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를 가르던 오만한 잣대를 꺾어버리다
1. 50대 깨시민의 성전(聖戰), 그리고 ABC라는 완장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주상복합 아파트의 고요한 서재. 안마의자에 앉아 스마트폰 액정을 노려보는 내 눈에는 시뻘건 핏발이 서 있었다.
나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50대다. 번듯한 직장과 안정적인 자산, 남부럽지 않은 학력을 갖춘 중산층이고, 나의 정치적인 성향은 선명한 좌클릭, 그러니까 '좌파'다. 자칭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나 스스로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다는 벅찬 자부심이 있다.
사실 내 청춘은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던 80년대 운동권의 매운 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개인의 취향과 문화적 풍요를 마음껏 누리며 자란 X세대였다. 그렇기에 나의 정치적 참여란 기껏해야 광장에서 얌전하게 촛불을 들거나, 투표장에 나가는 '교양 있는' 방식이 전부였다. 이미 완성된 민주주의의 혜택을 당연한 공기처럼 누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나라를 뒤흔들었던 계엄과 탄핵 정국은 그 모든 수동적 교양의 껍데기를 단숨에 벗겨버렸다. 80년대 역사책에나 박제된 줄 알았던 무도한 폭력이 내 평화로운 일상을 향해 탱크처럼 밀고 들어오던 그 아찔했던 겨울밤. 광장으로 달려간 내 안에서는,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뜨겁고 거친 투쟁 본능이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12월 3일, 나는 여의도 야만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맨 앞줄에서 무장한 군인과 정면으로 대척했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온 세상인데 이대로 망하게 둘 수는 없다는 벼랑 끝의 위기감, 그리고 우리의 상식과 존엄을 무참히 짓밟은 폭력을 향한 맹렬한 분노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넥타이를 맨 퇴근복 차림으로, 혹은 주말마다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헌법재판소 앞으로 달려가 목이 터져라 피켓을 흔들었다. 마침내 무도한 권력을 끌어내리고 지금의 대통령을 지켜내어 새로운 질서를 세웠다는 사실은 내 삶의 눈부신 쟁취였다.
그런데 요즈음, 내가 총부리 앞에서 목숨 걸고 지켜낸 진영 내부가 몹시 시끄럽다. 무너진 보수 세력 앞에서 압도적인 힘을 모아주어야 할 여당 내에서 꼴사나운 권력 투쟁과 이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당 대표를 흔들고, 진영의 대의에 딴지를 거는 내부의 목소리들을 보며 이러다 또다시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건 아닌지 불안하면서도 그 지긋지긋한 잡음에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그 찰나, 유명 작가가 방송에 나와 던진 '정치인 ABC 이론'은 혼란스러웠던 내게 완벽한 엑스칼리버가 되어 주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눈 이 이론은 아주 직관적이고 명쾌했다. 대의와 가치를 중심에 두고 헌신하는 정치인은 'A', 오로지 자신의 사적 이익과 권력만을 좇는 기회주의자는 'B', 그리고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오가는 혼합형은 'C'라는 것이다.
나는 이 마법의 분류법을 손에 쥐고 지체 없이 온라인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당연히 대의와 가치를 목숨처럼 여기는 고결한 'A'의 편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들고 진영의 결속을 해치는 저 국회의원 년놈들과 평론가 새끼들은 무엇인가? 볼 것도 없이 제 밥그릇과 이익에만 눈이 먼 추악한 기회주의자 이자 진영을 분열시키는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B'였다.
"대의를 저버린 B급 수박 새끼들, 당장 쫓아내야 한다!"
"어디서 감히 철새 같은 B 주제에 A의 숭고한 결단에 재를 뿌리느냐!"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날 선 적개심을 키보드에 실어, 밤새도록 기사마다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세상은 정의로운 '나(A)'와 추악한 '너(B)'로 완벽하게 쪼개졌고, 그 가차 없는 잣대로 누군가를 단죄하고 악마화할 때마다 내 핏줄에는 짜릿하고 묘한 도파민이 흘러넘쳤다.
2. 2009년의 핏빛 부채의식, 내 영혼을 잠식한 거대한 적개심
내가 이토록 진영의 순수성에 집착하고, 내부의 티끌만 한 이견조차 참지 못한 채 'A와 B'의 감별사 노릇을 자처하는 데에는 뼈아픈 이유가 있다. 내 가슴 밑바닥에는 십수 년째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한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2009년의 잔인했던 봄. 우리는 바보 같을 정도로 순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토록 허망하게, 벼랑 끝으로 등 떠밀려 떠나보내야 했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그 지독한 부채의식과 죄책감은 내 삶을 관통하는 거대한 트라우마이자, 정치를 한낱 제도가 아닌 '피도 눈물도 없는 종교전쟁'으로 끌어안게 만든 광적인 원동력이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자들의 얼굴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없는 죄도 만들어내며 피의사실을 질질 흘려대던 무소불위의 검찰. 그들이 흘려주는 오물을 받아쓰며 매일 아침 대서특필로 조롱을 퍼붓던 쓰레기 같은 언론. 그리고 그 뒤에서 비열한 미소를 짓던 기득권 보수 집권 세력들. 그 거대하고 추악한 카르텔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내 심장에는 그들을 향한 타는 듯한 적개심이 시뻘겋게 인두로 지져졌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그놈들에게 우리의 대통령을, 우리의 리더를 뺏기지 않겠다."
그 처절한 다짐은 내게 신앙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 기득권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검찰 독재와 부패한 보수 세력은 나와 공존할 수 있는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라, 지구 끝까지 쫓아가 박멸해야 할 '절대 악'이었다.
문제는 그 거대한 적개심이 밖으로만 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노는 어느새 방향을 틀어, 우리 내부를 찌르는 광기 어린 검열로 이어졌다. 보수 언론의 논리에 조금이라도 동조하거나, 우리 진영의 리더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자는 그가 누구든 용서할 수 없었다. 2009년의 그 뼈 아픈 비극은 우리 내부의 분열과 방관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었기에, 나는 조그만 틈이라도 보이는 자들을 향해 가차 없이 'B'라는 주홍글씨를 새기며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옳다는 절대적인 확신 속에서 매일 밤 누군가를 단죄하고 피투성이로 찢어발겼다. 하지만 상대를 악마화하며 느끼는 그 순간적인 도파민의 효력은 갈수록 짧아졌다.
유튜브 댓글로 내가 쌍욕을 퍼부으며 B급 기회주의자로 매도했던 그 정치인, 혹은 그 논객은 불과 얼마 전까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촛불과 응원봉을 들었던 동지가 아니었던가. 정의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쉼 없이 휘두르는 이 칼날이 결국 우리 스스로의 살을 베어내고 있다는 서늘한 의구심은, 어느새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되어 내 심장을 향해 굽어져 있었다.
키보드 위에서 타인을 짓밟고 승리할 때마다, 어두운 모니터 화면에 얼핏 비친 내 얼굴은 점점 독기를 품은 짐승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끝없는 증오와 분노를 연료로 태워야만 유지되는 이 가혹한 십자군 전쟁. 누군가를 난도질한 뒤에 밀려오는 지독한 피로감이 남몰래 내 목을 조여오며, 50대의 낡은 몸과 마음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의 고요한 서재. 그 평화로운 정적 속에서 오직 내 모니터 안의 세상만이 지옥처럼 핏빛으로 들끓고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이 미친듯한 증오의 쳇바퀴를 멈추지 않으면 내 영혼이 먼저 타 죽어버릴 것 같다는 깊은 불안감이 불면증처럼 나를 괴롭혔다. 문득, 이 시끄럽고 잔인한 증오의 진흙탕에서 그만 숨을 돌리고 싶다는 절박한 갈증이 일었다.
3.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모니터 앞의 헛된 알음알이
그날도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적들을 향해 저주의 댓글을 퍼붓고 있었다. 댓글 작성을 누르고 난 뒤 밀려오는 그 익숙하고도 끔찍한 허무함. 나는 도망치듯 모니터에서 눈을 돌려,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고자 서재 책꽂이에서 무심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젊은 시절 지적 허영심에 사두고 펼쳐보지도 않았던 낡은 선불교 공안집(公案集)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넘긴 첫 페이지, 천 년의 시공을 건너온 당나라 선사의 서릿발 같은 일갈이 내 뻣뻣한 목덜미를 서늘하게 베고 지나갔다. 무문관(無門關) 1칙, '조주구자(趙州狗子)'였다.
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 "無."
問: "上至諸佛, 下至螻蟻, 皆有佛性. 狗子為甚麼卻無?"
師云: "為伊有業識在."
어떤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부처의 성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없다(無)."
승려가 다시 물었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미물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불성이 있다 하였거늘, 어찌하여 개에게만 불성이 없습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그에게 업식(業識, 분별하고 집착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생명에게 부처의 씨앗이 있다는 '일체중생개유불성(一切衆生皆有佛性)'은 불교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진리다. 승려는 이 뻔한 정답을 알면서도, 대상을 흑과 백, '있다'와 '없다'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는 이분법적 저울 위에 늙은 선사를 올려놓고 교묘하게 시험하려 들었다.
그 빤히 들여다보이는 속내를 향해 조주 선사가 내지른 "무(無)!"는,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존재론적 선고를 내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몇 개의 범주로 나누고 타인의 가치에 함부로 등급을 매기려는 인간의 주제넘는 개념 짓기를 향한 철퇴였다. 누군가를 함부로 규정짓고 분류하는 행위 이면에는, 늘 내 기준과 지식이 옳다는 거만한 우월감과 집착, 즉 '업식(業識)'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선사가 질타한 업식이란 결코 거창하고 어려운 철학 용어가 아니다. 눈앞의 복잡한 현실과 살아 숨 쉬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눈을 가려버리는 지독한 '색안경'이자, 내 입맛대로 세상을 재단하기 위해 타인의 이마에 철썩철썩 붙여대던 'A, B, C'라는 끈적한 라벨 스티커다.
인간은 괴롭고 불안할수록 세상을 내 뜻대로 쥐고 흔들려는 통제욕과 아집, 즉 탐욕(貪)에 사로잡힌다. 내 통제를 벗어난 타인을 향해서는 가차 없이 분노(瞋)하며 적개심을 불태운다. 이 모든 것은 얽히고설킨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지혜가 없는 어리석음(癡)에서 비롯된다. 결국 이 탐욕과 분노, 그리고 눈먼 무지의 맹독에 취한 인간은, 이 복잡하고 벅찬 세상의 결들을 '나와 너', '아군과 적군', '선과 악'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납작한 서랍에 억지로 쑤셔 넣게 된다. 그래야만 내가 세상을 다 꿰뚫어 보고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주 선사는 그 탐진치(貪瞋癡)가 만들어낸 옹졸한 분별들을 당장 불태워버리라고 사자후를 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선사의 서릿발 같은 일갈은, 진리를 담아낼 수 없는 그 엉성하고 시건방진 프레임의 틀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벼락같은 죽비였다. 타인의 존재 가치를 '있다/없다', '옳다/그르다'로 나누어 재단하려는 그 폭력적인 잣대를 거두고, 얕은 지식으로 세상을 쪼개려는 얄팍한 편견의 전원 플러그를 당장 뽑아버리라는 절대적인 판단중지의 선언이었다.
낡은 종이 위에서 불을 뿜는 그 거대한 호통 소리가, 모니터 앞에서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던 내 심장을 향해 직격으로 날아들었다.
4. 해석된 세계에 갇힌 맹신도, 타인에게 해석의 주권을 내맡기다
"무(無)!"
조주 선사의 그 짧고 서늘한 외침이 활자를 뚫고 나와, 피 튀기는 댓글 창을 띄워놓은 내 모니터 위로 쾅하고 떨어졌다.
순간, 뒤통수를 둔기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먹먹함이 밀려왔다. 수천 년 전, 개 한 마리를 삿대질하며 "이놈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라고 남의 가치를 저울질하려 들었던 그 옹졸한 승려. 그 승려의 얄미운 얼굴 위로, 스마트폰을 꽉 부여잡고 "저 정치인은 A입니까, B입니까?"라며 핏대를 세우던 내 얼굴이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겹쳐졌다.
나는 내가 이 대한민국의 척추이자, 시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주역이라 굳게 자부해 왔다.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총칼을 앞세운 무도한 권력과 싸워 이겼으니, 나의 도덕적 우월함과 판단력은 영원히 흠집 나지 않을 무결점의 갑옷이라 맹신했다. 하지만 조주 선사의 매서운 죽비 아래 까발려진 내 진짜 모습은 너무도 참담했다.
실상 나는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 대해 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힘이 전혀 없었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분노스러운 현실이 어디까지가 팩트이고, 어디까지가 정치꾼들의 의도적인 왜곡이며, 어디까지가 알고리즘에 의해 정교하게 조작된 선동인지 철저하게 무지했다. 나는 세상을 스스로 분석할 지적 근력을 잃어버린 채, 유명 평론가나 진보 스피커들이 씹어서 떠먹여 주는 '해석된 세계' 속에서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생각과 판단의 주도권을 통째로 모니터 밖의 누군가에게 의탁해 버린 이 끔찍한 종속성. 세상의 속도와 무질서를 내 낡은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지독하게 불안했다. 당장 이 혼란을 단숨에 설명해 줄 정답과,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명확한 적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쫓기다 보니, 차분하게 사실의 앞뒤를 따져봐야 할 이성은 이미 완벽하게 마비되어 버렸다.
나는 그 숨 막히는 불안과 비겁한 지적 나태를 숨기기 위해, 누군가가 던져준 'ABC 이론'이라는 단편적인 분석 도구를 세상의 모든 선악을 가르는 절대적 진리인 양 신줏단지처럼 부여잡았다. 현상의 일면만을 설명해 주는 그 명쾌하고 매력적인 알파벳 서랍장 속에, 살아 숨 쉬는 인간의 복잡한 삶과 깊고 다단한 고뇌를 억지로 쑤셔 넣고, '가치'라는 고결한 단어를 내 반대파를 척결하는 살생부로 전락시켰다.
세상을 내 손으로 통제하고 심판한다는 거대한 착각 속에 빠져 있었지만, 실상은 타인이 쥐여준 조잡한 플라스틱 자를 휘두르며 스스로 내 눈을 가려버린 비겁한 맹신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조주 선사의 서릿발 같은 일갈이 박살 낸 것은 'ABC 이론' 자체가 아니었다. 그 이론은 분명 현실 정치의 일부 현상을 설명해 내는 부분적 자명함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그 얄팍한 서술적 도구 하나를 진리인 양 움켜쥐고,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는 인간과 세상 전체를 함부로 재단하려 들었던 끔찍하게 시건방진 '나의 오만'이었다.
벼락같은 선사의 죽비가 그 어리석은 맹신의 정수리를 후려치자, 모니터 앞에 앉아 끝없는 분노의 헛바퀴만 돌리던 내 지독한 아집(我執)의 전원도 마침내 스르르 뽑혀 나가고 있었다.
5. 옳으냐 그르냐의 저울질 이전, 불성(佛性)의 영점(零點)을 맞추다
그 시끄러운 알고리즘의 소음이 멎고 나자, 역설적이게도 끔찍한 막막함이 몰려왔다. 'A 아니면 B'라는 선명한 이분법의 안경을 벗어던진 세상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난해하고 무질서한 회색빛 혼돈 그 자체였다.
내가 그토록 유명 작가나 대형 스피커들의 해석에 매달렸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거대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을 나는 내 맨눈으로 여실하게 직시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정답이 정해진 서랍 속에 세상을 가두어둘 때만 느꼈던 그 비겁한 안도감은 내 주체성을 갉아먹는 독약이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나를 가두던 분별의 벽을 부숴버린 지금, 그렇다면 나의 판단은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 타인의 입을 빌리지 않고, 나 스스로 이 어지러운 세상을 어떻게 온전히 해석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삶을 통째로 집어삼킨 이 지독한 종속성을 끊어내고 잃어버린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이제껏 내가 매달려온 그 편협한 이분법의 자(尺)가 아예 쓸모없어지는 지점까지 내려가야만 한다. 세상의 수많은 일들 앞에서 옳으냐 그르냐를 저울질하기 이전에, 우리는 반드시 내면의 영점(零點)부터 맞추어야 한다. 영점이 어그러진 저울 위에서는 그 어떤 고결한 정의와 가치를 올려놓아도 결국 거짓되고 편향된 무게만을 가리킬 뿐이다.
조주 선사가 내리친 "무(無)!"는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선고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함부로 쪼개고 심판하려는 그 고장 난 저울질을 당장 멈추고, 가장 텅 빈자리인 '영점'으로 돌아가 눈금부터 똑바로 맞추라는 절대적인 명령이다. 어떤 가치 판단이나 이념의 찌꺼기도 남아 있지 않은 그 완벽한 진공의 영점(零點)이, 바로 선사들이 말하는 참된 마음의 바탕인 부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나와 남을 가르는 경계도, 아군과 적군을 나누는 시비도 전혀 작동하지 않는 근원적인 세계, 그 텅 빈 불성(佛性)을 대면하는 것만이 타인의 잣대에 휘둘리던 종속에서 벗어나, 비로소 내 삶의 주인으로 당당히 서는 유일한 길이었다.
불성(佛性)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가 어느 진영인지 나에게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재빠르게 따지던 뇌 속의 자동 계산기를 완전히 꺼버리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심판하려던 마음의 저울을 남김없이 비워냈을 때, 비로소 조작된 분노와 타인의 해석을 거치지 않은 온전한 두 눈으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영점에 서지 않은 채 지식 나부랭이를 움켜쥐고 '개에게 불성이 있냐 없냐', '저놈이 A냐 B냐'를 두고 핏대를 세우며 싸우는 짓은, 정의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그저 좁은 울타리 안에서 컹컹대는 목적 잃은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 깨어있는 주권자라 자부했지만, 영점을 잃어버린 채 누군가가 불어대는 피리 소리에 맞춰 춤추고 짖어대는 나는 그저 고급스러운 '개돼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6. 회광반조(廻光返照), 괴물이 되어버린 늙은 소년을 끌어안다
나는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여 띄워져 있던 모든 창을 닫고 스마트폰을 껐다.
불교에는 회광반조(廻光返照)라는 말이 있다. 밖으로만 뻗어 나가며 세상을 시비하고 분별하던 시선의 빛을 180도 돌이켜, 내 안의 근원적인 뿌리인 텅 빈 불성(佛性)을 고요히 비춘다는 뜻이다. 남이 A인지 B인지 감별해 내느라 핏대를 세우던 모니터의 전원을 거칠게 뽑아버리고, 타인을 찌르기 위해 쏘아대던 그 시끄러운 조명을 내면의 가장 깊은 바닥으로 돌리는 일. 그것이 바로 회광반조의 서늘한 첫걸음이었다.
분노와 잣대로 들끓던 에고(Ego)의 시끄러운 소음이 멎자, 비로소 나와 너를 가르는 경계도, 옳고 그름의 시비도 모두 지워진 안온하고 투명한 공성(空性)의 자리가 밝게 드러났다. 그렇게 이념과 아집이 소거된 텅 빈자리에서 맑은 반야(般若)의 지혜가 깨어났을 때, 나는 그 명징한 빛을 통해 비로소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맹목적인 투쟁의 뒷모습을 여실하게 응시할 수 있었다.
그 투명한 지혜의 거울에 비친 것은, 세상을 구원하겠다며 거창한 대의를 부르짖던 정의로운 투사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십수 년 전의 아픈 상실을 아직도 소화하지 못한 채, 이념의 완장을 차고 겁에 질려 으르렁거리던 상처투성이의 늙은 소년이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상대의 합법을 가장한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던, 그 지독하게 무력하고 억울했던 나의 벌거벗은 자아였다.
그제야 뼈아픈 진실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모니터 앞에서 타인을 향해 미친 듯이 휘둘러대던 그 알량한 'ABC'라는 칼날은, 실상 그 겁먹고 무력했던 과거의 나를 어떻게든 방어해 보려 허공에 대고 맹렬하게 휘젓던 처절한 몸부림이었음을 비로소 인정해야만 했다.
밀려오는 지독한 피로감과 환멸 속에서, 나는 남을 찌르기 위해 바짝 쥐고 있던 그 날 선 잣대들을 바닥에 툭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분노가 신기루처럼 사라져서가 아니었다. 그 맹목적인 분노가 결국 나 자신을 난도질하고 있었다는 끔찍한 자각이 내 손아귀의 힘을 풀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를 옭아매던 무장들을 스스로 해제하고 나자, 머릿속을 들끓게 하던 시끄러운 명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가슴속에 아득하고 고요한 여백이 생겨났다.
나는 분별없는 그 텅 빈 공성의 자리에 가만히 마음을 눕히고, 겁에 질려 허우적대던 나의 어리석고 옹졸했던, 그 늙은 소년의 떨고 있는 어깨를 조용히 쓸어내렸다. '네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라'며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던 내 안의 가혹한 재판관을 내쫓고 나자, 누구의 탓을 하거나 적을 만들어 책임을 떠넘길 필요 없이 억울하고 무력했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토닥여줄 수 있었다. 세상을 심판하려 으르렁대느라 정작 한 번도 돌보지 못했던 나의 피로와 낡은 상처가 마침내 따뜻하게 아물어가고 있었다.
스스로를 옭아매던 지독한 자기 학대의 사슬이 끊어지고 꽉 막혀 있던 마음의 숨통이 트이자, 내가 그동안 저질러온 광기 어린 짓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괴물들에게 복수하겠다며 맹목적인 칼춤을 추었지만, 정작 가장 소름 끼치는 방식으로 그 괴물들을 완벽하게 닮아버린 나. 내 안의 어두운 폭력성은 단 1도 보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만 현미경으로 파헤쳤던 끔찍한 독선이었다. 내가 저지른 이 모든 짓들은 결국 노무현이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피 흘리며 지키려 했던 '사람 사는 세상'의 가치를 내 손으로 철저히 훼손하는 길이었다.
진정한 복수란 그들과 똑같이 잔인해져서 상대를 짓밟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통쾌하고 위대한 복수는 그들의 추악한 야만성을 답습하지 않고, 끝끝내 그 저열한 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우아하게 살아가는 것. 어떤 순간에도 그들과 같은 괴물은 되지 않는 것임을 깨닫는다.
7. 자타불이(自他不二), 텅 빈 영점에서 길어 올린 자비와 지혜
모든 잣대와 이분법이 소거된 이 텅 빈 영점은 결코 차갑고 메마른 진공의 상태가 아니었다. 설익은 알음알이가 부러져 나간 그 고요한 빈자리에 스며든 것은, 놀랍게도 나와 타인의 경계를 지워내는 아득하고 뜨거운 '자비'였다.
'나'라는 견고한 성벽이 허물어진 그 텅 빈 공간으로, 그동안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타인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여과 없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벽이 사라진 방에 옆방의 온기가 서서히 스며드는 것과 같은 지극히 물리적인 감각이었다. 그 투명한 고요 속에서 A나 B라는 납작한 알파벳에 짓눌려 있던 타인의 입체적인 생명력이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자비란 무엇인가. 나와 너의 뿌리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 이는 고결한 성인들의 깨달음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이 내 살갗을 베는 것처럼 뼈저리게 느껴지는 아주 지극하고 평범한 마음이다. 내가 나를 온전히 용서하고 품어낸 그 영점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자, 내가 그토록 혐오하며 날 선 댓글로 찔러대던 모니터 너머 타인들의 얼굴 위로 서서히 나의 늙고 초라한 얼굴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나처럼 불안과 상실을 겪어냈고, 삶의 고단함 속에서 상처받고 흔들리며 어떻게든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벌거벗은 '또 다른 나'였음을 시리도록 아프게 실감했다. 그 처절한 닮음꼴을 마주하는 찰나, 나와 너를 가르던 인위적인 경계선이 힘없이 지워지며 비로소 거대한 연민의 물결이 내면을 적시기 시작했다.
2009년의 그 잔인했던 봄, 조리돌림 당하던 내 편을 지켜주지 못해 그토록 피눈물을 흘렸으면서, 어떻게 나는 타인에게 똑같은 칼을 들이밀며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잔인하게 도륙할 수 있었단 말인가.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결코 남에게 가하지 말라." 인류가 수천 년간 지켜온 이 당연하고도 숭고한 불문율조차 지키지 못하는 자가 부르짖는 정의란, 결국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개념과 업식이 소거된 그 텅 빈 영점이야말로, 나와 타인을 가르던 견고한 벽을 허물고 이 복잡한 세상을 넉넉한 품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진짜 출발점이다.
이제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시건방진 칼날을 거두어야 한다. 타인을 향한 분노로 들끓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내 안에서 요동치는 그 알량한 A, B, C의 이름표들을 남김없이 지워낸 그 고요한 자리, 텅 빈 영점의 불성을 회복하는 것뿐이다.
8. 삿대질을 거둔 새벽, 비로소 내 삶의 주권자로 서다
이제 세상의 모든 잣대를 내리쳐 부수라는 조주의 "무(無)!"를 나 자신에게 날린다. 나는 절대적으로 선한 A도 아니요, 내가 손가락질하던 타인들 역시 무조건 악한 B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일뿐이다. 진정한 깨시민은 타인을 재단하는 날카로운 칼을 쥔 자가 아니라, 어떤 선동이나 단편적인 이론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허물을 먼저 비춰내는 맑은 영점의 거울을 가진 자다.
나는 깊은 숨을 고르며 스마트폰을 다시 켜 유튜브 구독 창을 열고, 내 눈과 귀를 가린 채 삶의 운전대를 쥐고 흔들던 그 시끄러운 채널 목록들을 하나씩 삭제했다. 타인을 악마화하여 내 배를 불리려는 자극적인 선동과 분노의 알고리즘이라는 탁한 늪에서 나 스스로를 건져 올리는 고요한 의식이었다.
그리고 모니터 앞에서 핏대를 세우며 붉게 낭비했던 그 맹목적인 시간들을, 서재 책꽂이에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잊혀 가던 묵직한 책들의 페이지 속으로 조용히 되돌려 놓는다.
어느새 창밖으로 어스름한 새벽동이 터오고 있었다. 나는 밤새 저주의 댓글을 달고 지웠던 그 얼룩진 손을 뻗어 서재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새벽의 맑고 찬 공기가 밤새 방안에 고여 있던 탁하고 무거운 이념의 먼지들을 단숨에 밖으로 밀어냈다.
열린 창문 너머 저 아래 골목길에서는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환경미화원의 경쾌한 빗자루 소리가 사각사각 들려왔고, 어디선가 이웃집에서 보글보글 끓이는 구수한 찌개 냄새가 찬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코끝을 스쳤다. 거창한 대의나 피비린내 나는 진영 논리 따위는 감히 끼어들 틈 없는, 땀 흘려 일하고 다정하게 밥을 지어먹는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의 눈물겨운 풍경이었다.
이제 타인을 향한 독선적인 삿대질은 거두겠다. 그 누구의 존재 가치도 함부로 매기지 않고, 그 어떤 정치꾼의 매끄러운 언어에도 내 영혼을 의탁하지 않으리라. 타인을 향했던 뾰족한 적개심이 따스한 연민으로 치환된 그 고요한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진영의 노예가 아닌 온전한 내 삶의 주권자로 차갑고도 자명한 첫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