 냄새를 맡고 숏폼의 알고리즘처럼 끊임없이 콘텐츠를 뱉어내야 하는 자본의 조급함은 내게 그 우직한 기다림을 허락하지 않았다.


알고리즘이 띄운 인기는 잔인할 만큼 빨리 사그라들었다. 2집을 냈지만 대중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조급해진 나는 짐승처럼 내 목을 더 가혹하게 학대하기 시작했다. 행여나 목이 회복되어 평범하고 맑은 소리가 나오기라도 하는 날엔, 사람들이 "이제 뻔해졌네", "초심 잃었네"라며 싸늘하게 등을 돌려버릴까 봐 미치도록 두려웠다.


그 지독한 강박과 자기 학대는 결국, 얄팍한 내 밑천을 세상에 들키지 않으려는 처절한 발악이었다. 기괴한 쇳소리라는 포장지를 찢어버리고 나면 내 안에는 아무런 무기도 남아있지 않다는 끔찍한 진실을,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천재 싱어송라이터가 아니었다. 그저 변덕스러운 대중의 입맛과 자본의 계산기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성대로 곡예를 부리는 겁먹은 광대에 불과했다. 내 힘으로 이 거대한 파도를 가를 실력도, 탄탄한 내공도 없다는 것을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내일 아침 목소리가 아예 안 나오면 어쩌지? 내 얄팍한 밑천이 다 드러나서 이 거품이 꺼지고 다시 그 퀴퀴한 방구석으로 처박히면, 세상이 나를 얼마나 비웃을까?'


그 끔찍한 추락의 공포는 어느새 거대한 괴물이 되어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밤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식은땀이 흘러 단 1분도 맨 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모자 하나를 푹 눌러쓰고 정신과 문턱을 넘어 독한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았다. 내 순수했던 노래가 나를 찌르는 흉기가 된 현실을 견디지 못해, 매일 밤 술과 수면제를 털어 넣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처참한 약물 중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3. 새하얀 눈밭에 흩뿌린 붉은 피, 안심법문(安心法門)

알약 몇 개를 소주와 함께 입안에 털어 넣고 기절하듯 잠을 청했던 어느 새벽. 끈적한 식은땀을 쏟으며 깨어난 나는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눈이 시리도록 차가운 샹들리에가 무심하게 반짝이는 넓고 공허한 천장을 향해 "제발 이 미칠 것 같은 불안을 좀 누가 없애달라"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바로 그 찰나, 어릴 적 투박한 손으로 소리북을 치며 내게 판소리를 가르쳐 주시던 할아버지의 걸걸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내 정수리를 내리쳤다. 소리가 뜻대로 나오지 않아 엉엉 울던 어린 내게, 할아버지가 굽은 무릎을 내어주시며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셨던 일화 하나였다


중국 선불교의 첫 번째 스승인 달마대사와, 훗날 그의 뒤를 잇는 제자 2대 혜가의 이야기. 이른바 '안심법문(安心法門)'이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달마대사는 가장 먼저 당시의 권력자였던 황제 양무제를 만났다. 불심이 깊다고 자부하던 황제는 자신이 평생 수많은 절을 짓고 탑을 세우며 승려들을 거 둬 먹인 공로를 잔뜩 자랑했다.

"짐이 불교를 위해 이토록 막대한 재물과 노력을 쏟아부었으니, 내게 얼마나 큰 공덕이 있겠소?"

기대감에 부푼 황제 앞에서, 달마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건조하게 단 한 글자를 내뱉었다.

"무(無)." 아무런 공덕도 없다는 말이다.


감히 대제국의 황제인 자신을 능멸한 저 오만한 중놈의 대답에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양무제는, 당장 달마의 목을 쳐 죽이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사색이 된 신하들이 기를 쓰고 뜯어말린 덕분에 간신히 피바람을 면한 달마는, 그 얄팍한 세속의 잣대에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양자강을 건너 동쪽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숭산의 소림사로 깊이 숨어든 그는 무려 9년 동안 묵묵히 차가운 돌벽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면벽(面壁) 참선'에 들어간다.


그렇게 돌덩이처럼 굳게 닫힌 달마의 등 뒤로 '혜가'라는 승려가 찾아온다. 혜가는 마음속에서 들끓는 끔찍한 고통과 불안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 목숨을 걸고 진리를 구하러 온 참이었다. 하지만 달마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벽만 바라볼 뿐이었다. 며칠 밤낮으로 펄펄 눈이 내리던 매서운 한겨울. 혜가는 꽁꽁 얼어붙은 눈밭에 무릎까지 파묻힌 채 꼼짝 않고 서서 가르침을 청했지만, 달마의 등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한계에 다다른 혜가는 품에서 날카로운 칼을 꺼내어, 자신의 왼팔을 싹둑 잘라 달마 앞에 바친다. 새하얀 눈밭 위로 뜨겁고 붉은 피가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처절하게 흩뿌려졌다. 진리를 얻기 위해 제 몸뚱이마저 미련 없이 박살 낸 그 핏빛 구도의 간절함에, 비로소 달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 제 마음이 너무도 불안하여 미칠 것만 같습니다. 제발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잘려 나간 팔의 끔찍한 통증보다 더 참혹한 마음의 지옥을 호소하며 울부짖는 혜가. 그 뜨거운 절규에 달마대사가 칼날 같은 침묵을 깨고서 덤덤히 대꾸했다.

"그래? 그럼 그 불안하다는 마음을 이리 꺼내 내 앞으로 가져오너라. 그러면 내가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마."


스승의 무심한 일갈에 혜가는 스스로의 내면을 미친 듯이 파고들며 그 불안의 실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은 자의 텅 빈 목소리로 답한다.

"마음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달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느니라."


이 수천 년 전의 살벌하고 장엄한 문답이, 약 기운에 취해 허우적대던 내 텅 빈 거실에 거대한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4. 실체 없는 유령과의 피 터지는 섀도복싱


"불안한 그 마음을 꺼내 보아라."


수천 년 전, 눈밭을 붉은 피로 물들이며 구원을 갈망했던 혜가의 단비구도(斷臂求道)가 수면제에 찌든 내 뇌수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나는 비로소 그 겨울밤, 자신의 팔을 주저 없이 베어냈던 그의 절박함을 온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기획사에서 씌워준 이 무거운 가짜 왕관, 그리고 언제 밑천이 드러나 바닥으로 곤두박질칠지 모른다는 공포. 이 징그러운 불안감을 통째로 도려낼 수만 있다면, 나 역시 당장 시공간을 뚫고 소림사 눈 내리는 앞마당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의 곁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혜가가 쥐었던 그 시퍼런 칼로 내 왼팔마저 잘라 달마대사의 굳게 닫힌 등 앞에 기꺼이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차가운 샹들리에 빛이 하얀 대리석 바닥에 내려앉아, 마치 혜가가 파묻혔다던 그 차디찬 눈밭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피를 토하며 소리를 뱉어내던 나의 신음 위로, 제 몸을 찢어 구원을 갈구하던 그의 절규가 겹쳐졌다.


매일 밤 헛기침을 해대며 독한 약과 술을 털어 넣던 나의 초호화 아파트. 이곳이 바로 나의 소림사, 피 묻은 그 눈밭이었다. 나는 헐떡이던 숨을 죽이고, 달마의 매서운 요구대로 나를 이토록 미치게 만드는 그 '불안'이라는 놈의 멱살을 잡기 위해 내면의 밑바닥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대체 나는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대중의 시선과 악플? 더듬어보았다. 아니었다. 그건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 깜빡이는 차가운 픽셀 덩어리일 뿐, 내 목을 조르는 진짜 손아귀가 아니었다. 기획사 대표의 호통? 매달 꽂히는 정산표? 그것 역시 흩어지는 음파와 얇은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피투성이가 된 내 성대? 아니다. 그저 찢기고 헐어버린 가여운 생살일 뿐이다.


가난했던 과거. 목소리를 잃고 비웃음거리가 될 미래. 미친 듯이 밑바닥을 긁고 뒤집었다. 없다. 나를 갉아먹던 그 거대한 괴물의 실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두려움의 장막을 찢고 들어가 거머쥔 것은 오직 서늘한 허공뿐이었다.


그제야 벼락같은 진실이 내 정수리를 후려쳤다. 내가 그토록 벌벌 떨며 지키려 했던 '천재 싱어송라이터'라는 타이틀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 세상 모든 것은 쉼 없이 변하고 흘러가는데, 나 혼자만 이 알량한 인기를 영원히 붙잡아두려 발악하고 있었다. 벼락처럼 쏟아진 관심이나 숏폼의 알고리즘 따위는 어차피 때가 되면 흩어질 안개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신기루였다.


얄팍한 밑천이 들통날까 봐 미친 듯이 나를 포장해 댔지만, 매체가 떠들어대던 '조선 펑크의 혜성' 같은 알맹이는 내 속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보아도 없었다. 애초에 내가 목숨 걸고 지켜내야 할 '위대한 나'의 실체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건 그저 변덕스러운 트렌드와 우연이 겹쳐 자본이 내 몸에 강제로 덧씌운 홀로그램. 대중의 욕망이 빚어낸 허망한 거품에 불과했다. 내가 그토록 지키려 벌벌 떨었던, 고정불변의 잘난 '나'는 처음부터 존재한 적조차 없었다.


한 번도 온전히 내 소유인 적 없었던 가짜 왕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몰락이라는 허수아비를 내 손으로 세워놓고, 나는 있지도 않은 유령을 향해 매일 밤 피 터지는 섀도복싱을 하며 나 자신을 고문하고 있었다. 불안은 밖에서 나를 덮친 괴물이 아니라, 내 어리석은 마음이 지어낸 지독하고도 정교한 환각이었다.


그 징그러운 환영의 껍데기가 산산조각 난 텅 빈 내면을 바라보며, 나는 마침내 핏기 가신 입술을 열어 허탈하고도 처절한 고백을 토해냈다.


"마음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5. 생각의 전원을 뽑고 진면목(眞面目)을 마주하다

혜가의 그 허망하고도 눈부신 고백이 내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불안의 실체는 애초에 없었다. 달마가 눈밭에 엎드린 혜가에게, 그리고 약에 취해 뒹굴던 내게 내리친 서늘한 죽비는 결국 이것이었다.


'직지인심(直指人心)'.

미친 듯이 꼬리를 무는 허망한 생각의 쳇바퀴를 당장 멈추고, 지금 이 자리에서 곧장 너 자신을 바라보라는 것. 남들의 시선, 기획사의 계산기, 조회수라는 시끄러운 생각의 잡음들을 모조리 꺼버리고, 그 모든 생각 이전에 펄떡이며 존재하는 '진짜 나'의 맨얼굴, 즉 진면목(眞面目)을 곧장 들여다보라는 벼락같은 명령이었다.


"얄팍한 생각 이전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네 안을 보아라. 대체 그곳에 무슨 불안이 있고 괴로움이 있느냐!"


눈을 감고, 내 머릿속을 들쑤시던 그 징그러운 생각의 전원을 단숨에 뽑아버렸다. 아집과 편견으로 점철된 모든 판단을 정지시키고,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공포로 달아나던 그 가볍디 가벼운 의식을 붙잡아, 오직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로 곧장 내리꽂았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지독한 생각의 소음이 멎은 그 텅 빈 고요 속에서, 시공간의 감각이 까마득하게 지워졌다. 대중이 원하는 쇳소리를 내야 한다는 강박도, 배고팠던 반지하 방으로 처박힐지 모른다는 스트레스도 안개처럼 스르르 녹아내렸다. 영광스러운 성공과 비참한 몰락을 칼같이 가르던 잔인한 이분법도, 대중이 씌워준 '천재'라는 허상과 그것을 잃을까 벌벌 떨던 찌질한 '나' 사이의 징그러운 경계도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원인과 결과라는 숨 막히는 인과의 사슬조차 미치지 못하는, 오감 이전의 아득하고 투명한 진공 상태. 애초에 얻어야 할 명성도, 잃어버릴까 두려운 미래도 성립할 수 없는 절대적인 영점(零點)이기에 그곳에는 쫓기는 자도 쫓는 자도 없었다. 불안이라는 유령이 발을 들일 아주 작은 틈새조차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해방의 공간이었다.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환영이 철저하게 증발해 버린 그 텅 빈 우주 속에서, 오직 날것 그대로의 펄떡이는 생명력, 즉 한 점의 티끌도 묻지 않은 나의 결백한 본성만이 스스로 빛을 내며 눈부시게 박동하고 있었다. 텅 비어 있으되 온 우주를 품은 듯한 기막힌 충만함. 세속의 얄팍한 언어로는 감히 형언할 수 없는 지독한 고요이자 미칠 듯한 황홀경이었다. 성공과 실패, 우월함과 열등함이라는 인간이 스스로 빚어내어 뒤집어쓴 그 징그러운 번뇌의 껍질을 산산조각 내고 넘어선 자만이 닿을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의 경지. 결코 흔들리거나 파괴될 수 없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온전한 실체가 비로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느니라."


수천 년을 건너온 달마의 사자후가, 비로소 고요하고 황홀해진 내 텅 빈 거실에 망상을 베어내는 서릿발 같은 지혜를 품은 채 다정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6. 가짜 왕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낡은 통기타를 끌어안다

허망한 고백 끝에 찾아온 것은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무(無)와 지독한 평온이었다. 더 이상 추락할 곳도, 뺏길 것도 없다는 명징하고도 압도적인 자유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갉아먹던 그 '불안'의 진짜 얼굴을 똑똑히 마주 보게 되었다.


이제야 알겠다.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불안은 나를 파괴하려던 악랄한 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화려한 구속복과 가짜 왕관의 무게에 짓눌려 서서히 질식해 가던 '나의 순수한 생명력'이, 제발 인기라는 폭력적인 무게와 자본이 짜놓은 징그러운 쳇바퀴에서 벗어나 나 좀 살려달라고 피를 토하며 지르던 처절한 비명이었다. 눅눅한 원룸에서 싸구려 기타를 끌어안고 거칠고 자유롭게 토해내던 그 눈부신 딴따라의 영혼이, 자본에 짓눌려 죽어가는 나를 깨우기 위해 보내온 가장 뜨겁고 절박한 SOS였던 것이다.


내가 쥐고 있던 화려한 왕관이 애초에 실체 없는 홀로그램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것을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했던 모든 시간들이 한바탕 실없는 꿈결처럼 느껴졌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 미치도록 두려웠는데, 망상의 안경을 벗고 보니 나는 이미 가장 안전하고 단단한 '나'라는 존재의 대지 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 세상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니다. 모든 것을 지워낸 그 텅 빈 진공상태에서, 역설적으로 질척이는 현실의 흙바닥을 다시 맨발로 밟고 앞으로 나아갈 맹렬한 용기가 차올랐다.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비틀거리듯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선반 위에 나뒹굴던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통을 모조리 집어 들고, 변기 속에 남김없이 쏟아부은 뒤 시원하게 물을 내려버렸다. 독한 알갱이들이 소용돌이치며 사라지는 그 경쾌한 소리가, 내 영혼을 옭아매던 낡은 생각의 사슬들이 박살 나는 짜릿한 파열음처럼 들렸다. 나는 그 길로 기획사 대표의 얼굴 앞에 위약금 청구서보다 무거운 계약 해지 통보서를 던져놓았다.


최고급 밴의 가죽 시트 대신, 다시 내 낡은 통기타 하나를 메고 퀴퀴한 반지하 작업실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미쳤다고 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기는커녕 배를 부수고 내린 멍청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이제 알고리즘의 거품은 곧 꺼질 것이고, '반짝 스타의 비참한 몰락'이라며 사람들은 나를 비웃고 잊어갈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수천만 원짜리 세션 사운드에 밀려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싸구려 통기타의 촌스럽고 투박한 넥(neck)을 다시 단단히 틀어쥐자, 손끝에서부터 찌릿한 온기가 혈관을 타고 번졌다. 이제 내 목소리는 엑셀 파일의 데이터도, 숏폼을 위한 3분짜리 소모품도 아니다.


그것은 '소모되는 상품'에서 '창조하는 주체'로의 장엄한 회귀이자, 자본의 제단에 바쳐졌던 내 영혼을 다시 내 품으로 되찾아오는 눈부신 독립 선언이다. 남이 짜준 인생의 스케줄에 맞춰 생목을 긁어대는 짓거리 따위는 집어치우고, 삑사리가 나더라도 이 낡은 기타 반주에 핏기 어린 한(恨)을 실어 내 멋대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맹렬한 '진짜 나'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괜찮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낡은 소리북을 치며 내게 전수해 주셨던 수리성의 본래 의미를 차근히 되새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성대를 찢는 얄팍한 자해가 아니라, 내 안의 가장 깊은 감정을 정직하게 긷고 올려 단단하게 다져내는 인내의 소리였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수없이 자본의 시류에 휩쓸리고 거센 파도에 이리저리 비틀거릴 것이다. 인간이기에 또다시 대중의 환호나 알량한 통장 잔고 앞에서 흔들리며 번뇌할 날이 분명 올 것이다. 하지만 두렵지 않다. 그 지독한 불안의 유령이 또다시 내 목을 조여올 때면, 나는 지체 없이 그 펄펄 눈 내리는 소림사의 앞마당으로 나를 소환할 것이다. 기꺼이 남은 오른팔과 두 다리마저 그 차가운 눈밭에 미련 없이 내어 던지며, 나를 옥죄는 지독한 망상의 뿌리를 단칼에 베어버릴 것이다


인기가 식어 텅 빈 객석이라도 좋다. 만원 지하철에 떠밀리고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울지라도, 생각의 잡음을 끄고 절대적인 고요를 쟁취한 이 텅 빈 마음 하나만 있다면 세상 그 어떤 비루한 무대라도 기꺼이 내 영혼이 숨 쉬는 가장 완벽한 해방구가 될 테니까.


알고리즘이 강요한 기괴한 가면을 마침내 벗어던지고 나니, 거울 속에는 화장기 없는 맨얼굴의 스물다섯 청춘이 비로소 제 나이에 걸맞은 무구하고 해맑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대신 낡은 형광등이 깜빡이는 이 좁은 방에서, 나는 다시 가슴 벅찬 심호흡을 하며 진짜 내 노래를 시작한다.


이전 04화풍번문답(風幡問答): 흔들리는 것은 네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